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 (12)

나빌레라

tvn에서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제목이다.
'나빌레라'는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온 문구로, '나비'와 '-ㄹ레라'라는 표현이 합해져서 '나비 같다'라는 의미를 갖는 말이다.

극 중에서 노인(박인환 분)은 퇴직 후 따분한 말년을 보내다 문득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다. 노인은 아홉 살 때 발레의 황홀한 동작에 반해 발레를 배우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다른 길을 걸었다. 아내에게 숨기고 몰래 발레 학원에 다니던 중 급기야 아내에게 들키고 만다.

학원에서 친해진 청년과의 대화 중 청년은 노인에게 발레를 왜 배우냐고 묻는다. 노인은 태어나 평생 하고 싶었던 거라고, 발레를 배워 나비처럼 날아오르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국의 탄광촌을 무대로 한 발레 소년 이야기인 '빌리 엘리엇(Billy Elliot)'이 떠올랐다. 가난한 광부의 아들인 빌리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발레를 배운다. 런던의 발레학교 면접에서 발레를 왜 하느냐고 묻는 면접관에게 '발레를 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잊고 오직 발레에만 집중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빌리는 가족 앞에서 무대위의 한 마리 백조로 날아 오른다. 발레는 서양 예술 장르다. 꽉 조인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추는 동작은 한 마리 백조를 연상케 하지만 한국인의 정서에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무용으로 인식된다. 노인은 자기의 삶이 아닌 근대의 가부장으로서 가족에게 희생하는 삶을 걸어온 자신의 인생을 한 번이라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었다. 그것은 발레를 통한 자기실현이었다.

어릴 적 좌절되었던 꿈을 이루려 굳은 몸으로 발레를 배우던 어느 날 아내(나문희 분)는 발레복을 가위로 자른다. 그리고 집에서 TV를 보거나 등산이나 하며 노인답게 살라고 나무란다. 누가 알까 창피하단 뜻이다. 노인과 청년은 정면돌파를 다짐하고 가족 톡방에 노인의 발레 동작을 전송한다. 이를 본 가족들의 다양한 반응이 나타난다. 3회가 끝난 월화드라마다. 무심코 채널 돌리다 보았는데, 노인의 얘기에 관심을 갖고 본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우리 시대의 노인은 경제 근대화의 주역이었다. 가난 탈출을 목표로 윌남 전으로 중동 땅 기술자로 달라 벌이에 나섰다. 수출 입국을 목표로 공장에서 일터에서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했다. 어버이연합이나 태극기 부대의 특징 중 하나는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보상심리다. 나라에 몸 바치고 수출 역군으로 밤을 낮 삼아 이룩한 나라인데 알아주지 않는단 거다. 가족의 분화로 도시와 농촌으로 뿔뿔이 흩어져 가족의 위계는 무너지고 빈곤과 질병, 그리고 말년의 고독이 노인에게 지워진 현실이다. 노인은 추하고 꼴사나우며 나약하고 고집스러우며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아프리카 속담에는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고 할 정도로 우리의 과거에도 노인은 존경받고 지혜로운 존재였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지식과 정보는 인터넷 공간에 쏟아져 쌓이고 노인의 굼뜨고 느린 인식은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고 믿은 지 오래다. 왜 노인은 서로 사랑하면 꼴사납고 민망하게 보는가. 가만히 나대지 말고 늙는 게 노인의 미덕인가. 노인은 꿈을 꾸어선 안 되는 나이인가. 어째서 사회는 노인들의 발언에 귀담지 않는 건가. '나빌레라'의 다음 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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