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 (38)


다리 끝에 차가 섰다.


남자가 내리더니 바지를 매만진다. 낚시하러 온 모양이다. 내가 앉은자리에서 그는 길 건너 가드레일 사이 정면으로 보였다. 관찰하기 좋은 시야다. 그를 주의 깊게 관찰하기로 했다. 그는 교각 위쪽의 강물 가장자리에서 종아리까지 물에 잠긴 채 루어를 던진다. 허리에 매단 어망이 앞쪽으로 쏠려 물 흐름에 따라 아래쪽으로 기운 상태다. 강은 다 마른 형편이라 물살이고 뭐고 궁핍하기 짝이 없다. 다음 주부터 장맛비 소식이니 일주일 후 강변 초소 근무일에 오면 강은 붉덩물로 넘쳐날 거다. 남자는 십여 분 동안 캐스팅하다 소득이 없는지 교각을 지나 아래쪽으로 내려가며 루어를 던진다. 사내의 움직임에 따라 바람이 살랑 부는 듯했고 가드레일 아래 아스팔트 틈으로 올라온 강아지풀이 꼬리 치며 흔들렸다. 고기라야 피라미, 갈겨니, 꺽지 정도다. 다른 강에서 볼 수 있는 참마자나 모래무지, 준치 등은 이 강에서는 만날 수 없는 어종이다. 댐으로 물길이 끊겼을 뿐 아니라 상류의 아연 제련소에서 흘러나온 오염된 물에 예민한 물고기는 애초에 멸절되었다. 예전에 흔하던 은어조차 사라졌지만 근동에서는 양식장의 육봉 은어를 사다 해마다 축제를 벌였다. 사람들은 수조 안에서 달아나는 은어를 잡아다 굽고 썰고 튀기며 은어의 살을 씹으면서도 막힌 물길의 상처엔 관심이 없다. 강잉어는 군데군데 살아남아 족보를 잇고 강 붕어는 가난한 살림을 이고 지고 북간도로 떠난 선대처럼 소식이 가뭇한 형편이다. 사내는 이번에는 강 중앙으로 자리를 옮겨 캐스팅한다. 물 가운데 수심이라도 종아리 정도다. 커다란 물 바위 근처와 흐름이 멈춘 듯한 소는 한 길 가까운 수심이지만 그런 곳도 점점 수위가 줄고 있다. 드러난 강돌 사이로 버드나무 가지가 비죽이 솟았다. 작년 물난리 때 넘어진 나무는 간신히 이파리를 달고 목숨을 잇고 있다. 사내가 돌리는 릴 뭉치가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까마귀 한 마리가 아까부터 울고 있다. 말라 가는 강에는 얼마 전부터 가마우지가 사라졌다. 다리 아래서 오르내리며 주둥이로 강돌을 뒤집어 물벌레 잡던 잉어도 깊은 물을 찾아갔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평일이라 차량 통행이 뜸하다. 택시 한 대가 느릿느릿 강마을 비탈길을 올라가더니 손님을 내려주고 도로 내려온다. A시 쪽에서 온 택시는 다시 A시 방향으로 사라졌다. 사내가 보이지 않는다. 일어나 가드레일 사이를 살피니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물 바닥은 훤히 드러났고 물은 이제 발목에서 첨벙 댈 정도다. 사내는 강 가운데 물돌이 드러난 곳을 피해 물길이 간신히 흐름을 유지하는 쪽으로 릴을 던졌다 되감으며 조금씩 아래로 내려간다.


마을 감자밭은 노랗게 뜬 감자 이파리가 수확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린다. 강변 초소에서 근무를 시작할 무렵 심은 씨감자는 두 달 남짓 기간에 토실한 감자알을 주렁주렁 키웠다. 작물의 생육기간에 따라 농사는 일모작, 이모작 등으로 나뉜다. 고추 콩 들깨 참깨는 늦게 수확하니 일모작으로 끝나지만 감자나 옥수수를 수확한 밭에 김장배추나 무를 심는 이모작을 하는 건 정석이다. 쪽파, 시금치, 당근 등도 말복 무렵에 파종해 늦가을에 거둔다. 나의 농사 경력은 이십 년이 넘는다. 농사 전문가인 줄 알겠지만 어설픈 반편이 농부다. 도시에서 내려와 하우스 짓고 도지 얻어 처음 농사 지을 땐 제대로 야전교범에 따랐다. 그러나 농사는 천생 농사꾼이 하는 일이란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후로 텃밭농사를 지었다. 그러니 내 농사 경력은 순전히 텃밭농사 경력이다. 텃밭농사라도 작물의 종류는 많았지만 농사의 생리를 깨치는 건 까마득한 일이다. 긁어 흉내만 내도 땅은 푸짐한 먹거리를 노나 주었다. 석기시대 이후 인류가 정착할 수 있었던 건 농사법의 발견 때문이었다. 인류가 먹고살 수 있었던 건 농민이 기르고 거둔 작물의 힘이었다. 농사가 없었다면 인류는 역사와 생존을 이을 수 없었을 거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은 근대를 거치며 허울 좋은 위로의 말이 되고 말았다. 무역과 중공업 위주의 정책은 농업을 점점 가장자리로 몰아냈다. 농촌 공동체는 무너지고, 불안정한 농산물 시세로 농민은 밭을 갈아엎기도 중간 도매상의 폭리에 가슴 태우기도 한다. 텃밭농사를 지으며 푸성귀와 고추, 감자, 옥수수 등을 길러 먹었다. 약 덜 치고 내 손으로 키워 먹는다는 것 하나로도 뿌듯한 심정이 되었다. 아내의 고향인 B읍으로 돌아와 주택에 살게 된 형편에 텃밭은 엄두도 못 낸다. 뼘 뙈기 마당에 잔디 심고 화단 구석에 채소를 조금 심어 먹는 게 전부다. 하자고 하면 근동에 채소밭 정도는 얻을 수 있지만 텃밭과 집을 가까울수록 좋다. 아침저녁으로 들고나며 풀 뽑고 북 줘야 작물도 주인의 발 기척을 듣고 튼실하게 자라는 거다.


사내가 아주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일어서 길을 건너가 살폈다. 사내는 쓰러진 버드나무 앞에서 아래를 향해 허리를 조금 숙인 채 릴을 던졌다 감았다 하고 있었다. 아직 걸린 물고기는 없어 보인다. 마을에서 개가 짖는다. 무성한 강 숲이 얕은 강물에 비춰 강물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온통 초록 일색이다. 산릉 위로 잿빛 구름층이 두텁게 덮였다. 점심 먹고 차를 닦던 동료가 걷기 운동을 시작한다. 오늘은 차 닦느라 한참 늦었다. 동료는 부족한 운동을 근무하면서 메운다. 오전과 오후 합해서 네 시간 이상을 초소 위아래를 오간다. 이백 미터를 왕복하는 거리인데 걷기 동호회 앱에서 순위가 언제나 상위권이라고 자랑처럼 보여주었다. 하루 이 만보는 거뜬히 넘는다. 난 가끔 다리 위로 가서 물 바닥을 살피거나 초소 뒤편의 잘라낸 덩굴 상태를 보며 걷는 정도다. 대부분 앉아서 길 위로 시선을 던지며 폰 뒤진다. 사내는 다리에서 이백 미터쯤 내려갔다. 강 가운데 물을 밀치며 걸어간다. 물은 허리 아래를 적신다. 그는 아예 강 따라 멀리 내려갈 생각인지 점점 작아진다. 실은 그가 조금 전에 지나간 강의 가장자리는 잉어가 잠을 자거나 휴식 장소로 이용하는 곳이다. 물 흐름이 거의 없고 수심이 있는 편인데 거기서 잉어들이 물을 뒤집으며 노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잉어는 먹이 활동을 주로 다리 아래 물 흐름이 좋은 곳에서 했다. 꼬리지느러미로 바닥의 모래를 뒤집어 흙탕물을 만들 거나 주둥이로 강돌을 뒤집어 벌레를 잡았다. 사내의 채비론 잉어 잡기는 어려울 거다. 잉어는 지능을 가진 물고기라 수상한 기척을 느끼면 예민한 촉각을 세워 경계한다.


시간에 비해 날이 어두워진다.

장마가 북상 중인 걸 느끼겠다. 하류 쪽으로 사라진 사내는 물길을 거슬러 돌아오진 않을 거다. 길로 올라오기 맞춤한 곳에서 기어올라 길 따라 차가 있는 다리로 걸어올 거다. 사내는 이제 돌이 깔린 여울로 내려간 듯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멀어 점이 된 사람이 돌에 묻혀 움직임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낮의 후텁한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풍혈 앞에 앉아 있으니 등짝이 시려온다. 이번엔 마음먹고 길 건너가 강 하류를 눈으로 찬찬히 더듬었다. 아, 멀리 강 한가운데 사내가 점으로 보였다. 검은 점인데 마치 가마우지가 강돌 위에 앉은 모양새였다. 머리만 물 위로 드러난 것처럼 작게 보였는데 계속 움직이는 것 같다. 바람이 불어 잔물결이 일어나 검은 점은 또렷이 드러났지만 움직임은 분별할 수 없게 멀어졌다.


무리에서 떨어진 가마우지가 홀로 수면에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강바닥 한가운데서 날개를 펴고 말리는 중이었다. 좀 전에 자맥질하며 사냥을 했는지 가마우지는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한참 동안 날개를 말렸는데 마치 벌서는 아이의 자세와 닮았다. 몰려다니는 습성인데 어쩌다 저 녀석은 무리에서 떨어졌을까. 홀로 생활하며 살아갈 정도로 자랐다면 몰라도 아직 배울 게 있는 어린 새라면 홀로 살이가 만만치 않을 거다. 다행히 가마우지는 백로, 왜가리처럼 큰 새에 속하기 때문에 황조롱이, 말똥가리나 물수리 등 맹금류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에서의 이탈은 온갖 풍상을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며 자신의 삶을 밀고 나가는 걸 뜻한다. 인간은 무리에 속하면서도 외로운 결정을 내리는 존재다. 가치 판단과 미래에 대한 전망, 갈등과 투쟁의 타결과 봉합, 폭압적인 환경으로부터의 보호 등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면서도 대세는 집단의 질서에 따르는 경향이 있다. 생존 본능은 대세의 안보에 기대기 때문이다. 수많은 다윈 추종자 들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을 시대의 가치로 무장하여 제국주의 각축의 무대를 부추겼다. 그러나 인간 공동체는 경쟁을 통한 발전보다 상호부조의 원리에 의해 살아남았고 이어졌다. 만물은 서로 도우면서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한 것이다. 서열과 신분주의는 소수의 지배자를 만들고 다수 인민의 고통을 양산한다. 이미 정신마저 물들어버린 신자유의 자본주의는 겉으로는 상생을 말하지만, 계급적 차별적 상생을 굳히고 있다.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라는 말을 비치기라도 하면 빨갱이니 공산주의자로 몰아 사회와 격리시키는 억압을 시대의 도덕과 윤리로 새겨버렸다. 결국 파이의 반 이상은 소수가 가져가고 나머지 쪼가리에 다수가 매달려 피 튀는 싸움을 한다. 팔짱 낀 소수가 냉소와 비아냥을 섞어 구경한다. 분노한 대중은 혁명을 원하지만 혁명은 매번 지도자만 바뀌는 정권교체 놀음일 뿐이고, 대중의 고역스런 삶은 대를 잇는다.


퇴근시간이 가까운데 사내는 길 위로도 강물 위로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고기가 된 걸까. '고도를 기다리는' 가마우지가 되었을까. 강돌이 되어 물 바닥으로 잠겨 버린 걸까. 바람에서 물 비린내가 끼쳤다. 길 위로 말라비틀어진 개다래 이파리가 또르르 굴러간다. 다 저녁인데 비탈밭 사과 과수원에서 농약 치는 소리 요란하다. 비 오기 전 약 치는 거다. 태풍과 장마의 비바람에 섞여 병해충이 옮겨진다. 연기처럼 하늘로 솟구친 농약 비말이 다시 가라앉으며 사과나무를 적신다. 지금쯤 전국의 논밭에선 농약 줄을 밀고 당기며 서둘러 농약치고 있을 거다. 나는 가끔 실없는 상상을 한다. 지난밤 지구에서 성애를 나눈 남녀의 숫자가 얼마일까 등등의. 인간의 삶에서 동일한 양상의 다양한 모습이 가끔 궁금하다. 동료가 초소 앞에서 손짓한다. 집에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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