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87)

응우옌 티 탄은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에서 한국군 청룡부대(해병대 제2여단)의 총탄에 맞았다. 그때 응우옌은 7살 소녀였다. 청룡부대는 비무장 상태의 마을 주민 수십 명을 살해했다. 응우옌은 어머니가 다른 주민과 함께 집단 총살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언니, 동생, 이모도 잃었다. 청룡부대는 같은 달 24일에는 인근 하미마을을 습격했다. 이 마을에도 응우옌이라는 이름의 10살 소녀가 있었다. 청룡부대가 수류탄을 던지자 어머니가 응우옌을 끌어안았다. 수류탄이 터져 응우옌은 왼쪽 귀와 다리, 허리를 다쳤다. 어머니는 목숨을 잃었다. 그날로부터 52년이 흘렀다. 응우옌은 우리나라의 이 씨 성처럼 베트남에선 흔한 성이다. 베트남 최후의 왕조는 응우옌(院王朝, 1802~1945) 왕조다. 한국 군대는 어찌하여 머나먼 남방의 나라 베트남에 갔는가.

처음 오키나와 평화공원의 '태평양전쟁 희생자비'에 조선인 위안부와 강제로 끌려가 공항, 항만 공사에 투입된 군부(軍夫)의 희생에 대한 추모는 없었다. 일본 본토의 군인과 어리석게도 가족을 죽이며 옥쇄(玉碎)한 오키나와인 희생자의 추모비만 서 있었다. 일본에서조차 차별받는 오키나와인의 희생에 대한 추모만 존재했는데, 그들의 시선에 조선인은 철저히 불가시적 존재였던 것이다. 몇 년이 지난 뒤 한국인 위령탑이 공원의 외진 곳에 세워졌다. 중국이 일본의 난징학살 추모공원을 세운 건 침략과 학살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다. 전쟁기념관을 지어 전쟁을 기념하며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것보다 전쟁의 고통을 기억하며 평화를 다지는 게 옳다.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을 모셔놓고 그들을 기리는 건 전쟁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행위이며 비뚤어진 미래를 가리키는 행위다. 이차대전 후 독일의 행보를 일본은 철저하게 따르지 않았다.

용서와 화해는 당사자와의 합의가 전제다. 일방적 화해나 용서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하고 차단할 뿐이다. 잘못해놓고 미안해!라고 성낸다면 돌아가는 건 보복뿐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새로운 문화 침략이며 역사왜곡이다. 정보를 차단하거나 입을 다물면 후대는 선대의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무지한 채 살뿐이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 저지레는 진행 중이다. 일본은 툭하면 정치 관료가 망언으로 부추기고 중국 공산당은 침묵하나 묵언의 동조로 동북공정의 행태를 부추기는 중이다.

'신로이, 비엣남!(미안해요, 베트남)' 제목의 책에서 이규봉 교수는 베트남 남북을 자전거로 돌며 베트남 전국의 '따이한 증오비'를 답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1966년 12월 베트남 중부 빈 호아 마을에서는 430명이 죽었다. 이 중 268명이 여성이고, 182명이 어린이다. 여성 중 7명은 임산부였다. 누군가는 강간당한 후 목이 잘렸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강간당한 후 배가 갈라져 죽었다. 가족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 몰살의 기록은 모두 ‘증오비’에 쓰여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은 약 80건이다. 2000년 조사에서 희생자는 모두 9천여 명이었지만, 그 규모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학살 지역에 세워진 증오비에는 유독 이런 문구가 많다. "하늘을 찌를 죄악, 만대에 기억하리라." 베트남 주민 학살에 대해 참전 한국군 전체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도 삼갈 일이다. 참전 군인 중 다수는 경험하지 못한 모르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참전 군인은 불쌍한 청년들이었다. 연인원 32만 명이 참전하여 오천여 명이 전사했고 3만여 명이 부상했다. 미군의 고엽제 살포(오렌지 에이전트)로 지금도 이대에 걸쳐 고통받고 있다. 미군은 고엽제를 뿌린 정글에 용감한 한국군을 투입시켰다. 미국으로부터 공산당원으로 의심받는 혁명군 우두머리 박정희의 월남 파병은 미국에 대한 절절한 구애였다. 달라 벌이는 말 뿐이었고 한국군 부사관의 급료가 태국 군 필리핀 군 병사의 삼분의 일 수준이었음이 드러났다. 심지어 남베트남 병사의 월급보다 적었다. 헐값에 남의 나라 독립전쟁에 청년들을 몰아간 거였다.

소읍의 호국 공원에 한국전쟁과 월남 참전비를 세우려면 그 옆에 민간인 학살 위령비도 세워야 한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 우익단체의 청년들은 무수한 민간인을 학살했다. 전쟁이 터지자 군경은 보도연맹원, 재소자를 거창, 산청, 함양, 경산, 대전 골령골 등 전국에서 무참히 죽였다. 피해자는 3,40 만에 이른다고도 한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4월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하기 위해 조직된 관변단체이나, 6·25 전쟁으로 1950년 6월 말부터 9월경까지 10만 명 이상의 국민보도연맹원이 군과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다. 전쟁 직전 제주와 여수•순천에서 사만 오천여 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학살한 정권이었다. 전쟁 중에는 국민방위군이란 예비군 성격의 이름으로 9만여 명이 굶어 죽거나 얼어 죽었다. 물론 좌익과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체포, 납북 또한 다수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일본 오키나와, 대전의 골령골, 경산의 코발트 광산의 희생자 유골 발굴작업은 중지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작업이 중지된 건 수직굴에 쌓인 유골의 양이 너무 많아서라는 데는 아연할 뿐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1950년 7월 14일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전격 이양’하는 조치를 취했다. 전쟁이 끝나 당연히 환수되었어야 했으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며 북한 방위비의 수십 배에 달하는 국방력을 보유한 나라가 아직도 남의 나라의 국방에 의지해 자신을 지킨단 말인가. 국가의 일차적 존립 근거는 구성원의 안보에 있다. 우리나라 군대는 당나라 군대고 금빛 찬란한 장군의 계급장은 똥별이란 건가. 한일병탄 후 순조가 내린 조서를 보면 이승만의 전시작전지휘권 이양과 너무도 닮았음에 놀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외치는 자주국방은 어느 나라 군대의 자주인가.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한국이 분담하는 비용이다.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각종 미군기지 내 건설비용, 군수 지원비 등 명목으로 사용된다. 2021년 타결된 방위비는 1조 1,833억 원이다. 트럼프는 깡패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몇 배의 방위비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돈 주어가며 지켜달라는 안보는 노예근성일 뿐 패권국가 미국은 주판알 튕겨 언제든 섬나라 일본 너머로 내뺄 수 있다는 걸 알아채야 한다. 강감찬 장군의 기개가 부러운 시점이다. 주일미군 방위비 지출은 우리나라의 약 두배다. 주일 미군 기지의 70%가 남방의 작은 섬 오키나와 섬에 집중돼 있다. 중국을 겨냥한 배치다. 오키나와는 베트남 전쟁 당시 후텐마, 가데나 기지에서 전폭기가 매일 베트남을 향해 이륙했다. 유사시 하루 안에 신속 기동군이 한반도에 상륙할 수 있는 해병 부대가 있는 곳이다. 오키나와 태생의 소설가 메도루마 슌 (目取真俊)은 '물방울(水滴)' 등의 작품으로 태평양전쟁 이후 전쟁 기지화된 오키나와의 역사적 상황을 고발한다. 그는 카누를 타고 미군기지 앞으로 가서 시위하다 구금되기도 했다. 평화를 지킨다며 원치 않는 외국의 군대가 섬을 장악하는 풍경이 그들의 일상이 된 셈이다.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는 피로 물든 전쟁의 역사다. 피로 얼룩진 고통의 역사를 평화의 장으로 불러내는 일은 동아시아 한중일 구성원의 공통 과제다. 그러나 북한을 포함한 한중일 삼국의 외교•안보의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은 기후가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의 부여, 발해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바꿔 넣으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역사 왜곡과 닮아 있다. 중국과 미국의 대립 갈등 관계에서 한국과 일본은 언제나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하는 외줄 타기 같은 긴장 속에 있다. 침략과 학살의 과거를 부정하고 전범을 기리는 일본 정권의 셈속에는 전쟁의 망령을 재소환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국내의 정치 상황은 인민의 바람은 아랑곳없이 진영 간에 유불리를 따지며 격랑의 대치를 되풀이할 뿐이라 암울하기 짝이 없다. 철석같은 수구세력의 지원에다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망령된 종교 세력의 준동은 여기가 어느 나라인지 의심하게 한다. 평화와 인권, 주권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역사는 철저히 현재형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현재의 상황은 과거와 미래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의 상황은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에 우연성은 늘 따르지만.

매일 아침 충혼탑 뒷산 산책로를 오른다. 앞서 뛰어가는 개는 인간 세상의 내막을 알 리 없다. 무거운 마음으로 충혼탑 너머 펼쳐진 소읍의 잔잔한 새벽 풍경을 개와 함께 바라보는데 일찍 핀 산벚꽃이 허공 중에 난분분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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