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지네가 나타났다. 어릴 적 한약방 진열장에서 말린 지네를 다발로 묶은 걸 보았다. 청년 시절 정처 없이 건너간 제주도 감자 밭에서 수두룩한 지네 떼의 주검 보았는데 간밤에 내린 비에 맞아 죽은 것처럼 빈 밭에 깔려 있었다. 마치 잉카의 시민들이 태양절을 맞아 신전에 바치는 제물이거나 휴거를 예비하여 집단 자살한 종교집단의 의식과 같은 느낌이었는데 오래된 흙집 어디에서 지네가 나온 것이다. 파리채를 들어 내리쳤다. 순간 어깨에 강한 고통을 느꼈다. 놀람과 혐오의 충격은 상대의 삶과 죽음을 분별할 시간조차 헤아리지 않았다. 나는 폭력이고 나약한 상대는 몸을 짓눌러 부수는 힘에 떨었다. 머리를 힘차게 흔드는 지네를 향해 다시 일격을 가한다. 납작하게 부서진 지네의 다리가 흩어졌다. 내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낡은 집의 어둠에서 지네 쥐며느리 돈벌레는 심심찮케 출몰했다. 그때마다 파리채나 살충제를 뿌려댔는데 그건 마치 침입자가 집주인을 살해하는 꼴이었다. 베트남 민중의 백 년 동안 끈질긴 독립의 저항을 침략군이 고엽제와 화염방사기로 태워 죽이는 꼬락서니였는데 나는 제국주의 군대를 증오하면서 지네와 벌레를 죽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숨바꼭질하듯 밤이고 낮이고 나의 수면과 게으름을 가로질러 기어 다녔다.
뇌수를 말려버릴 듯한 땡볕이 마당에 쏟아지고 널브러진 박스 사이 넘나들며 이삿짐을 정리했다. 정리라기보다 분리수거다. 가난하게 뒹굴던 살림의 절반은 쓰레기다. 고철 플라스틱 귀 떨어진 이불 너덜해져 보풀이 일어난 의복, 꼬물거리며 웃는 아이들의 사진. 정말 우리에게 저런 때가 있었나 싶어 놀랐다. 아들은 아이들 가르치며 살고, 딸아인 일본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각자 흩어지고 아내와 난 이 빠진 그릇처럼 남았다. 원래의 길을 가는 거였다. 앞날 헤아리며 사들인 책들... 밤 깊어 고작 몇십 년을 살다 버려지는 쓰레기를 케리어에 싣고 나갔는데 청소가 끝나면 케리어도 버릴 참이다. 별빛은 징글맞게 싱싱했고 개구리 소리 청승맞게 푸르렀다. 내가 절룩거리며 어깨 만지는 동안 아내는 왕성한 근력으로 짐을 추리고 마당으로 던졌다. 새로운 정복자의 완력 같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태 동안 게으름과 고독을 즐기던 나의 일상에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내 눈엔 쓸 만한 물건도 심지어 내가 피천 들여 산 장아찌 통을 묻지 않고 내던졌다.
더는 빼도 박도 못할 처지가 되었다. 시간의 화살은 낱낱의 분자로 쪼개는 소피스트의 방식에 따르면 정지된 것 같아도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 생명성이란 의지적으로 태어날 수 없듯이 목적이 없다. 자연의 질서란 것도 일정한 합법칙성을 띤 것처럼 보이나 무질서의 질서, 카오스의 순환이다. 빅뱅 이후 초록별에 살게 된 인류는 살아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에다 민주제도란 정치제도 아래 살지만 인간다운 삶의 모습은 여전히 손에 잡힐 듯 빠져나가는 비누 같다. 서울 토박이는 변변한 고향이 없다. 골목에서 뛰어놀던 어릴 적 동네는 높다란 아파트나 건물이 빼곡한 이방인의 도시로 변했다. 시골 출신인 아내의 고향에서 디아스포라의 닻을 내리기로 맘먹었다. 반대로 아내는 도시로 서울로 탈주하는 행렬에 떠밀려 혹독한 곤핍의 땅을 떠나 정착을 꿈꾸던 중 재수 없게 날 만난 셈이다. 길고 짧은 시간을 에둘러 이제 고향의 물과 공기를 맞닥뜨렸는데 그건 귀향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삶의 선택이었다. 그녀는 어리석은 지휘관의 결정에 따라 고달픈 전쟁을 겪어야 하는 병사처럼 가난에 시달리다 고향 앞으로 가방을 챙겼다.
문제는 습기였다. 한 번 외우면 까먹지 않는 머리처럼 물기는 머물러 집안 곳곳에 피어났다. 늙은 개의 식사를 지인에게 부탁하고 열흘만에 돌아온 집은 온통 습기로 포위되었다. 벽을 타고 올라온 습기는 곰팡이를 키우며 영토를 확장했고 눅눅한 공기가 유령처럼 집안 구석구석 떠다녔다. 허공에 주먹을 모아 쥐면 손가락 사이로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그것의 몸짓은 불어난 개울 가잽이할 때 반두를 용케 피해 달아나는 물고기의 몸짓이 아니라 쇠락한 노인의 굽은 등에서 피어나는 검버섯처럼 죽음의 그림자 같게도 느껴졌는데 그것도 이미 살림의 일부로 스며들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이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수렵과 채집의 원시 인류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이동했다. 추위를 피해 식량을 얻기 위해 이동한 인류는 따뜻하고 온화한 터를 찾아 목숨을 건 노마드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먼저 정주한 농경민족에 대한 기마민족의 충돌은 약탈과 정복의 역사이기도 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이천 년을 유랑하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쫓아내고 학살을 자행한다. 유목의 노마드적 사유와 삶이 반드시 인간 생존의 보편타당한 섭세가 아니란 것이다. 유럽의 그늘을 떠도는 집시와 터키의 쿠르드족, 미얀마의 총칼을 피해 고향을 떠나는 로힝야족 등 난민의 피눈물 나는 역사는 정주하는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체제로부터 권리를 보장받은 기득권 세력의 폭력과 비인간성은 부정한 정권과 재벌 대기업의 횡포로 이어져 인간의 보편적 생존을 위협한다. 하지만 현대 인류는 생존을 위해 무한정 떠도는 액체성의 실존적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물질과 권력에 대한 기본적 보호망이 없는 나약한 개인은 밥벌이를 위해 떠나는 길의 도정에서 늙고 병들어 사라진다. 인간은 나이 들수록 체제의 안정을 원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적 성향을 띤다. 가난과 침탈의 역사로 살아온 우리 사회의 구성원조차 부의 팽창과 분단체제의 고착에 따라 보수화의 색깔이 도드라진다. 결혼이주 여성의 가족을 '다문화'란 이름으로 문화적 차이를 차별로 대하며 3D업종의 외국인 노동자에게 가혹한 노동과 임금체불 등의 착취를 강요한다. 게다가 종교와 문화 차이를 내세워, 밥그릇을 앞세워 내란을 피해 들어온 무슬림의 난민지위 인정에 인색하다. 결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배워먹지 못한 자의 생각이고 행동이다.
인종차별은 보편적 인간의 존엄성을 접어두고 그 사람의 피부 색깔, 출신 국가 등에 대한 편견을 주입함으로써 인간의 평등을 침해하는 것을 말한다. 히틀러는 아리안 혈통의 우월을 앞세워 유태인을 학살했지만 실은 인종 청소의 범위는 같은 아리안족이라도 장애인, 정신병자, 성소수자, 정치범 등을 망라했다.
우리의 난민 역사 또한 뿌리가 깊다. 전쟁, 식민 지배를 피해 만주, 연해주, 일본 등지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 게 난민을 받아들일지 말지의 조건은 아니다.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생명 존중에 대한 가치를 실천하자는 말이다.
만약에 저들이 피부가 하얀 백인이었다면? 기독교인이라면? 무턱대고 인종 혐오의 발언이 나오진 않았을 것 같다. 무슬림이면 죄다 IS이고 테러리스트인가. 이슬람의 여성 차별의 전통은 용납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저소득 빈민층을 앞세워 우리도 먹고살기 힘들다고 저들을 내친다면 인간성의 가치를 앞세운 촛불의 정신은 대체 우리만 잘살자는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우리 안의 빈곤층과 소수 약자층에게 배려와 관용을 베풀었는가 말이다. 정부가 앞서 제주의 무사증 입국을 차단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얼마든지 공존 상생하는 지혜를 머리를 맞대고 짜내도 부족한 판에 난민 반대 청원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체 벼랑에 선 인간을 떠밀려는 수작인가.
몸과 사유의 유목주의는 겉과 속이 다른 무늬만의 사유이고 이주인가. 끝없이 줄기를 치고 뻗어나가는 리좀의 존재란 내 안의 타자성을 넘어 환대와 경청으로 상대와의 소통으로 경계를 지우는 자율의 상상력이다. 관습과 타성을 깨부수고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고 자율의 정신을 몸으로 실천하는 삶이다. 그러나 인간의 나약한 정신은 여전히 이기성의 안온에 머무는 타성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자신의 주체적 삶의 의지는 외면하고 자본과 권력의 그늘에 기대는 노예의 삶이다. 큰 차를 몰고 큰 평수의 집에 살아도 사유는 바닥을 기는 속악한 전형이다. 그런 행동과 생각은 뼈아픈 독버섯이다. 입신과 출세를 위해서 타자성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개구멍 가문의 전통이다. 가문은 사회의 전 계층이고 나의 역사고 지금의 얼굴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