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②

by 소인


아까 본 풍경으로 경운기가 지나간다.

조금은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경운기에 탄 남녀는 내외로 보이는데 근동의 밭에 일하러 가거나 돌아오는 중이다. 육십 대의 농부는 오가는 차를 살피며 경운기 운전에 몰두한다. 어쩌면 그는 대선 후보의 국민경선 선거인단에 가입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두 사람 다 골수 태극기 부대이거나 정치 얘기만 나오면 밥 먹다 숟가락 던지는 부부일지도, 그도 아니면 정치와는 아예 담쌓고 사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들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다. 불확실한 건 대화의 부재 때문인데 말이라고 다 같은 말 아니다. 말의 오염 때문이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어휘의 뜻이다.

정의는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다.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름'이며, 공생은 '서로 도우며 함께 삶'의 뜻이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말이다. 상생은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감'이고 평등은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이다. 공존, 공감, 소통, 연대 모두 비슷한 말이다.


다음 단어도 찾아보았다.

차이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또는 그런 정도나 상태'를 말하고, 차별은 '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이란 뜻이다.

사회에서는 정의 공정 공생 상생 평등으로 상생과 화합의 세상을 만들자고 말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하지 말자고 외친다. 그러나 차별은 내면화되어 그 '차별'과 이 '차별'은 다르다. 글자의 생김새는 분명 같은데 쓰임새는 엄연히 다르다. 말은 쓰임에 따라 마술처럼 의미가 변한다. 계층의 언어에서 사용하는 말의 뜻은 계층의 위상과 무게를 담고 있다. 간단히 말해 '그들만의 언어'라는 의미다. 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하는 그들의 대화는 남이 들으면 분명 단어 하나하나는 알아듣는데, 그들과 다른 계층인 남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전라도 지방의 '거시기'는 맥락을 읽으면 금세 뜻을 알아차린다.

마치 조폭 세계의 은어와 같은 말의 세계는 점점 본뜻과 멀어져 이해불가의 지경에까지 이른다.


층위 서열 계급 신분 세습은 내면화된 욕망 구조다.

경운기 남녀에게 정치를 들이밀어 미안한데, 어떤 사안을 대입해도 인간의 정신은 단순하면서 복잡하다. 언어 모순인 이 말은 심리구조와 비슷한 맥락인데 의식과 무의식처럼 내포와 외연을 넘나드는 다층적 의미의 복잡성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 '사진 한 장'을 제목으로 했다. 사진의 이미지는 많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진 밖의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에 담지 못한다. 사진 밖의, 사진 너머의 이미지가 전달하려는 전언을 읽어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진 한 장의 이미지에 넘어가 사건의 진실은 은폐되고 사진의 폭력성이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칠십 년대 '수출 입국 달성'이란 흑백사진에 나오는 수많은 공장 노동자의 모습을 보라. 행사장에 모인 관료와 기업가와 함께 환하게 웃으며 손뼉 치는 사진 너머엔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연장근무와 철야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현실은 가려져 있다. 완전 무장하고 거리를 행진하는 월남 참전 군인의 모습에서 피 냄새나는 이념과 동족상잔의 비극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경운기를 타고 가는 남녀는 베이비 부머일 거다. 태어나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를 보는 시선과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신념과 가치관을 다졌을 거였다. 그건 사회의 습속으로서 부모와 학교, 사회가 일러준 방향으로의 신념과 가치관이다. 누구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생각을 줍진 못한다. 인식의 확장과 초월은 인식에서 비롯되고 인식의 출발은 앎인데, 안다고 모든 인식으로 통하진 않는다. 어떤 앎은 속리(俗理)만을 가르쳐 처세엔 능해도 욕망의 끄트머리나 붙들다 말고, 어떤 앎은 삶을 궁구하고 새로운 인식으로 가는 바탕이 된다. 삶의 모습을 문화, 즉 에스노 그래피라 한다면 역사는 사건으로 이루어진 스토리다. 삶을 벗어난 역사는 없다. 그래서 역사는 문화를 바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육을 먹는 식인 부족의 문화와 개고기를 먹는 아시아의 문화, 그리고 흑인을 잡아다 노예 시장에 파는 백인들의 문화에 층위와 서열을 매길 수 있는가. 그 시대의 공동체는 당대의 구성원에게 삶의 가치관을 제시하고 목표대로 살라고 한다. 천부적 권리인 생명과 인간의 가치조차 초월할 수 있다는 반증인 거다. 메이지유신 이후 생겨난 학교의 목표는 과학 입국과 부국강병이었다. 서양의 제국주의를 본떠 아시아 공영권의 선두에 일본이 나설 것을 부추긴 것이다. 다윈주의의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은 무한 경쟁의 싸움터에서 적인 타인을 죽이고 살아남아야 우수한 종족 번식이 가능하다는 논리로 대체되었다. 제국주의 약탈성과 침략 근성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었다. 이후로 전쟁과 다수를 향한 소수의 폭력은 지구 전역의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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