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만 보기로 한다. 길가의 컨테이너 출입문으로 내다본 풍경이다. 아스팔트가 있고 길 건너 콘크리트 옹벽 위에 스트로브잣나무가 서 있다. 잣나무 위로 아카시나무가 보인다. 두 수종은 경합 중이다. 보이는 잣나무는 아카시를 밀치고 우듬지가 위로 솟았지만 보이지 않는 오른편 잣나무는 아카시나무 가지에 덮여 질식 직전이다. 스트로브잣나무의 새순이 자라 바늘잎이 되었다. 한 뼘 더 큰 거다. 나무 아래엔 닭의 장풀(달개비)과 쑥이 자란다.
정리한다.
길가의 컨테이너에서 무엇을 할까. 스트로브잣나무와 아카시나무는 왜 서 있고 왜 경합하는가. 길은 언제부터 생겼고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졌나.
다시 본다.
보이는 게 다 아니고, 안다고 다 느끼는 건 아니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다. 나의 관심사가 아니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인식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 사진은 누구에겐 무용한 물건이다. 안다고 아는 게 아니며 본다고 보이는 게 아니면 그대는 아는 것도 보는 것도 없는 빈 도화지다. 인간의 무지는 안다고 할 때 보인다고 인식한다고 할 때 빛을 발한다.
무식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고백은 용기 있는 자의 덕목이며 인식에 이르는 길 위에서 부끄러움은 함께하는 동무라고 어느 철학자가 말한다.
*일을 확장하면 세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재선충병 감염목 무단이동 감시초소 근무원'에서 기후 변화와 실업, 기간제 노동자, 농촌, 생태를 읽는다. 다음은 당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