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93)


강변 초소.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 빗방울 듣더니 이내 가는 줄기로 내리기 시작한다. S면에서 이른 봄에 시작한 근무는 M면에서 초여름을 맞았다. 농부 밭 갈고 논 삶아 모종 심은 게 엊그제 같은데 고춧대는 허리만큼 올라왔고 땅내 맡은 어린 모는 세력을 키운다. 봄꽃 진 자리에 여름 경계의 꽃이 피고 졌다. 산딸기가 주렁 하게 열리고 병꽃나무, 수수꽃다리 화사하더니 이젠 참나리가 무더운 한여름을 예고하며 피기 시작한다. 매일 강 잉어의 안부를 살폈고 물새와 산 봉우리를 감아도는 구름의 형편도 눈여겼다.


강물 말라 바닥의 돌이 융기하듯 솟아날 무렵 맞춤한 비라선지 더 반갑다. 반가움은 현실로 이어져 급료 입금 문자가 떴다. 끈적한 등짝으로 한 달 동안 길 위를 오간 수고의 대가다. 소소한 액수지만 큰돈이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알려고도 알 필요도 없다. 밖에서 안주시켜 술 마시는 건 어려운 형편이다. 문짝이 떨어진 가구를 바꾸려면 할부기간의 내핍을 견뎌야 가능하다. 백만 원짜리 가전제품을 바꾸면 십 개월 동안 살림이 휘청댄다. 그대에겐 고작 백만 원이지만 내겐 거대한 백만 원이다. 없이 살다 보니 사람까지 자잘해진 느낌이다. 그래도 틈틈이 여행하고 가끔 고기 구웠다. 진정한 여행은 돈과 관계가 없다. 지갑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다 보니 돈 쓰는 게 무섭다. 한 달치 임금이 들어오면 먼저 나에게 감사하고 주변에게 감사한다. 한 달 동안 잘 버텨준 건강이 고맙고 일할 수 있는 조건에 고맙다. 그렇다고 창자까지 뒤집어 고맙다는 건 아니다. 일하고 생존할 권리는 내게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죽음의 권리도 내 것이다.


강변 초소에서의 이 개월은 흥미로웠다.

강변의 풍경과 숲의 생태를 두루 살폈으며 강마을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그들 삶에 녹아든 서사를 주목했다. 주말에 강변을 달리던 폭주족, 캐리어 달고 여행하는 라이더, 천천히 걸으 내륙의 풍경을 몸에 담는 여행객. 초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마치 스크린의 주인공 같았는데 그들의 분위기는 한결같이 행복이라는 소실점에 닿아 있었다. 길 위에서는 차마 내면화된 욕망을 쏟아놓지 못하는 이유 있겠지만 부러 꾸미지 않은 소탈한 모습도 엿보았다. 길 위의 만남은 뒤탈 없이 투명한 언어가 오갈 수 있어서 기꺼운 맛이 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 둘이서 연인과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는 사람 등 각색이었지만 인간은 태생과 과정, 죽음이 외로운 존재다. 슬픔이 비치지 않아도 무거운 슬픔이 고여 있다. 조르바의 춤은 가벼운 낭만이 아니다. 자유를 향한 고통의 움직임, 슬픔의 무화(無化)다. 그런 존재가 길 위에서 얼마나 반가웠으랴. 삶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 풍성함의 문제다. 그들에게 행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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