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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일①

삶을 영위하는 활동 중에서 인간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행위가 노동이다. 돈을 번다는 건 밥을 버는 일인데 자본이 정점인 사회에서 밥 버는 일은 노동의 신성함과는 거리가 있다. '하면 된다'와 노력해서 행복한 삶을 살려면 '근면•성실'해야 한다는 자본가의 독려는 노동자를 위한 게 아니다. 노동은 그 본질의 층위에서 본다면 합당한 가치를 낳지 못한다.

국가와 자본가의 전략 중 하나는 지배 구조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 시민과 노동자를 순치(馴致)하는 일이다.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오래된 거짓말이다. 정권의 편에서 불의한 권력의 비밀을 알아챈 시민은 불편하다. 자본가의 독식 구조를 간파한 노동자는 밥을 넘어선 세력으로 힘을 모으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건 밥으로부터의 자유, 즉 노동의 자유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노동은 자유를 구속하는 속임수를 갖고 있다. 정권과 자본은 언제나 밥과 자유를 가지고 으르대거나 속임수를 일삼는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해 노동자가 쥐는 건 한 달치의 양식이지만 판을 벌여놓은 사장은 힘들이지 않고 몇 배를 가져간다. 노동자는 덥다고 쉬고 춥다고 놀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추운 날 발을 동동거리며 버스를 기다리고 졸음을 참고 기계에 매달리고 육수처럼 땀을 쏟으며 산등을 넘어야 한다. 산과 바다, 들과 땅속에서 노동자는 밥을 벌기 위해 전방위로 몸을 던진다.

운 좋은 이는 행복하게, 운 나쁜 이는 불행한 삶을 살다 가는 게 인생이다. 물질적 조건으로서의 풍요와 결핍은 개인의 노력으로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인격과 품성이나 교양, 지식과도 멀다. 흙수저와 금수저의 출신 성분으로 나눠지는 출발선은 그래서 공정하지 않다. 더군다나 탄생 이후 사회 구성원이 되기까지 사회 각 부문의 상황과 조건이 공정하지 않다. 혈연, 학연, 지연, 인맥에다 돈마저 없으면 삶은 고난과 맞서야 한다. 노동은 우리가 먹는 밥의 정당성에 대한 기초인데, 재능과 노력은 부차적이라고 사회는 은근하게 속인다. 여기에 '만들어진' 몸은 자본주의 사회에선 철저히 상품으로 유통된다. 내겐 건강뿐이었지만.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단어와 청년들의 무력감은 젊은 층만이 아니라 전세대를 아우른다. 먹고사는 데 아이 어른이 따로 없다. 초고령사회로 들어가는 사회의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산골엔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50%가 넘는 한계 부락(限界 部落)이 늘고 있다. 조만간 마을 전체가 사라질 운명이다. 구태의연하고 쇠락한 농촌에서 나이 든 노인들은 유령처럼 살면 수명을 연장한다.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살아온 경험으로도 가족을 충분히 건사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그러나 산골은 제대로 된 벌이가 없었다. 가진 것 없는 내게 시골살이는 시련을 의미했다. 젊음 하나만 믿고 달려든 무모함을 금세 깨달았다. 시골에 내려가 도시만큼의 수입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통장은 수맥이 끊긴 우물처럼 바닥을 보였다. 산골에 들어가서 일자릴 기대한 건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같은 무모함이었다.

숲 가꾸기 공공근로에 참여했다. 낫을 들고 산을 더듬었다. 가막 덤불, 칡덩굴을 걷어냈다. 일거리 없는 산골의 빈한한 처지로선 요긴한 일자리였으나, 분기마다 탈락과 채용에 가슴 졸여야 했다. 재산 규모에 따라 선발된 인원의 면면을 보면 농촌에서도 소외된 인간 군상의 백화점이었다. 산림청의 담당자는 매일 아침 인원 점검에도 진땀을 뺐다. 도시의 복판에서 컴퓨터를 두드리던 손으로 숲의 아랫도리를 더듬었다. 날이 갈수록 얼굴은 그을렸고 손발은 억센 짐승의 발톱을 닮아갔다.

경남 양산의 임업훈련원에서 임업 교육을 받은 후 기계톱을 잡았다. 동절기엔 간벌목을 톱밥 기계에 바수어 톱밥을 생산하는 조장을 맡았다. 근동의 농부들은 톱밥 사러 오면서 돼지머리와 댓 병 소주를 가져왔다. 조원들은 번갈아 톱밥 기계에 매달리며 술을 마시고 돼지머리를 뜯었다. 돼지는 코와 귀때기 잘려도 보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공공근로가 끝날 즈음 집에서 키우던 닭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주둥이 심심하다고 보채는 조원들 다 삶아 먹였다. 공공근로가 끝나갈 때 산림 자격증을 땄다. 필기는 쉬웠으나 실기가 어려웠다. 산의 일은 내게 모두 생소했다.

남의 밭을 빌려 농사하는 틈틈이 낚시를 다녔다. 낙동강의 지류에서 지렁이로 꺽지를 잡았다. 은빛 여울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 물가에서 무료를 던지고 적막을 낚았다. 아내는 마당에서 말없이 나물을 다듬고 씻어 데쳤다. 가난한 살림에도 가장은 만사태평했다. 가끔 글을 썼지만 정돈되지 않은 글쓰기는 곧잘 꺾였다. 생각을 글로 옮긴다는 행위가 물통 없이 사막을 걷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산골에서 친구를 사귀며 학교에 다녔고 나날이 발목이 굵어졌다. 무대책인 가장이라도 앞으로 살 일에 마음 한 켠에는 무거운 납덩이가 달렸다. 아는 구석 없는 낯선 산골에서 당장 옴치고 뛸 재간은 없었다. 마당에 숯불 피워 고기를 구웠다. 골짜기 마을에 어둠 깔리면 남은 숯불에 된장 뚝배기 올려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도 사그라들지 않은 불 위에 물을 끓여 커피를 마셨다. 참나무 숯불은 오래 탔고 도란거리는 가족의 대화도 밤늦도록 따스했다. 처음 하는 농사는 실패의 연속이었으나 배운 게 많았다. 성공에서보다 실패에서 얻는 게 많은 법이다.

고추와 서리태 콩을 심었다. 하우스를 짓고 포트(모종판)에 상토를 채워 싹 틔운 고추씨를 넣었다. 마지기(삼백 평) 당 삼천 포기, 세 마지기 땅에 고추를 심고 천 평에 콩을 심었다. 모종 심을 때 처가 식구들이 와서 도운 것 빼곤 아내와 둘이서 농사지었다. 없는 형편에 놉을 살 수도 없었다. 땡볕 쏟아지는 한여름 김매고 돌아서면 처음 풀 뽑은 자리에 파랗게 풀이 돋았다. 농사는 풀 농사가 반이라지만 뽑아도 캐내도 올라오는 풀이 두려웠다. 풀잎은 시퍼런 칼날이었다. 칼날에 베인 허리는 뜨거웠고 부러질 듯 휘청댔다.

비탈밭 고춧잎 물결칠 때 농약 치기에 온 가족이 출동했다. 경운기에 달린 분무기 조작법을 아들에게 가르치고 수신호를 정해 농약을 뿌렸다. 아내와 딸은 중간에 서서 약 줄을 잡았다. 낡은 농약 줄의 여기저기서 호스가 터졌다. 비탈밭 아래 위로 뛰어다니며 호스를 동여맸다. 땀과 약물이 범벅된 몸에선 문대고 씻어도 약 냄새가 났다. 고추 딸 무렵엔 아내와 밭고랑을 기어 다녔다. 나흘을 따도 헛물켜듯 붉은 고추는 자꾸 달렸다. 밭고랑에 누워 아내의 가슴을 만졌다. 여름의 기운이 벗겨진 하늘은 파랗고 공활했다. 밤이면 젊은 아내는 고춧물 든 손으로 옷을 벗었다.

「아내」

한여름 물쿤 더위가
눅어질 무렵 사흘이 멀다 하고
고추밭에 나갔다

고추 값 떨어지기 전
장에 내기로 아내는
허리 두드려가며 고랑을
기어 다닌다

따도 따도 헛물켜는 듯
매달리는 핏빛 고추
한 짐 지고 이나르던
한숨이 더 무겁다

손톱 사이로 고춧물 떨어지는
가풀막 돌밭 이젠
지겨워

밤으로
붉은 고추 숨 가쁜 입김
달빛 그늘에 쏟아지는데
고추 물든 손으로
옷 벗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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