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 (36)


자전거 여행 고수를 만났다.


아침부터 해가 따갑다. 오늘 하루도 만만치 않게 더울 것 같다. 매일 아침 오가는 차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는 B면 주유소에서 처음으로 기름 넣었다. 이번 달로 강변 초소 근무가 끝나면 언제 올지 모르는데 그간 인사만 받아 미안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상쇄시키는 거였다. 시골 주유소도 영업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물만 깨끗하면 나무랄 데 없는 풍광이다. 바위 절벽에 붙어 자란 소나무가 파란 하늘색과 어울려 한층 새뜻한 빛깔이다. 청량산 도립공원 민박센터를 지나 에움길을 돌아가면 초소가 보인다. 직벽 앞에 놓인 초소는 성냥갑만 하게 작아 보인다. 동료의 차가 보이는데 누군가 초소 창문에 머리를 대고 서 있다. 가까이 가니 자전거 라이더였다. 그는 자전거에 탄 채로 동료와 얘기하던 중이었다. 반가움이 앞섰다. 근무하다 라이더 보면 말 건네고 싶지만 어쩌다 손만 흔들고 지나가는 형편이었다. 라이더가 내려 쉬지 않으면 부러 세워 말 건네기도 어려운 거다. 도시락과 물이 든 아이스박스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돌아서며 그가 얼굴을 환하게 편다.

'아, 네. 안동서 올라왔습니다.'

'저도 자전거 여행을 좋아합니다. 반갑네요. 잠깐 들어와서 쉬었다 가시지요.'

'아, 고맙습니다'

내가 자전거 짐받이와 앞뒤 양쪽에 매단 가방을 손으로 받치자 묵지근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전체 무게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사십 킬로 된단다. 나는 이십오 킬로의 무게로 남도와 영남을 돌았다. 얼굴이 한결 밝아진 그가 손에 든 수첩과 볼펜을 주머니에 넣고 자전거를 초소 벽에 기댔다.


의자를 권하고 아이스 박스를 열어 매실액에 얼음물을 탔다. 선글라스를 벗고 초소에 들어온 그의 키는 훤칠했다. 얼굴엔 허연 수염발이 피부를 뚫고 나와 덮었다. 실례지만... 하고 나이를 물었더니 아직 칠십 전이란다. 육십 후반으로 보였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종이컵에 담은 매실 음료를 권하며 물었다.

'여기서 동해 쪽으로 나갈 생각인데 최단 거리를 알고 싶어 들렀습니다.'

'언제 집을 떠나셨나요?'

마치 취조하는 듯한 말투가 이어졌으나 분위기는 화애롭다.

'집 나온 지 이십일 되었지요. 서해안으로 내려가 목포에서 남해안으로 가서 경주 들렀다가 어제 안동 도산서원 앞에서 자고 올라오는 길입니다.'

쉬지 않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 신산한 길 위의 고단함이 물씬 묻어났다.

'저도 이삼 년 전까지 자전거로 전국을 돌았습니다. 그러다 다리가 아파 그만두었지요.'

'아, 그러세요. 전 퇴직하고 나서 자전거로 지구를 한 바퀴 여행했습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걸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그런 다음 국내를 돌기 시작했지요. 지금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에게 자전거 여행길을 알려주기 위해 답사 겸 여행하는 거죠'

점점 흥미가 파도처럼 일었다.

'어디 어디를 여행하셨나요?'

동료는 둘의 대화가 재미있는지 생글거리며 쳐다본다.

'중국으로 건너가 산하이관(山海关)에서 출발하여 연암 선생이 갔던 열하를 따라갔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을 가로질러 실크로드를 넘어 카자흐스탄으로 가서 터키, 지중해를 건너 로마까지 여행했지요.'

듣고 있던 동료와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부러움의 탄성을 질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떠올랐다.

'크레타 섬에도 가보셨나요?'

'섬에는 가보지 못했어요'

일정상 세부적인 여행은 어려울 줄로 짐작되었다. 그는 미국 동부에서 서부 개척시대 길 7,000km를 여행했다고 했다.

'전 고미숙 선생이 쓴 열하 기행을 읽었을 뿐입니다.'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에 대해 물었더니 그분은 문장이 탁월하단다. 둘 다 김훈의 문장에 동의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자주 세계로 나가 자전거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좁은 나라 안에서 아웅다웅하다 나랏일을 맡으면 얼마나 좁은 안목으로 힘들겠느냐고도 했다. 난 동의하며 자전거 여행은 천천히 달리며 차로 스쳐 지나가며 놓치는 풍경을 보게 된다고 말했고, 실은 풍경 너머 이미지의 본질을 읽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자전거는 승용차로 달릴 때와 달리 길의 질감과 성질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고 하니 그는 격하게 동의한다. 달변이 된 나는 여행은 낯선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인식을 만나는 것이라고도 말했으며 사람들이 삶의 구조 변화에는 등진 채 멋진 풍경을 보고 돌아와 '힐링했다'는 건 진정한 치유가 아니라 기분전환일 뿐이라고도 했다. 그는 수첩을 꺼내 간간이 적으며 경청하고 반문했다. 자전거 여행의 실전에 대해 빠르게 많은 얘기를 나누고 공감했다. 그는 세계 여행과 외국인을 위한 국내 자전거 여행 책을 출간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그에게 동해안으로 빠지는 길을 알려주었다.

청량산 도립공원을 관통해 재산면으로 가서 영양 가다 왼편으로 돌아 구주령을 넘으라고 했다. 멀고도 힘든 여정이 예정된다. 그는 수첩에 경로를 또박또박 적으며 재차 확인했다. 나는 청량산 산릉을 가리키며 육육 봉(六六峯)과 퇴계 선생에 대해 말했다. 그는 오는 길에 육육 봉 간판을 많이 보아 궁금했었다며 웃었다. 그가 먼저 셀카 제의를 했다. 동료와 세 사람은 초소에서 나와 밝게 웃었다. 그와 나도 사진을 찍었다. 그는 수줍게 명함을 내밀고 내 이름을 물었다. 문득문득 느낄 수 있었던 건 고수는 부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단 거다. 그가 꺼낸 얘기는 빙산 아래의 스토리를 숨긴 시놉시스에 불과했다. 그의 무탈한 여행을 기원했다. 그가 자전거에 올라타 천천히 페달을 구른다. 낙동강 물길과 산록의 초록과 한 몸이 된 라이더가 점점 작아지며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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