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경기에서 일이삼 등으로 순서를 매기는 건 차이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타율 순위, 홈런 순위, 도루 순위 등으로 차등을 둔 것도 목표를 향한 경쟁을 부추긴다. 좋은 뜻으로의 경쟁을 나쁘게 볼 순 없겠다.
출근길 강변 공원에서 잠시 쉬다 가려는데 돌 팻말이 시선을 끈다. 아끼고 사랑하는 대상에 순위를 매겼다. 1) 나라 사랑, 2) 물 사랑, 3) 자연 사랑... 짜증이 난다. 따지자면 자연 사랑이 제일 윗길이었어야 했다. 생태 범주에 물이 들었으니 빼도 그만이지만 뜬금없이 '나라 사랑'이라니? 나라 사랑하면 물과 자연도 당연히 사랑하게 되나. 물론 자연은 사랑하는 대상이 아닌 섬겨야 할 대상이다. 국가는 지구 생태계가 생긴 한참 뒤의 끗발이다. 국가의 기본은 인민의 생존 보호지만 입때껏 국가는 권력의 칼을 마구 휘둘렀다.
한국전쟁 당시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가의 부대인 국군이 양민을 학살했다. 이유는 빨치산 토벌이었다. '국민을 죽이는 나라가 나라입니까?' 젊은 주민이 외치며 죽었다. 가산을 팔아 만주 땅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몸 바쳤던 이회영과 신채호 선생은 아나키스트였다. 일체의 권력을 배제한 자유로운 민족 공동체를 꿈꿨다. 부모가 부모 같아야 효도할 마음이 생긴다. 애국심도 마찬가지다. 나랏 꼴이 나라 같아야 절로 애국하는 마음이 동할 터.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는 관제 애국과 강요된 효심을 양산했다. 노인 공경도 그렇다. 난 길 가는 노인을 인격체로 대하지 늙고 약해서 무조건 공경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도 내면화된 욕망을 끌고 살아온 존재다. 존경하는 어르신 채현국 선생은 태극기 할배를 보고 '잘 봐 둬라, 잘못 늙으면 어떤 꼬락서니가 되는가'라고 일갈했다.
주변의 돌이나 건물에 쓰인 구호를 보면 시대의 얼굴이 드러난다. 팔십 년도 인천에서 직업훈련소 다닐 때 하교하는 초등학생의 이름표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거기에는 '2중대 5소대'라고 쓰여 있었다. 군사 독재가 판치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