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感 (37)
권력자는 칼자루를 쥔 자다.
칼을 잡은 자는 대상을 손질해 요리한다. 셰프는 음식을 만들지만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는 이권에 개입하고 세력을 확장한다. 더 크고 강한 권력을 가지려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공직 사회는 선출과 임명직이지만 사회의 권력으로 작동하는 거대 조직이다.
새벽에 양조장으로 알바 갔다.
막걸리 병마개를 닫고 술상자를 나르면서 단순한 이 일이 단순하지 않게 느껴졌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면에서 역사의 토대가 된다. 삶의 문화 속에 정치와 권력이 녹아 흐르고 폭력과 억압, 저항과 혁명이 교차한다. 길에서 쓰레기를 치우거나 종이박스를 줍는 노인, 학교 가는 아이와 가게 문을 여는 상인 그들은 권력의 주체가 아니지만 자기 삶의 주인이며 역사 이전 에스노 그래피(ethnography)의 주인공이다. 「울릉도 오디세이」의 저자인 문화인류학자 전경수는 동해의 섬 울릉도를 다른 시각으로 조명한다. 일본의 억지로 영토 분쟁의 대상인 독도를 부각하는 이면의 울릉도는 가려져 있다. 엄연히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 도서임에도 바위섬 독도의 이슈에 가려 울릉도의 생태적 가치와 섬 주민의 삶의 서사인 에스노 그래피가 망실되어 왔다고 말한다. 자원의 무차별 남획으로 사라진 가지와 보찰, 수백 년 된 느티나무 등 지정학적 위치에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된 섬의 생태와 주민의 고된 삶에 주목한다. 울릉도는 단순한 섬이 아닌 거문도와 남해 사람들, 그리고 경상도 등 한반도 주민과 연결된 삶의 현장이다. 저자는 정치권력의 역사보다 울릉도의 생태와 주민의 삶이 공생 관계로 지속되길 희망한다.
권력은 아편과 같은 것이다.
한 번 중독되면 더 큰 권력을 지향하며 헤어 나오지 못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반만 맞다. 그릇이 아닌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 권력의 맛에 길들여져 변질된다. 변화가 성장을 담보로 한다면 변질은 부패하고 오염되는 것이다. 만약 지자체 의원 3년 차의 친구가 '너 요즘 달라졌다는 말이 떠돈다. 의원 전 바닥 터 닦을 땐 겸손하고 정중한 자세와 표정이 의원 1, 2, 3년 차로 갈수록 말투가 거만해지고 표정, 걸음걸이까지 달라졌다더라'라고 말했다. 만약 이 말을 들은 지자체 의원이 '그래? 내가 잠깐 방심했나 보군.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앞으론 조심하겠네'라고 했다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만약 '뭐라고? 누가 그래? 내가 어떻게 고생해가며 따놓은 의원 배지인데 누가 그런 헛소릴 해! 그리고 의원 나리쯤 되면 목에 힘주고 어깨 딱 벌어지게 팔자걸음 걸어도 되는 거 아냐? 의원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라고 했다면 그 위인은 이미 그른 판세다. 그는 의원의 권력으로 남의 뒷배를 봐주고 자신의 이권을 호시탐탐 노릴 거다. 서민은 '소소한' 돈에 목매고 생계를 잇지만 그는 자리에 앉아 큰 돈을 주고받는다. 초심 따윈 잊은 지 오래 거나 없는 무식한 가납사니다. 애초에 지자체 의원은 무보수 봉사직을 밀고 나갔어야 했다. 그러던 게 부패를 염려하여 보수직으로 바꾼 거다. 북유럽 국가는 무보수에 자전거 타고 다니며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의원들이 뛰어다닌다. 우리나라 풀뿌리 민주주의는 한참 멀었다. 먼 게 아니라 점점 썩은 내가 난다.
여의도는 어떤가.
한 번 국회의원이면 잠깐 배지 달아 떼어도 죽기까지 의원 연금이 나온다. 심지어 의견 충돌로 몇 개월씩 회의가 열리지 않는 회기 중에도 소위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노동자에겐 무노동 무임금을 외치면서 자신의 밥그릇은 끝까지 챙긴다. 자신의 월급 인상을 자기 손으로 처리하며 온갖 특혜를 누린다. 선거철엔 헤헤 호호 거리며 생선 국물 질펀한 시장 통에서 어묵을 맛나게 씹다가도 당선되면 오만방자하고 근엄한 표정이 된다. 배지 오래 달면 방약무인이 따로 없다. 연임 제한을 법으로 만들어야 할 정도다. 입장이 뒤바뀐 주민은 '의원 나리'를 부르며 분부를 받잡는다. 같잖은 씨방새들의 잔치 아니고 뭔가.
공무원은 어떤가.
공무원은 의원들을 어른 같이 모신다. 왜냐하면 예산 결정권을 의원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의원은 뒷짐 지고 과장급 공무원을 부른다. 주민과 공무원의 관계는 더 웃기는 짬뽕이다. 공무원이 훨씬 윗길의 유세를 떤다. '국민을 개 돼지'로 취급한 어느 공무원처럼 주민 위에 군림하려 든다. 나라의 녹을 먹는 신분임에도 어려운 시험 통과한 판검사 같다. 판검사도 시민의 질정을 우습게 보는 건 마찬가지다. 그들은 거의 조폭 수준으로 떨어졌다. 요즘은 실업자와 취약계층 구제를 위한 기간제 일자리가 많아 공무원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세상이다. 예전엔 공무원이 했을 업무를 기간제 노동자가 한다. 공무직도 공무원이라 기간제 앞에서 행세한다. 직급 신분이 차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차별 자체가 되어버린 더러운 세상이 되었다. 각각의 직분에서 성심껏 일하는 영혼을 가진 공무원을 논외로 하는 건 물으나 마나다.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과 단재 신채호 선생은 독립운동 진영 내에서의 파벌 싸움에 질린 나머지 복벽파, 공화주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아닌 아나키스트를 자처했다. 모든 권력을 민중에 대한 억압으로 본 것이다. 실은 그것이 권력의 생리다. 권력은 자본주의의 자본처럼 증식을 목표로 달리는 기관차다. 나는 일체의 권위와 권력을 부정한다. 종교의 성인인 예수와 부처의 권위를 지워야 예수의 사랑과 부처의 자비를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살불 살조의 가르침이다. 권위와 복종, 공경과 믿음은 상하위의 개념이 아니고 위계의 서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권위와 공경은 서로 빛을 내는 존재이지 위계로 빛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 권위는 초라하고 숲의 정령이 사라진 죽은 나무토막과 같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정치 지도자를 구하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가 되었다. 아무리 좋은 이념을 외치고 공동체와 인류 삶을 위한 장밋빛 전망을 주장해도 그의 개인사가 모순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고, 무례와 교만이 내면화된 인성이라면 겉으로는 그의 말에 동의할진 몰라도 돌아서 침을 뱉을 거다. 해도 너무한 건 세상 어느 나라에서 수도와 제이 수도의 우두머리가 동시에 성폭력으로 잘린단 말인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건데 집권당은 처음의 각오와 달리 당규를 고쳐 후보를 냈고 참패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차기 정부에서 수구당이 정권 잡는 것이 두렵다. 도로 과거로 돌아가는 건 인민에겐 지옥이다. 부자와 기득권의 당인 무리는 시민에게 남은 파이를 던져주고 노나 먹으라는 것들이다. 본색은 영원하고 개심, 반성은 꿈으로도 꾸지 않는다. 공직자 청문회처럼 인류의 문화적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슬프지만 덜 비열하고 덜 부패한 쪽을 고르는 수밖에 없다. 순일한 양심의 선남선녀는 사전의 어휘가 되었고 인류의 일상적 삶인 에스노 그래피는 생태와 공생이며 권력과 역사보다 앞선 가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