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먹고 싸고 잠만 자는 게 사람이야? 짐승이지. 운동하라고 해도 꼼짝도 안 하고 불 켜놓으라 해도 캄캄한 동굴 같이 해놓고선...'
밖에서 돌아온 아내의 부아가 터졌다.
장모는 대꾸가 없다. 대꾸할 생각도 없다. 사는 낙도 고통도 감정도 죽어간다. 그런 장모가 아들 내외 왔을 때 '우예든동 서로 아껴가며 잘 살아라' 했을 때 구태의연을 느꼈다. 사위 눈치 보고 딸 집에 살기 싫으니 날 좀 데려가라는 속내다. 며느리가 싫으니 그 말이 나올 리 만무지만. 난 그런 장모에게 날을 세웠다. '그런 말 한다고 젊은 사람들이 노인 존경할 줄 아니껴. 맘에 없는 소리 하지도 마소. 솔직하게 여기 살기 싫으니 데려가라 하소' 장모는 모른 척 딴청을 피웠다. 내겐 그렇게 보였다.
장모가 자신만 생각하게 된 건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해봐야 먹히지 않고 장모의 인식은 수준 이하로 대접받았다. 주는 대로 받고 주는 대로 입고 먹을 뿐이었다. 정신이 흐리지 않을 때는 따지기도 했지만 조현 증세가 나타나고부터 아이가 되었다. 일머리를 까먹었고 상황에 대한 분별력이 사라졌다. 지각적 판단 능력이 사라졌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음 순서는 뒷전이다. 장모가 귀신보다 잘 해내는 건 시간 맞춰 밥 먹는 것과 약 먹는 일이다. 그러면서 빨리 죽고 싶다고 노래한다. 나는 그 말이 맘에 없는 말이거나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모의 인식에도 이렇게 사는 건 지옥 같은 삶이다. 그러나 목숨이란 건 의지대로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의식은 죽음으로 향하는데 몸은 허기를 느끼고 섭생을 부추긴다. 죽음을 행위로 옮기는 건 지독한 고통이고 지극한 두려움이다. 남은 자식들의 체면을 위해서는 더욱 못할 짓이다. 타인에 대한 인정 욕망을 구기지 않기 위해선 더럽게라도 살아야 한다. 죽어도 곱게 죽어야 한다. 자꾸 배고프다. 먹을 것만 보인다. 절로 손이 간다.
동굴 같은 방 침대에 누워 천정을 본다. 열린 문틈으로 딸과 사위의 생활을 개관한다. 살짝 소음만 스쳐도 소리의 원인과 진행을 알아챈다. 무감하고 싶어도 그것만은 피할 수 없다. 살던 동네의 소식은 부고뿐이다. 요양원에서 떠난 군위 댁, 농약 마시고 떠난 재산 댁, 누구네 아들 이혼하고 자살했단 소식. 죽어도 자살은 남부끄러운 짓이다. 식탁에 당겨 앉기, 밥 흘리기 말기, 흘린 음식 주워 먹지 말기, 젓가락 대신 숟가락으로 떠먹기는 끼니때마다 딸의 잔소리다. 장모는 매일 말해도 처음 듣는 식이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딸과 사위가 번갈아 확인한다. 변기 물 내리기, 세면대 물 잠그기. 장모의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멈췄던 물이 콸콸 나온단다. 요술이거나 귀신의 장난이다.
장모의 조현병 진단서를 첨부해 연금공단에 장애 등급을 신청했다. 병원에서 발급해준 서류는 얇은 책 두께였다. 낮에 노치원(老稚園)에 보낼까 해서다. 석 달만에 불가 판정이 왔다. 상태가 나빠져 요양 등급을 받으면 그나마 장모의 삶은 끝장이다. 요양원은 말년의 노인들이 모여 죽기를 기다리는 곳이다. 사육 살인(飼い殺し)이란 일본말이 있다. 쓸모없는 짐승을 죽을 때까지 가둬두고 기르는 것을 뜻하는데, 이차대전 후 일본에서 결핵 환자를 사회와 격리시켜 수용한 상태를 말한 것이다. 노인 요양원의 상황이다. 힘없고 정신없는 노인은 자식에게도 짐이다. 따순 밥 지어 학교 보내고 자나 깨나 자식 잘되기만 소원했던 어미의 사랑은 오래전에 식었다. 자식의 눈앞에는 나이 들어도 자식에게 헌신하는 인자함을 잃지 않는 희생의 어미가 어미이지 늙고 초라해 자신의 밥 하나 흘리지 않고 고맙게 먹어치우지 못하는 어미는 성가신 혹이고 짐이다.
세상에는 자식을 뜯어먹고 사는 부모도, 부모의 목을 조르는 자식도 있다. 효는 만행의 근본이란 말로 효를 강제하는 시대는 지났다. 강제된 효는 서로에게 폭력이다. 부모의 몸을 빌어 태어난 존재는 행복이든 고통이든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산다.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비극이다. 국가도 개인도 노인을 완벽하게 돌보기란 불가능하다. 오늘날 노인은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지고 가는 처지가 되었다. 경제적 빈곤과 질병, 고독이 노인의 문제로 떠올랐다. 노후를 보장할 재산을 가졌거나 자식의 효도를 받는 건 순전히 운 좋은 노인의 축복이다.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노인의 절망은 보편적이 되었다.
우리는 겉으로나마 부모를 생각하는 마지막 세대다. 나는 노후를 생각하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빈곤과 가난과 건강으로 참담한 지경이더라도 나는 여전히 살아 실존의 고통을 누리는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비극이면서 받아들이는 수밖에.
장모를 볼 때마다 연민과 분노가 섞인다. 늙고 나약함에 대한 연민이고, 시대와 역사에 휘둘린 개인의 삶, 인식의 무지에 대한 분노가 그것이다. 분노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뒤집는 생산적인 감정이지만 짜증과 신경질은 감정의 배설에 불과하다. 과정이 없는 즉설적인 감정이다. 인간은 개개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철저하게 고독한 실존적 존재다. 누구나 삶의 질곡을 헤쳐나가기엔 동일한 우연을 겪을 수 없다. 지난한 살아내기의 과정에서 늙고 초췌한 인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어느 형제도 장모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거나 밥숟갈 위에 열무김치 올려주지 않았다. 머리 감기는 것조차 끔찍해한다. 가난한 장모는 딸들에게 돈을 주지 못했다. 스스로 벌어 학교를 마치고 결혼했다. 겨우 아들에게만 지원이 간 건 맞지만 장모라고 손가락 팔아 보탤 수 있겠는가. 거개 시골의 부모들의 형편이었다.
아내는 시골에 사는 이유 중 하나가 장모를 돌보는 거라고 했다. 목욕탕도 가고 머리도 감긴다. 내 눈엔 장모의 자식으로 보인다. 나머진 제 살기 급급해 어려운 형편이라지만 다 먹고살 만하다. 찾아와 부드러운 말과 눈길을 장모에게 보내지만 속으론 주장 없고 자아가 실종된 초라한 노인에게 보내는 연민과 짜증을 숨긴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잘살기 위해 만족의 경계가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 앞에서 몇 시간은 참지만 단 며칠도 고통스러운 게 사람이다. 하나뿐인 며느리는 장모와 오 년을 살다 우울해져 버렸다.
장모는 권위가 없다. 아니 권위가 필요 없었다. 어미의 지위가 권위였다. 가정적이지 못한 장인의 그늘에서 눈치 보는 어미였으나 자식들에겐 우릴 낳아 키워준 가여운 어미다. 손이 갈퀴가 되도록 산 수많은 어미다. 가난했지만 자식들은 착하게 자랐다. 착하다는 건 현실의 결핍을 참고 세상의 가르침에 충실하며 '열심히' 산다는 거다. 결과적으로 잘살게 되었지만 부모의 무능은 도드라졌고 과거의 가치는 좀 슬어 폐기되었다. 인간의 평가를 결과로 보게 된 건 자본사회의 성과주의 때문이다. 그럼에도 혈연주의는 그런 시각을 초월하기도 한다. 여전한 복잡한 문제를 지니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