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물이 찰방이는 해변의 바위에는 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소금물이 적당히 밀려왔다 밀려가는 경계가 굴이나 홍합 패각류가 살 수 있는 지점이다. 대나무의 북한계선이 한반도의 충남 당진에서 강릉 쪽으로 대각선을 그은 것처럼. 더 올라가면 겨울의 추위를 버티지 못한다. 하지만 요즘엔 식물의 생존 한계선이 점점 올라간다. 대구는 이제 사과의 주산지가 아니고 남도에서 열대 과일을 따고 따듯한 해안선을 따라 북상한 커피는 강릉에서도 볼 수 있다. 베트남 북부와 중국 윈난성의 차밭이 커피밭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다. 제주도와 독도 바다에 열대성 어종이 나타나고 산호초가 사라진다. 해안가의 맹그로브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북반구의 선진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새우 양식장을 만든다. 가난한 사람들이 맹그로브 게 대신 새우를 잡는다. 게를 잡거나 새우를 잡거나 그들은 늘 가난하다. 수요와 공급의 경제 법칙은 식민지의 약탈 경제로 시작해서 노예 노동과 전쟁, 신자유주의까지 달려왔다. 바다에서 주워 온 돌멩이 하나로 장황하게 말을 많이 한 건 작은 돌에 담긴 내력 때문이다.
언제부터 돌이 거기 있었는진 모른다.
지구가 생기고(하나님이 세상을 만들고) 얼마(수십억 년) 지나 화산이 터지고 굳어진 용암이 파도에 쓸려 바위가 되고 돌멩이가 되고 모래가 되기까지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거다. 육지와 물속에 생명이 생기고(창조하고) 여러 동식물이 진화와 멸종을 거듭했다. 바다의 생물인 패각류는 모래와 펄, 바위에 붙어 번식을 이어간다. 그중 하나인 굴은 자연산에서 수요를 채우지 못하자 양식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바다의 붙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나 굴 홍합 따개비 미역 다시마가 산다. 이른 시간인지 방파제에는 낚싯꾼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낫을 묶은 장대를 들고 테트라포트 위에서 미역을 건지는 남자가 있다. 방파제 따라 군데군데 미역을 건져놓고 다시 다듬어가며 통에 담는다.
예전에 바닷가에 살며 미역 홍합을 잡아먹은 적이 있다. 일주일 동안 홍합 넣은 미역국만 먹었더니 똥 색깔이 초록색이었다. 이웃할머니가 오라고 해서 갔더니 쌀밥을 푸지게 해 놓고 기다렸다. 수렵과 채취는 원시 인류의 생활방식이었지만 요즘 사람들에게도 남아 있는 유전인자다. 그런데 적당히는 통하지 않는 탐욕이 문제다. 내가 못 잡으면 남이 다 잡는단 다급한 심리에 쫓겨 아예 바다를 거덜 낸다. 온갖 장비를 총동원한 관광객의 해루질 때문에 어촌계에서는 여름마다 바다에 나와 불침번을 선다. 동물의 집단 사육과 끝없이 펼쳐진 해산물 양식장, 트랙터로 갈아엎고 콤바인으로 수확하는 드넓은 농촌의 들판은 식량을 공급하는 현대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인구 76억 명 중 십억 명이 기아에 고통받는다. 그러나 소 돼지의 대량 사육에 인간이 먹을 곡물의 절반을 투입한다. 참치, 광어 양식장에선 새끼고기를 사료로 만들어 공급한다. 그물에 걸린 큰 고기는 상품으로 시장에 팔리고 작은 생선은 사료공장으로 보낸다. 자원의 약탈과 남획은 악순환이 계속된다. 미세 플라스틱을 먹은 크릴새우를 작은 물고기가 먹고, 작은 생선을 큰 물고기가 먹는다. 맛있게 구운 고등어에 불편한 젓가락질이 오가는 식탁이 되었다. 사실 문제는 간단하다. 덜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편한 젓가락질을 멈출 생각이 없다. 일주일에 하루 고기 안 먹는 날, 차량 운행 요일제, 쓰레기 줄이기는 이제 정책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정부가 나설 차례다. 그런데 대다수 시민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고기는 먹어야 하고, 여행은 휴식의 영양제이고, 쓰레기는 제대로 분리해서 버리면 된다는 식이다. 아직 그럴 생각이 없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과거의 향수를 버릴 생각이 없는 것이다.
고통 없이 이루는 가치는 몰가치적이다. 중독, 마취에 빠진 삶은 진통 사회의 '좋아요'와 같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고통 없는 사회」에서 '행복이 영구히 지속되는 고통 없는 삶은 더 이상 인간적인 삶이 아닐 것이다. 삶의 부정성을 억압하고 내쫓는 삶은 스스로를 제거한다. 죽음과 고통은 서로 뗄 수 없다. 고통 속에서 죽음이 선취된다. 모든 고통을 제거하려는 자는 죽음 또한 없애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과 고통이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좀비의 삶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철폐한다. 인간은 불멸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삶을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주워 온 작은 돌이 내게 끝없이 말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