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27)


강냉이죽


고프면 밥 먹는다는 규칙을 세웠다.

런데 원칙이 필요 없이 된 건 끼니가 지나면 배가 고파진다는 몸의 습관 때문이다. 내가 하루 세 끼를 먹게 된 건 초등학교 일 학년부터였다. 아침에 밥을 든든히 먹고 종일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다 해가지면 친구들은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어디서 놀았는지 형들은 흙이 잔뜩 묻은 옷을 입고 고봉밥을 입에 욱여넣고 잠에 떨어졌다.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이었는데, 학교에 들어가자 급식이 있었다. 집에 가봐야 먹을 게 없던 아이들에게 강냉이 죽을 나눠주었다. 군인 가족이라 제외됐던 나는 고소한 강냉이 죽을 먹기 위해 꾀를 짰다. 급식 당번을 자청하여 선생님께 칭찬받고 들통을 들고 소사실로 달려갔다. 소사 아저씨는 커다란 가마솥에 끓인 멀건 죽을 학급 별로 퍼주었다. 힘에 부치는 죽통을 양손으로 들고 교실로 가서 아이들의 그릇에 담는 일까지 도맡는다. 다 퍼주면 들통에 붙은 죽이 내 차지가 된다. 그걸 바가지로 긁어먹었다. 고소한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 학년 가을에 예편한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했다. 도시에서는 급식을 빵으로 주었는데 거무티티한 빵에서 오줌 지린내가 났다. 난 한 반에 네댓 명씩 섞인 고아원 아이들의 옥수수빵과 바꿔 먹었다. 고아원 아이가 가져온 옥수수빵이 훨씬 맛있었다. 한 번은 친한 고아원 아이와 고아원에 놀러 갔다. 친구는 모아둔 옥수수빵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전쟁 후 태어난 아이들은 가난이 주원인으로 버려지고 헤어졌다. 그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의 더럽고 냉정함을 일찍 깨달았다.



환상과 충동


습한 날이다. 볕 들지 않은 우중충한 하늘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한여름에도 껴입는 거지처럼 단단히 껴입고 나갔다. 흐린 날에도 사람들은 부지런히 걷는다. 스치는 사람들의 대화엔 일상의 얘기가 스몄다. 여행이나 산책은 혼자가 낫다. 둘 이상은 깊은 사유가 틈 탈 공간이 힘들다. 세계관이란 주체가 자신 앞의 세계를 설명하는 하나 또는 몇 가지의 이야기의 구조를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삶이 의미 있는 것으로, 욕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유지되기를 원하는 마음에 근거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자의 세계관으로 욕망에 충실한다. 그렇다면 섬에 내려온 나는 욕망에 충실한 건가. 기간제 일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집을 나온 건 가족과의 불화를 피하기 위함이다. 솔직하게 내면을 드러내고 타협하기엔 평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벌어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무능과 비겁을 감추려다간 또 다른 사달을 낳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디 서고 피정(避靜)은 없다는 걸 잘 안다. 환경과 조건이 바뀌었다고 정신마저 말끔히 헹궈지진 않기 때문이다. 꿈에서도 쫓아오는 무의식은 종종 나를 괴롭혔는데, 잠에서 깬 기분조차 영 개운치 않다는 건 나의 불안한 내면을 반영한다. 지인은 용기라고 치켜세우기도 하고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습속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개고생을 자처한 건 현실의 엄혹한 덕분이었는데, 잦은 다툼과 짜증이 직접적 요인은 아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집을 떠났을 거다. 나는 정주하면서도 늘 어디론가 떠나는, 정확히 말해서 길 위를 떠도는 날 상상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내가 안락함을 느끼는 따위의 위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거란 경험의 믿음 때문이다.


내의 연민 내지 가피(加被)는 동일한 종교의 형제자매에만 국한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뭐 가족이 옳지 않거나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는 현실의 고통을 낳는 제도와 관습을 부정함으로써 위안을 삼는다. 종말이 오고 새로운 낙원이 도래한다는, 악한 자들이 멸망하고 선택된 신의 자식들이 낙원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소망할 때 비로소 현실의 암울한 터널을 지날 수 있다. 나로선 터무니없는 확신처럼 느껴지지지만 종교가 지닌 보편성의 힘은 약을 멸하고 선이 승리한다는 거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일찌감치 현실의 쾌락에 탐닉하거나 영혼 없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난 그녀의 종교를 부추기는 은밀한 타락을 즐긴다. 유한한 삶에서 일탈하지 않고는 의미의 공백을 마주할 수 없고, 뭔가 채우지 못하더라도 현실의 고정관념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집을 떠난 이유는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섬의 낯선 풍경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나를 지우려는 현실의 환상은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충동과 환상의 지루한 간극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환상을 걷어낸 삶의 밑바닥을 흐르는 충동(욕망)의 발자국들은 행선지가 없다. 단지 그것이 구두 소리를 내기 때문에 즐거울 뿐이다. 바라는 건 집에 돌아가 가족을 다시 만나더라도 이전보다 겸손함으로 부드러워진 노력이 고결함으로 무장한 쌀쌀맞은 노력보다 우리를 훨씬 더 멀리 데려가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건 평화라기보다 화해의 제스처에 가깝다.



휴장 또는 폐장


려둔 수영복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늘은 장거리 수영의 필수 팁인 2비트 킥과 양팔을 리커버리 할 때 최대한 힘을 빼는 걸 드릴의 목표로 삼는다. 동작의 경직을 줄여야 물살을 타고 오래 나갈 수 있다. 아침 공기는 쌀쌀하다. 문화예술센터와 붙은 호텔의 커피숍을 지나 수영장으로 들어가는 정문에 닿으니 유리문에 인쇄된 공고가 붙었다. 임시 휴장을 알리는 공고였는데, 자주 가던 식당의 임시휴업처럼 공 뜯어 마구 휘갈겨 쓴 게 아니라 깔끔하게 인쇄된 포스터라 하마터면 축제의 안내문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예상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닥치고 보니 멍해졌다. 코로나 확진자가 엄청난 숫자로 쏟아지니 드디어 때가 온 건가. 문화원에서는 풍어제 별신굿의 장소를 써넣지 않은 현수막을 내걸 정도다. 영험한 신령에게 올해의 풍어와 무사함을 빌긴 하되, 모이진 마라다. 인간을 배제하고 단골의 기원을 접수한 용왕이 홀로 나서 물고기를 몰고 파도를 잠재우느라 수고하는 꼴이다. 갑자기 평일 오전의 시간이 풍선처럼 부푸는 기분이었다. B군의 카센터 기사에게 톡을 보내고 P시의 시인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카센터 기사는 B군 실내 수영장에서 만난 친구다. 일하다 어깨를 다친 그는 잠시 수영을 쉬고 있었는데, 바다 수영을 꿈꾸고 있다. 사내는 쉬지 않고 한 시간 수영을 할 정도로 근력이 뛰어나다. P시의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교로 출근 중인데 이달 중순께 논문이 마무리되면 건너오겠단다. 단어를 자꾸 까먹어 가르치는 짓도 이 년만 더하고 그만둘 생각이란다. 난 돈을 모아 비서를 두라고 말했다.


다를 둘러보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원룸 주인 내외가 차에서 내린다. 견종이 빠삐용인 마루가 짖으며 반가움을 나타낸다. 여자는 묻지도 않았는데 서울 사는 아들의 나이가 사십 대 중반과 후반이라고 했고, 근처의 이백 평 되는 텃밭 농사에 애를 먹는다고 했다. 남편이 쓸데없이 여기저기 땅을 천 평이나 사둬서 처리가 곤란하다고도 했다. 이 땅의 노인들은 자나 깨나 자식 자랑 아니면 돈 자랑이다. 그게 자신들의 양보할 수 없는 상징처럼 되었다. 봄부터 문화원에서 그림을 배운다고 했더니 남자는 그림 선생이 친구란다. 코로나 때문에 문화교실마저 불투명하다. 투명한 건 나고 가는 것 외에 이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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