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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일②

돈 되는 태양초를 말린다고 애썼다. 궂은 날씨에 말리던 고추에서 곰팡이가 피었다. 불겅이가 늘고 수확은 반으로 줄었다. 서리태 콩도 다섯 말 넘게 털었다. 장날 상인에게 넘기고 바꾼 돈을 세어보니 우리 가족 굶어 죽기 딱 좋게 생겼다. 농사를 접고 일자릴 찾아 나섰다. 광산에 들어간 건 가을이 끝나갈 어름이었다.

일제 때 채굴을 시작한 아연 광산이었다.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은 일제는 국토를 샅샅이 조사해 광물을 파먹었다. 군 내의 금광도 그랬고 일월산 아래 아연 광산도 마찬가지였다. 땅속 위아래 종횡으로 파먹어 구멍이 숭숭 뚫린 벌집 같았다. 툭하면 붕락 사고도 일어났다. 집에서 다니긴 멀지 않았지만 차비를 아끼려고 처음엔 합숙소에서 잤다.

한 층이 일 편으로 오십 미터 씩 십일 편이니 막장은 지하 육백 미터다. 발파나 착암 기술이 없어 광차를 미는 조차공을 했다. 정확히 말해서 시키는 대로 하는 잡부였다. 각 편마다 발파해서 아연 원석을 광차에 실으면 굴 밖으로 빼내는 작업이다. 본사에 하청 사장인 덕대가 작업을 지시했다. 하루 여덟 시간 삼교대로 굴에 들어갔다. 조차공은 나를 포함해 네 명이었다. 아침 조회 시간(방울이)에 체조와 구호를 외치고 작업을 시작한다. 벨트에 배터리를 달고 헬멧에 전등을 달고 케이지를 타고 지하로 내려간다. 돌보다 무거운 아연이 실린 광차를 끌어낸다. 광차는 앞의 야간조가 작업한 물량이다.

검은 물이 흐르는 갱도엔 습기로 가득했다. 멀리서 딱따그르르 돌벽을 두드리는 듯한 발파음이 들린다. 지옥으로 가는 중간의 연옥에서의 아우성 같다. 욕망을 채우지 못한 죽은 영혼이 대갈통이 터지게 부딪치는 모습과 겹쳐졌다. 지상의 두 사람과 지하의 두 사람의 작업인데 나는 주로 갱내에 남았다. 광차를 빈 케이지에 밀어 넣으면 빈 광차가 내려올 때까지 혼자 남는다. 안전등을 끄면 사방이 칠흑이다.

눈앞에 터럭만큼의 빛도 잡히지 않는다. 이대로 아득한 심연의 바닥으로 묻힐지 모른다. 난 어쩌자고 이토록 낯선 암흑의 심연에 서 있는가. 지상에서 꿈꾼 욕망은 모두 거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도 가족도 내가 이루려던 삶의 바람도 여기선 한낱 멀고 먼 타인의 일처럼 느껴졌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의 비웃음과 손가락질이 어둠 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대로 갱도가 무너지고 나갈 수 없다면. 그리고 구조를 포기하고 갇힌 채 죽음을 맞게 된다면. 나는 나의 삶을 어떤 무늬로 정의할 수 있을까. 도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족을 이끌고 시골로 내려와 삶을 마감한다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삶은 자주 의지와 다른 쪽으로 흘러간다. 주체의 사유는 중심을 따르지 못하고 변방으로 기운다. 난 그것을 원한 게 아니었나. 시대적 상황과 우연이 개인의 의지와 맞물려 역사를 이룬다면 개인의 역사도 역사다. 비록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고 싶었던 세상의 되풀이더라도 나의 삶이다. 우르릉 대며 케이지가 내려왔다. 젖은 우비의 동료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손짓한다. 굴 밖에 나오니 폐석 더미 너머 가을꽃이 흔들거렸다.

재수 없게 광산은 내리막을 걸었다. 시추반이 더 이상 새로운 광맥을 찾지 못하고 벌에 쏘여 쫓기던 다음날 인원 감축을 시작했다. 영림단에 들어간 건 광산을 나오고 한 계절을 쉰 다음이었다. 봉화와 울진의 산속에서 밥을 벌었다. 조림, 간벌, 풀베기, 수간주사와 벌목작업을 했다.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숲과 차츰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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