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84)

하늘은 높고 들은 푸르다.
미세먼지가 걷히니 하늘은 투명하고 빈 논에 풀 싹 올라오는 게 융단 같다. 아침저녁으론 선득한 기운 돌아도 한낮엔 덥다. 벌써부터 여름 걱정이다. 난 여름을 좋아하지만 지독한 땀 체질이다. 강원도서 여름이면 작업복에 허연 소금버캐가 앉을 정도로 땀을 쏟으며 풀을 벴다. 여름 내내 예초기를 등짝에 붙이고 살 정도로 일한 게 십여 년이다. 겨울에 식은 밥을 먹어도 머리에 솔솔 김 올리며 땀이 날 정도니 땀은 타고난 것 같다. 게다가 소싯적 끼니 굶어가며 술을 밥 삼아 돌아다녔으니 저질 체질이 된 것이다. 거칠고 힘든 일이야 이골이 나서 한때는 힘 꼴깨나 썼지만 시간은 젊음을 오래 붙들지 않는다.

단풍나무 우듬지가 불그스레 변한다.
땅속뿌리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중이다. 물 먹은 가지는 달뜬 색시마냥 홍조를 띠며 딱딱하게 굳은 겨울눈을 부풀게 한다. 며칠 후 가지에선 참새 혓바닥 같은 새순을 밀어 올릴 거다. 논둑이며 밭둑에는 난짝 엎드린 채 애기똥풀이 초록색 치마를 펼치는 중이다. 벌써 삼월 하고 하순이니 풋나물 냄새 향긋하게 입맛 감치던 냉이는 하얀 꽃을 안개처럼 피워냈다. 해토머리 무렵 지뢰 탐지하듯 밭머리를 샅샅이 훑을 땐 보이지 않더니 저 많은 냉이가 어디 숨어 있었나 할 지경이다. 지인이 애지중지 낙으로 삼는 화단엔 갖가지 화초 싹이 땅 가죽을 뚫고 고개를 내민다. 작약 튤립 군자란 햇부추서껀 올라오는 족족 이름을 부르며 눈을 맞춘다. 조팝나무 기다란 허리에 다닥다닥 붙은 꽃눈이 튀밥처럼 막 터질 기세다. 조팝나무 꽃의 하얀빛은 황홀해서 가슴이 서늘할 정도다. 산야에 조팝꽃이 만발한 것을 보다가 든 생각은 아마 지상에 저 꽃 같은 흰색의 여자는 없을 거란 느낌이다. 고기 맛 들인 중놈의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날 두고 한 말일 게다. 집안에 들였던 화초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와 새뜻한 봄 공기를 마시니 모두 뜨물로 씻은 듯이 보얀 피부다. 봄은 동시다발로 밀고 들어오는 점령군처럼 일상을 차지하는 중이다.

초소 근무 한 달을 넘겼다.
처음엔 종일 가자미눈으로 나무 실은 차를 단속하는 게 답답할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 근무는 지루함을 잊을 정도다. 재미라는 표현이 어떨지 몰라도 나름 시간을 알뜰히 죽이며 보낸다. 아홉 시 출근 여섯 시 퇴근에 점심시간 한 시간은 휴게시간이다. 두 사람이 번갈아 차에서 낮잠을 잔다.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 나누다 열 시부터 무선 이어폰으로 유튜브 강의를 듣는다. 철학 역사 사회학이 주 종목인데 오전 오후 번갈아 과목을 바꾼다. 철학은 도올과 강신주를 듣고 사회학은 김태영, 역사는 한홍구 교수의 강의를 듣는다. 주제를 달리 검색해서 다른 이의 강의도 듣는다. kbs의 역사스페셜을 듣는데 관심 분야는 근현대사다. 한 꼭지를 들은 다음 음악을 들으며 내용을 곱새긴다. 서너 시간 강의를 들으며 되새기면 머릿속이 강의 내용으로 꽉 찬다. 긴 강의는 책 한 권의 분량에 맞먹는다. 사회에는 자신의 공부를 타인에게 전달하려는 열정가들이 많이 있음을 느낀다.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새긴다. 나의 세계와 비교하며 모자라면 채우고, 성긴 부분은 체계를 세워 정리한다. 눈이 아파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가 있다면 유튜브 청강을 소개하고 싶을 정도다.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소설도 한몫을 한다. 특히 대하소설은 픽션을 넘어 실제적인 시대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일테면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색산맥」「아리랑」「한강」, 김석범의 「화산도」등이다. 대하소설 전권을 읽고 나면 시대의 격랑을 헤쳐온 듯 온몸에는 홍수에 할퀴인 상처가 며칠 지나도 아물지 않는다. 소설 구성의 삼요소가 인물, 사건, 배경인 것처럼 역사 구성의 세 요소도 시대 상황과 조건, 인간의 의지, 그리고 우연성인 것처럼 닮은 데가 있다. 시대와 인물이 없다면 역사는 멈춘 물길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인물은 사건의 배경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만하다. 인간의 틈입이 없는 사건은 없기 때문이고 시대마다 인물마다 의지적으로 상황에 마주했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 가면 역사적 인물을 찾아보기 힘든 고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대개 문화나 전통 면에서 여울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뉘의 삶이란 땀 흘려 밥을 버는 일이 큰 수행과 버금가는 일이다. 곡절 없는 역사 없듯이 고비 없는 인생도 없을 거다. 지역에 여러 명의 역사적 인물을 발견하는 건 금맥을 찾아낸 것과 다름없다. 그만큼 인물은 중요하다. 이름 없는 인민의 서사가 드문 건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기회라는 점에서 당시의 신분과 계급 차별의 원인을 간과할 수는 없다. 배우고 깨친 자 중에서 시대를 앞서 가는 선각자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앎이라는 과정은 지식과 정보의 면에서도 자각과 성찰의 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앎의 방향은? 공부의 출발에서 수많은 길을 만나게 된다. 나로부터 시작한 사고의 방향은 공부의 길을 만들어 간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심이라고 믿게 만든 건 진화학자나 신자유주의자가 퍼뜨린 헛소리다. 인간은 생물적 생명만큼 사회적 생명은 소중하다. 무시와 차별을 당해 죽음을 불사하는 것이 방증이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히 사회적 존재로 살아간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타인의 인정과 용서, 타인의 도움과 격려를 양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공부와 성찰의 방향을 공동체의 유익으로 환원해 질문하면 사람의 길이 모습을 드러낼 거다. 질문은 사유의 구조와 지평을 확장시키는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개울 바닥의 작업이 바쁘다.
한 달 전 시작한 수해 복구는 시멘트 블록으로 석축을 쌓고 윗부분은 콘크리트 타설로 마감 중이다. 레미콘 트럭이 꽁무니를 개울 쪽에 대고 굴삭기 바가지에 똥 누듯 콘크리크를 붓는다. 굴삭기는 조심조심 쏟아지지 않게 개울을 가로질러 건너편 둑으로 간다. 삽을 든 작업자 두 사람이 수신호로 부울 장소를 가리킨다. 오며 가며 반 너머의 둑 상단부가 콘크리트 마감으로 채워진다. 동네 노인이 나와 본다. 빈 논바닥엔 풀색으로 덮였다. 공기는 점점 데워지고 주말엔 또 비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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