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 (40)



중학교 삼 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경기도 안중으로 낚시를 떠났다. 그때 호기심에 산 담배를 뻐끔대며 피웠던 게 담배를 동무로 삼게 된 계기였다. 고등학생 때는 남대문 시장 아줌마에게 양담배를 사서 피웠다. 양담배가 금지된 시절이었다. 친구의 반성문을 대신 써주고 담배를 받았다. 반 아이들이 부러워했다. 선생이 반성문 문장에 감동하면 담배는 두 값으로 늘었다. 수십 년 담배를 피우며 끊기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 중국 철학자 린위탕(林語堂)의 말처럼 담배의 구수한 향기를 뿌리칠 수 없었다. 담배는 우울한 세상으로부터의 위안이요, 애인이었다. 담배 없는 세상은 여자 없는 여탕이었다. 예전엔 전철 안에서, 버스에서도, 술집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야만의 시대였다. 골방의 노름판은 부연 담배 연기로 너구리 소굴이었다. 처음엔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 아들의 등쌀에 마당에서 피웠다. 차 안에서 피우다 차 밖에서 피웠다. 애연가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목이 아프고 항상 가래가 끓었다. 높은 음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됐다. 어딜 가나 담배와 라이터를 먼저 챙겼다. 새로 사준 파카에 담배 구멍을 내고 죽도록 잔소릴 들었다. 식후 불 연초면 삼대가 빌어먹는다지만 새벽잠 깨고 나서, 밥 먹은 후의 향초 한 대는 가히 꿀맛이다. 내 돈으로 사 피우는데 구박이 심해졌다. 날아가는 연기 붙잡고 시비했다. 담배 안 피우고 집에 들어가도 몸에서 땀구멍에서 니코틴 냄새가 진동한다고 야단이었다. 금단 증상으로 싸우기도 여러 번이었다. 내 스스로 추접어서 다시 담배를 물었다.


동네 의원의 포스터를 보았다.

자신의 의지로 담배 끊는 비율은 6%고, 약으로 끊는 경우는 무려 26%였다. 그러면 그렇지! 의지의 인간들은 죄다 독한 놈이란 느낌에 닭살이 돋았다. 흡연에 의한 니코틴 중독은 엄연히 병증이다. 신경계 약물로 금단 현상을 다스리지 못하면 금연은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의사에게 금연 처방을 부탁했다.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더니 사 개월 후 금연에 성공하면 그동안 지불한 약값을 돌려주고 십만 원 상당의 선물도 제공한단다. 아, 개인의 건강을 이토록 염려하는 보건복지부여, 복 있으라! 견습기간을 거쳐 본격적인 금연에 돌입했다. 일 주일만에 가래가 사라지고 높은 음정의 노래를 소화했다. 내 기준으로 고음계의 노래는 둘다섯의 '긴 머리 소녀'와 ' 강산에의 '할아버지와 수박'이다. 아시거든 함 불러보시길 권한다. 지금도 담배 연기는 구수하다. 담배를 사지 않으니 마트에 갈 일이 없다. 고백하지만 난 모르는 담배가게에서 담배를 달라고 하는 행위가 엄청 싫었다. 장수엔 관심 없다. 기타 치며 맘껏 노래 부르며 사는 게 꿈이다. 올밤엔 마당에서 가곡을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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