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의 산책이다. 개와라면 나도 함께 산책하는 것 같지만 순전히 개를 위한 산책이다. 오래전부터 다리 통증이 있었다. 정확한 병명은 모른 채 침을 맞으러 다니고 접질리면 지팡이를 짚기도 했다. 그러다 복숭아뼈에 물혹이 생겨 가정의학과에 갔다가 오금 신경에 혹이 달린 걸 발견했다. 서울의 큰 병원에 가니 커지면 미세 신경 접합술을 하기로 했지만 커지진 않고 통증이 가끔 동무처럼 찾아온다. 달리기나 걷기 운동은 꿈도 못 꾸다 자전거를 탔다. 전국을 돌고 나서 한여름에 집 근동을 매일같이 땀 쏟으며 달리다 다리 통증이 심해 그만두었다. 자전거도 무리라니 차로 여행했다. 그러다 늦은 겨울 곰돌이가 손님처럼 찾아왔다.
진도 믹스견 나라와 열여섯 해 살다 떠나보내고 다신 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매일 드나드는 길고양이에게 사료 주는 낙으로 살았다. 우리 집은 길냥이 급식소로 변했다. 녀석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고 불렀다. 사람의 손길을 단호히 거부하는 길냥이들이었지만 골목에서 부르면 귀를 세우고 따라오곤 했다. 녀석들은 크면서 제각기 영토를 찾아 하나둘 떠났고 다산 여왕인 어미 고등이가 새로 낳은 새끼들이 두리번대며 마당에 찾아왔다. 나라는 교양 있고 점잖은 개였다. 팔리 모왓의 「개가 되고 싶지 않은 개」에는 평범한 시골 개 '머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주인 '팔리'와 친구로 지내며 사냥에 특출한 소질을 보이는 머트의 모습은 소년 팔리에게 영웅적으로 비친다. 압권은 말년의 머트에게 오리를 잡아달라고 하자 머트는 쏜살같이 달려가 정말로 오리를 물고 오는데, 그건 동네 가게에서 파는 박제된 물오리였단 사실. 둘은 평생 친구로 살다 쓸쓸한 이별을 한다. 나라는 강원도서 뒷산 산책길에서 놔준 쇠줄에 송이가 걸려 놀라게 했고, 특식을 주면 주인이 자리를 뜨고서야 먹었다. 나라는 생후 석 달 무렵 이웃집의 닭을 두 번이나 서리한 전력도 있다. 아이들 커가면서 나라도 늙었고 강원도서 경상도 땅으로 이사해 이 년을 더 살고 수명을 다했다. 미리 봐 둔 산자락에 가족과 나라와의 추억을 고이 묻었다.
반려동물은 입양한 이상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게 인간종의 동물종을 향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동물은 쉽게 사서 쓰다 버리는 상품이 아니고 용도 폐기하는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집단 사육하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쾌고 감수(快苦感受) 능력을 가진 반려동물은 인간처럼 슬픔과 기쁨, 분노와 그리움의 감정을 지녔다. 처음 인연을 죽기까지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사람과 같다. 그런 동물을 물건이나 나무토막 취급하는 사람은 감성의 온도가 낮은 사막의 가시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대상과의 소통이 언어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교감은 시선, 행위, 어루만짊, 쓰다듦으로도 이루어진다. 따스한 말과 눈길로도 상대에게 포근한 기운이 전이된다. 사회와 사람에게 상처 받은 영혼을 반려동물을 통해 치유 받음으로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예부터 인간과 동물은 상생하는 존재였다.
딸아이가 대만에서 귀국하고 자가격리를 마쳤다. 대만엔 고양이 마을이 있다. 그곳에 몇 번 갈 정도로 동물을 좋아하는 딸은 마당에 밥 먹으러 오는 길냥이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개를 키우고 싶다고도 했지만 난 완강하게 반대했다. 이별의 아픔보다 지금 입양하면 내가 먼저 세상 뜰지도 몰라서였다. 어느 날 딸이 사고를 쳤다. 종이 상자에 눈이 머루 같이 생긴 잿빛 강아지를 안고 온 거였다. 녀석은 눈을 굴리며 낯선 공간과 낯선 얼굴의 눈치를 살폈다. 도로 물리기엔 딸의 표정이 완강했다. 곰처럼 생겼다고 곰돌이라고 이름 지었다. 첫날 눈치를 살폈던 녀석은 다음날부터 집안 구석구석 다니며 영토를 넓혀 나갔다.
우리 집 일상은 곰돌이 중심으로 돌아간다. 진돗개는 크면 집안에서 용변을 보지 않는 습성이 있다. 반드시 산책 나가 해결한다. 줄을 놓아주면 사람이 보지 않는 떨어진 데서 볼일을 본다. 곰돌인 호기심과 더불어 겁도 많은 성미다. 나와 거리가 멀어지면 돌아오고 떨어진 데서 놀다가도 문득문득 날 확인한다. 사람이나 다른 개에게 친근하고 사납지 않지만 절대 리드 줄을 놓지 않는다. 큰 개나 작은 개나 냄새 맡을 땐 손에 긴장을 준 채 팽팽하게 줄을 당긴다. 절대 안 무는 강아지는 없다. 순하고 사납지 않아도 물 수 있다. 만약 반려견에 의한 사고가 난다면 모든 책임은 반려견의 공격성을 방치한 보호자에게 있다. 주변인과 산책인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진돗개는 중형견이라 입마개 등의 규제는 없지만 로트 와일러, 도사견 등 외래 대형견 다섯 종은 외출할 때 입마개, 리드 줄을 꼭 해야 한다. 개로부터 발생한 사고는 주인의 부주의나 잘못이 크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새벽에 내가 데리고 나가 한 시간 산책을 한다.
난 지팡이를 짚고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을 정해 풀밭을 뛰어다니는 곰돌이를 지켜본다. 이따금 사람 그림자가 비치면 개를 불러 리드 줄을 채운다. 상대의 반응 여하에 따라 곰돌이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어릴 적 개에게 공격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트라우마로 남아 작은 애완견만 봐도 피한다. 똥과 오줌을 누고 실컷 산책한 곰돌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외국어 공부를 한다. 공부를 마치고 도시락을 챙긴 다음 간식을 기름한 병에 담아 곰돌이에게 주고 대문을 나선다. 주둥이로 병을 물고 한쪽으로 기울여 간식을 꺼내 먹는 동안 집을 나선다는 셈속인데, 어떤 날은 손쉽게 간식을 몽땅 먹어치운 곰돌이가 대문을 나서는 날 멀뚱히 쳐다보는 날도 있다. 식구들이 모두 외출한 낮 동안 곰돌이는 낯선 발기척에 귀를 세우거나 화단 꽃에 모이는 벌을 쫓으며 시간을 보낸다. 해가 뜨거운 요즘은 아침엔 처마 아래에, 점심때는 파라솔 밑에, 오후엔 앞집 뒤란의 그늘을 번갈아 옮겨가며 엎드린다. 저녁엔 딸과 아내가 번갈아 곰돌이 산책을 맡는다. 예전 무던하게 개를 키우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예방주사와 심장사상충 예방약, 진드기 목걸이, 사료와 용품 등이 다양하게 주인을 유혹한다. 리드 줄은 목줄보다 등에 거는 가슴 줄인 하네스가 개에게 압박을 주지 않고 유도하기 좋다. 심장사상충을 유발하는 모기 진드기를 퇴치하는 목걸이는 특히 중요하다. 피를 빤 퉁퉁하고 징그러운 진드기를 여러 번 잡곤 했었다. 산책하다 툭하면 멈추고 긁어댔는데 진드기 목걸이를 채우고 나서 진드기도 긁는 것도 사라졌다. 진드기 목걸이는 풀이 나기 시작할 때부터 늦가을 낙엽기까지가 유효기간이다. 아침에 깨서 곰돌이의 안부를 살피는 게 식구들의 일상이 되었다. 산책하는 동안 벌어진 일을 얘기하며 웃는 게 흔하게 되었다. 곰돌이는 아줌마, 아저씨, 누나와 더불어 사는 우리 집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일인가구가 늘어나면서 고독사는 일상이 되었지만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도 늘었다. 반려동물 천만 시대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한 해에 버려지는 반려동물도 십만을 헤아린다. 반려동물 등록은 법으로 정해놓았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동물 보호와 유실, 유기 방지를 위하여 주택·준주택 또는 이외의 장소에서 반려의 목적으로 기르는 3개월령 이상의 개는 반드시 지방자치단체에 동물등록을 해야 한다. 동물등록은 시·군·구청 및 등록대행기관(동물병원, 동물보호단체, 동물보호센터 등)에서 신청할 수 있다. 등록 신청이 완료되면 동물병원에서 내장형 마이크로칩 시술을 받거나, 외장형 무선식별장치를 부착해야 한다. 떨어지거나 떼어내면 그만인 외장형보다 내장형이 안전하다. 이에 반해 동물 의료보험은 아직 없다. 사보험이 있긴 하지만 대중적이진 않다. 실제로 동물병원에 가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용이 높다. 곰돌인 이번 주에 반려동물 등록을 마치고 뒷덜미 피하에 내장형 칩을 심을 예정이다. 크기는 쌀알 한 배반 정도고 비용은 사만 원이다.
살면서 개와 고양이를 키우면서 많은 사건 사고를 겪었다. 눈앞에서 동물의 죽음을 지켜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개는 고통을 견디면서도 주인과 마지막 시선을 맞춘다. 잠시 후면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올지라도. 고통과 이별은 인간에게도 해당하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데엔 인간과 층위가 다를 거다. 고양이는 커서 집을 떠나지만 개는 함께 늙어 세상을 떠난다. 서울에서 같이 내려온 녀석은 두 번의 이사 끝에 실종되었다. 워낙 별난 녀석이라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아 가끔 식구들 입에 오른다. 수학여행비 마련을 위해 딱 한 번 개를 판 적이 있다. 못할 짓이었다. 지금도 키우던 동물의 모습을 저장해 놓고 이따금 들여다본다. 그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했던 영혼이길 바랄 뿐이다.
창문 앞에서 곰돌이가 조르기 시작한다. 눈 씻고 산책 나갈 시간이다. 차 타고 오 분여 가면 산책하기 맞춤인 곳이 있다. 간밤에 내린 소나기로 숲은 충분히 젖어 있다. 며칠 전 핀 나리꽃이 새끼 꽃을 다시 내민다. 복분자는 빨갛게 익었다. 오수처리장 아래 생태공원의 풀밭을 곰돌이가 용수철처럼 뛰어다닌다. 꼬리까지 함뽁 이슬에 젖는다. 토끼풀 꽃이 하얗게 춤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