냉동밥을 데워 즉석 짜장 비벼 저녁 먹었다. 커피 끓여 마시니 뱃속이 따듯하다. 텐트 치고 밥 먹는 사이 주변은 어둠에 묻혔다. 헤드랜턴을 쓰고 자갈을 밟으며 산책한다. 뼈만 남은 몸을 드러낸 갈대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개울 건너 마을의 외등이 모텔의 불빛처럼 요란하다. 어스름에 보이던 개울물은 어둠에 잠겨 눈앞의 자갈밭만 사막처럼 겨울밤의 풍경이다. 별이 눈가루 같이 날리는 밤 냉기를 품은 찬바람이 얼굴을 더듬는다. 나 말고도 천변의 너른 자갈밭에는 캠핑 나온 사람들이 대여섯 팀 있다. 텐트를 차 지붕까지 치고 화톳불을 피우고 따스한 불빛이 비치는 대형 텐트 안에서 깔깔대는 얘기 소리가 새어 나온다.
예까지 달려와 잠자리를 마련하느라 애먹었다. 홀로 천변에서 밤을 맞으니 삽상한 중에 지난 기억이 하나둘 떠오른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여자에 대한 기억은 무시로 떠오는데 이런 날 혼자 있으면 유난히 그렇다. 가수의 노래처럼 '죽을 만큼 보고 싶었던' 사람도 이젠 곁에 없다. 비우고 비우는 동안 풍장(風葬)하듯 정신은 말라버리고 형해화된 몸마저 새가 날아간 곳으로 허위허위 떠나 자취도 없을 인생. 살아 뜨거운 입김 토하는 날까지 따라붙는 상념의 끄트머리는 날 좀체 놔주지 않는다. 여자들은 뜨겁고 너그러웠으나 밀란 쿤데라의 말마따나 축제의 순간에만 그랬다. 축제 뒤엔 양치질하는 둥 마는 둥 눈곱이 낀 채 잠든다. 만나면 마른 포플러 가지처럼 불붙어 순식간에 타버린다. 불땀을 느낄 새도 없을 지경이었다. 방은 덥혀지지 않았고 어둠이 가시기 전에 식어버렸다. 시간 앞에서는 무엇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기억은 점점 멀어진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한 그들의 평안을 빈다.
겨울엔 시야가 탁 트이니 숨을 곳이 마땅찮다. 잎 떨어진 산의 속살이 훤히 비치고 도무지 엄폐물이라곤 없다. 내장까지 드러난 숲은 속을 뒤집어 햇볕을 쬔다. 해거름 전에 텐트 칠 자리를 찾아 지도를 검색했다. 일껏 가서 보면 마을에서 보이는 길가나 모텔 식당이 빼곡히 들어선 물가다. 청도 쪽으로 검색하니 운문댐 유원지가 나온다. 옳다. 유원지라면 주차장이 있을 테고 겨울이라도 마른 개울가 터를 잡으면 되리라 싶었다. 문제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가다가 어두워질 판이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방향을 정하니 마음은 놓였다.
시골길을 내달렸다. 시골길이라 해도 요즘은 자동차 전용도로가 전국 어디나 거미줄처럼 깔렸다. 구불텅한 예전의 길은 금세 지워지거나 끊어졌다. 물류고 사람이고 씽씽 달려 시간을 단축하는 게 목표다. 생산성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경제 논리다. 느릿하고 돈 되지 않는 것들은 뒤로 밀려나거나 사라진다. 그래서 여행보다 관광을 선호하는 것 같다. 느릿느릿 낯선 고장을 둘러보고 사람을 만나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짚 냄새나는 시골집 사랑방에 군불 때고 등짝 덥히는 낭만은 고릿적 얘기다. 바쁜 사람처럼 휘리릭 달려가 텔레비전에서 보고 들은 것 그 지방의 특별난 음식 맛보고 쌩하니 돌아오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스치듯 보고 어디 갔다 왔다고 말하고 다 아는 척하면 그만이다. 지역의 축제나 새로 생긴 산악 케이블카 타보는 게 낙이다. 집 나가 개고생 한다는 건 옛날 방식이다. 캠핑 인구가 늘어나 럭셔리한 텐트 장비가 수두룩하다. 휴양림서 일할 때 야영 데크에서 휘황하게 반짝이 달고 등의자에 누워 여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사람을 많이 봤다. 지글지글 숯불에 고기 뒤집는 도시인의 휴식이란 저런 건가 싶기도 했다.
역마살이 깊어 소싯적부터 툭하면 집을 뛰쳐나갔다. 비닐봉지에 밥과 김치를 얻어먹기도 하며 정한 데 없이 떠돌았다. 사나흘 쏘다니다 돌아오면 형에게 직사하게 얻어터지는 게 일상이었다. 밖에서 만나는 세상은 소년에게 별천지였다. 넝마 줍는 개미 회의 하우스에서 잤고, 무임승차로 남도로 내려갔다. 처음 본 곡성의 들판에선 지금도 새록새록 풀 싹이 돋아난다. 마포에서 아이스께끼 통을 메고 전차를 탔다. 본전을 홀라당 까먹고 친구와 앉아 배탈이 날 때까지 아이스께끼를 핥았다. 대가리 굵어지면서 밖에 나가 일을 찾았다. 공사장 잡부일을 했고 밭에서 무 배추를 날랐다. 스무 살 넘어서부터는 마음만 먹으면 갖은 일을 해댔는데 여자를 만나면서 매달린 일이 밥벌이가 되었다. 건설회사, 광고회사에 들어갈 땐 이력서에 자잘한 것 떼고 디밀었지만 그동안 밥을 버느라 한 일이 얼추 잡아도 꽤 많다. 예전엔 이력을 자랑삼아 떠벌였는데 지금은 글의 소재로 조금씩 양념처럼 쓸 뿐이다. 지금은 나무 자격증 몇 개로 조경사를 자처하지만 아는 건 별로 없다.
텐트에 들고날 때는 동작을 조심해야 한다. 발에 걸리는 것 투성이고 넘어져 짚으면 다칠 수 있다. 텐트는 이 인용인데 배낭과 자잘한 장비를 늘어놓으면 혼자도 비좁다. 아이들 자라면서 캠핑장비를 여러 번 샀지만 사실 간단한 이용에 그쳤다. 이번에 비박 용품을 사면서 찬찬히 살펴보니 배낭과 텐트에 붙어 있는 고리 하나 끈 하나가 다 소용 있는 것이란 걸 알았다. 사용에 쓸모 있게 만들어진 거다. 잘 사용하면 혹시 발생할 낭패를 막아줄 것이다. 사는 동안 쓰다 버린 물건이 얼마나 많은가. 사물의 쓰고 버려짐에 대한 섣부른 욕심은 끝없다. 사람과 사물의 인연이 소중하다는 것도 느지막에 깨달았으니 얼마나 미욱한 존재인가. 그걸 깨달았을 때 되돌리기란 이미 늦었다는 것도 알았다. 가족도 친구도 부모도 관계의 간격을 벗어나면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것이다. 연인도 가족도 살을 대고 함께 있을 때 관계로서의 인연이다.
물소리도 벌레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이다. 떨어진 텐트에서 장작이 따닥따닥 타들어가는 소리만 가끔 울린다. 다시 커피를 마시고 두 번째 밤 산책을 했다. 지난번 남도행 이후로 오래간만에 나오니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가슴 한켠에 작은 흥분이 인다. 침낭에 들어가 핫팩을 비벼 단전에 깔고 발치에도 두었다. 영하 구 도. 천정엔 벌써 입김이 얼어 반짝인다. 바람이 이따금 텐트 아랫도리를 들춘다. 라디오를 켜고 눈을 감는다. 세상의 소란도 지금쯤 잠들었을까. 기억하는 사람의 숨결은 편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