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식탁

by 소인

쓰레기와 식탁


안개 낀 아침.

뒷산 가는 빈 밭에 서니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길은 뭉텅뭉텅 끊어졌고 낮은 지붕 아래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대던 사람들의 일상마저 희부연 안개의 너울에 묻혔다. 이런 날 낯선 도시에선 길을 잃기 십상이다. 젖은 오솔길을 오르는데 쭉정이만 달린 수숫대, 고추 막대기가 군데군데 널브러졌다. 농부가 거둬간 밭은 긴 겨울밤의 한기가 스며 있다. 개는 몸에 도깨비바늘을 달고 땅 냄새 맡느라 바쁘다. 수돗가 걸솥에 멸치 액젓 달이는 아내의 등짝에 허연 김이 피어오른다. 배추 절이고 다듬는 손길이 고요한 아침을 부산하게 깨운다.


도시락 챙겨 집을 나선다.

주말의 읍내는 한산하다. 평일 같으면 도시에서 군청으로 출근하는 공무원 차량이 꼬리를 무는데 오늘은 조용하다. 여느 때처럼 과수원 길에서 쉬어간다. 마른 강아지풀이 흔들리는 풀 속에 누가 버린 싱크대 문짝이 보인다. 주섬주섬 쓸만한 것 두 개를 차에 실었다. 의자 위에 올리면 훌륭한 식탁이 됨직하다. s초소로 옮기고 동료와 낮은 의자에 도시락을 올려 등을 구부리고 밥을 먹었다. 판때기를 찾느라 시골의 분리수거함을 두런댔지만 맞춤한 게 없었는데 잘됐다 싶다.


먼저 출근한 동료가 반갑게 문짝을 받아 물티슈로 닦는다. 달력 종이를 까니 멋진 식탁이 되었다. 함부로 버린 쓰레기가 다른 이에겐 훌륭한 쓸모가 된다. 커피를 마시던 동료가 얘기를 꺼낸다. 어제 TV에 나온 구십 넘은 할매가 '인생의 승패는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동안 얼마나 자주 웃었느냐에 달렸다'라고 말했단다. 옳은 말씀이다.


법정 스님은 삶은 풍요로움보다 풍성함에 달렸다고 했다. 사람들은 행복이란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지만 행복은 지금 여기에서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 있다. 결승점을 향해 죽어라 달리는 선수와 땅의 감촉, 바람과 몸의 교감을 즐기는 선수의 차이는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가 기울 것이다. 성공의 집념에 골몰하는 사람의 주머니에서 행복이 줄줄 샌다. 인간은 매 순간 성찰하면서도 발을 헛디딘다. 성인과 필부의 차이다. 하물며 견자(見者)도 오감에 휩쓸리는 감정의 출몰에 자유롭겠는가. 그런 부면에서 난 외롭고 쓸쓸하다. 친구도 적고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긍정보다 부정을 선호하고 세상과 따지고 불화하는 감정을 소중히 여긴다.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사유를 즐기려고 한다. 생태와 사회에 적어도 불편한 재앙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되뇐다. 일본 작가 소노 아야코(曾野陵子)가 말했듯이 상대방의 행복과 불행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사람이란 원래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예술은 위대하고, 경영자로서 나의 수완은 절대적이고, 가정에서 나는 가장 위대한 아버지이며, 따라서 가족들이 나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은 한 시대 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들에게는 타자의 존재와 타자의 감정은 고려할 가치가 없다. 자기 생각이 만들어낸 세계만이 절대이며, 타자에게 맞춰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타인과 외부 세계에 대한 감각의 부재에서 미숙한 어른이 태어난다.


동료가 걷기 시작한다.

빈 논에 쓰러진 볏짚이 산등을 넘어온 햇발을 받아 눅진하게 언 몸을 푼다. 주말엔 차량통행이 뜸하다. 나무 실은 차를 노려보는 시선이 한결 느긋하다. 하늘엔 미세먼지가 촘촘하다. 며칠째 공기가 탁하다. 소의 잔등 같은 문수산 실루엣이 먼발치서 보였다 말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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