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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by 소인

백령도(白翎島).

서해의 끝섬. 끝섬이나 대청도 어청도 연평도 우도의 서해 오도 중에 가장 큰 섬이다. 이북의 장산곶과 마주 보는 섬. 한국 전쟁 전에는 황해도에 속했다가 경기도를 거쳐 지금은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한 섬이다. 고려 때는 곡도(鵠島)라 해서 따오기 섬으로 불렀다. 한 번 귀양 가면 죽어서야 나온다는 최악의 섬이었다.

섬에 가서 몽돌을 만났다. 파도가 뭍을 핥을 때마다 사라락 사라락 몸 부딪히며 소리 내던 몽돌 해변은 온통 공깃돌 만한 몽돌 천지였다. 메추리알보다 작고 맨들한 몽돌은 짠물에 젖어 반짝였다.

이십 년도 더 되었지 싶다. 케이블 채널이 생기고 민영방송이 비 온 뒤 죽순처럼 생기던 무렵 한 방송사의 초청으로 섬 여행을 했다. 인천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잔잔한 물길을 가르며 백령도를 향해 나아갔다. 새우깡에 맛 들인 바닷새가 따라오고 육지는 점점 멀어졌다. 크고 작은 섬들이 수제비처럼 둥둥 떠 있는 연안 수역을 벗어나자 서해가 드넓게 펼쳐졌다. 정기 여객선은 휴가 나왔다 귀대하는 해병 군인과 섬 주민 그리고 섬 여행에 들뜬 광고쟁이들을 태우고 산둥반도 거나 멀리 칭다오 방향으로 내달렸다. 대청도 어청도가 나타나고 심청이가 빠졌다가 연꽃 속에서 환생한 연화암의 설명을 들으며 믿거나 말거나 즐거운 뱃길은 네 시간이 지나서야 백령도에 닻을 내렸다.

처음 본 백령도는 물풍한 갯것과 함께 뭍과 다름없는 농사를 병행하는 풍요로운 섬이다. 국방부 시계를 가슴 졸이며 헤아릴 푸른 제복의 군바리에겐 감옥 같더라도 말이다. 일행은 일박 이일의 짧은 여정을 토실하게 메꾸기라도 하듯 곧바로 일정표대로 분주히 움직였다.

선착장에서 가까운 사곶해변은 모래가 치밀하고 단단해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천연 비행장이다. 두무진의 물 위에 솟은 탑 모양의 바위,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물질하는 점박이 물범, 해녀가 잡아온 멍게 해삼 성게는 낮술을 부르는 별미였다. 가이드의 재치스런 진행에 불콰해진 일행은 주낙을 하나씩 들고 낚싯배에 탔다.

섬 연안에 나가 갯지렁이를 꿰어 내렸는데 미끼가 물 바닥에 닿기도 전 굵직한 놀래미가 덥석덥석 물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난 처음 낚시하는 일행의 바늘을 빼주느라 바빴다. 낚싯바늘의 미늘에 걸린 놀래미는 눈을 데룩거리며 바께쓰에 처박혔다. 양동이는 펄떡이는 생선으로 금세 가득 찼다. 한창 배낚시에 빠져 있을 때 멀리서 사이렌이 울었다. 선장은 낚시 종료를 알리고 잽싸게 섬으로 배를 몰았다. 해상에서 이북의 경비정이나 어선이 내려오면 즉시 귀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섬의 풍경과 놀래미 낚시에 취했던 일행은 그제야 분단의 현실을 목도했다. 섬사람이야 일상이지만 일행은 무거운 표정으로 돌아와 다음 일정으로 갔다.

늦은 오후의 초여름 햇살이 섬을 물들였다. 섬 내륙의 풍경은 뭍의 것과 다름없었다. 유월의 미풍이 살랑대며 얼굴을 간질였다. 일행이 탄 차는 보리누름의 노릇한 섬의 들판을 달려 해안에 도착했다. 바닷바람을 막는 해송이 병풍처럼 둘러친 샛길을 빠져나가니 생전 처음 보는 해변이 나타났다.

몽돌 해변.
몽돌은 닳고 닳아 동글동글해진 돌이다. 지구의 탄생과 함께 생성된 암석의 덩이가 파도에 쓸려 동글해진 거다. 바위보다 호박돌보다 자갈보다 작은 돌멩이가 해안을 따라 끝없이 깔렸다. 귀담으니 사라락 사라락 속삭이는 소리가 발밑에서 났다. 누가 이런 작은 알을 서해 끝섬에 쏟아놓은 걸까. 부화를 꿈꾸는 알의 소리 같았다. 후릿그물로 펄떡이는 생선을 끌어내는 노햇사람들의 아우성이 환청처럼 밀려왔다. 삶의 짭조름한 이야기가 단단하게 맺힌 몽돌을 파도가 밀어 올리고 대륙에서 불어온 바람이 데워 금세라도 파닥대며 새가 날아오를 것 같은 환영이 어른거린다.

일행은 몽돌을 줍거나 쓰다듬으며 해안을 밟으며 걸었다. 아득하게 먼 지점에 북쪽의 지형이 보였다. 완만하게 굽은 소의 잔등 같은 땅덩어리가 바다에 이르러 고개를 처박은 형상이었다. 흐린 날 밭을 가는 북쪽 농부의 쟁기질 소리가, 토닥토닥 도마를 두드리는 아낙의 칼질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상상과 달리 현실은 반대다. 이쪽과 저쪽이 포신을 겨누고 스물네 시간 대치하는 곳. 서로의 가슴에 총을 들이대고 돌아선 지 사십여 년이다. 물리적인 거리는 손에 닿고도 남는데 사상과 이념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발밑에서 바스러질 듯 미끄러지는 몽돌은 바람 같은 세월에 닳고 닳으며 섬과 육지 사이의 긴장을 헤아렸을까. 한국전쟁을 전후로 남쪽으로 내려오는 사람의 죽음보다 무거운 침묵과 두려움.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의 불안과 공포를 쓸어주었을까. 삶의 고통과 아픔을 알에 새겨 참을 수 없는 순간에 갈라지고 터져 부화하려는 몽돌의 꿈은 무엇일까. 핏줄에 흐르는 생명의 기운은 무생물에도 통할까. 인간의 상념이 빚어내는 자잘한 상상에 불과할까. 몽돌 해변에서 끝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튀어나왔다.

앞서가던 가이드가 일행에게 저녁의 만찬을 알렸다. 백령도의 섬과 물에서 나는 것들의 물풍한 전갈에 일행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해변을 벗어난다. 몽돌 몇 개를 집어 들여다본다. 삶의 두려움과 원망, 세월의 덧없음이 동글하게 맺힌 몽돌. 언제고 껍질을 깨고 비상하는 바다새의 알. 손의 힘을 빼니 스르르 떨어져 몽돌에 묻힌다. 좀 전의 몽돌은 온데간데없다. 어쩌면 무수한 인간 군상 중에도 삶의 껍질을 깨고 하늘의 빛을 보는 자가 있을까. 빛이 진리라면 진리 가운데의 풍경은 비로소 자유로움일까. 거저 얻는 자유는 없을 거다. 고통과 분노와 좌절을 넘어서지 않고 삶의 실체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다.

"삶은 지저분하고 야만적이다 그러나 짧다."는 말처럼 삶의 운명은 자의적으로 불시에 길을 내고 가로막는다. 인간의 의지는 파도와 바람에 쓸리고 닳는다. 몽돌 해변을 떠나 섬의 식당에 들어서도록 취해 잠들도록 몽돌의 속삭임이 점점 크게 맴돌았다. 그동안 서해 끝섬의 몽돌을 잊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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