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29)


자연 휴양림에 갔다.

해발 사백 미터의 산자락엔 참나무류, 때죽나무, 모과나무, 고로쇠가 키를 세우고 빽빽하다. 나이 먹은 소나무도 눈에 띄는데 밀생 한 활엽수에 치이면서 용케 살아왔다. 드문드문 노송이 서 있는데 몇 그루는 수명을 다하고 선채로 육탈 하는 중이다. 해안의 산과 달리 육송이 대부분이다. 노자산은 565m. 섬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등산로 입구의 골짜기엔 고로쇠나무의 발목에 빨대를 꽂고 수액을 받는 중이다. 건강을 위해 숲의 혈관에 빨대를 꽂는 건 인간이 유일하다. 살아 있는 곰의 장기에 호스를 찌르는 인간은 지구의 내장을 파헤쳐 심장마저 들어내 먹어치울 기세다. 삭스핀 요리를 위해 지느러미만 자르고 바다에 버리는 상어가 한 해 십만 마리가 넘는다. 방향타를 상실한 상어는 물 바닥에 가라앉아 발버둥 치다 죽는다. 임산 도로 위로 케이블카 삭도가 지나고 거대한 철기둥이 마징가제트처럼 산을 뚫고 서서 하늘을 찌른다. 자연휴양림은 '편의시설'이란 목적에 충실하듯 도시의 주거를 산에 옮겨놓았다. 이제 휴양은 말 그대로 쉼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사랑은 포르노가 되었고 여행은 이동의 경쟁이 되었다. '좋아요'로 모든 게 정리되는 삶은 공허하지만 좋아요의 반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한, 공허를 메우는 영혼 없는 '좋아요'는 영원히 남발된다.


포항의 쓰레기, 어선에서 양식장에서 육지에서 버린 쓰레기가 되돌아오거나 대양을 떠돈다.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뚫고 휴식한다며 산에 철기둥을 박는 사람들... 이런 게 일상이 된 현실은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쓰레기 배출과 환경오염조차 일상이 되었다. 살기 위해서 생산과 소비의 과정에는 반드시 쓰레기가 남는다. 더 많이 만들고, 더 풍요롭게 소비하고, 더 많이 버린다.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이루어진 난지도 서울 공원은 인천으로 옮겨져 건설 중이다. 경북 내륙의 가난한 지자체인 B군에서는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매립장을 설치해 쓰레기를 파묻는다. 얼마 전 주민과 협의 없이 진행하던 쓰레기 소각장 계획은 무산되었다. 쓰레기를 태우느라 탄소를 배출한다. 자기 지역의 쓰레기는 스스로 해결하라, 지역 간 다툼이 일어난다. 나부터 쓰레기 제로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장바구니를 들고, 휴대용 텀블러를 사용하고, 과대 포장을 피한다.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이루는 시작인 건 맞지만 시간은 그리 인자한 얼굴로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유엔 기후변화 협약(UNFCCC) 사무총장을 지냈던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는 '당분간은 기후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할 것이다. 그러나 단호한 낙관론으로 굴하지 않고 밀고 나가야 한다. 굳은 결의와 단호한 용기로 장애물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지구의, 후손의 미래가 달려 있다'라고 말한다. 플라스틱 줄이기, 재생 에너지 개발과 투자, 각국의 정책적 배려와 실천 의지 모든 게 중요하다. 문제는 남의 일로 보는 것이다. '배신자 논리'라는 게 있다. 열 사람이 노력해 어업 쿼터제를 정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수거해 깨끗한 어장을 복원했다. 물고기가 돌아오고 자원이 늘어났다. 그래도 어민들은 처음의 약속을 이행한다. 그런데 누군가 약속을 어기고 몰래 초과 어획을 한다. '나 하나쯤이야' '나 혼자 버린다고 강산이 더러워지나' 하는 배신 행위가 생기자 하나둘 배신이 늘어난다. 결국 도로 망가진 어장은 폐장의 위기에 빠진다. '내 손실-남의 이득'이란 마음의 도식에서 경쟁이 일어난다. '우리의 이득'이란 공동선에 다가서는 일이 어려운 악순환이 계속된다. 우리는 풍요로웠지만 지구는 달라진 게 현실이 된 것이다.


로 걷는 산행은 적적하고 고요해서 좋다.

입에서 공기가 쌀쌀해 귀마개와 넥워머를 꺼냈다. 하지만 조금 올라가니 더워서 벗었다. 추울 땐 껴입고 더울 땐 벗는 게 낫다. 오솔길에 깔린 낙엽은 수많은 사람들의 답압에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내륙의 중산간처럼 졸참나무, 굴피나무 등 참나무류가 주종이다. 작은 산등성이를 넘자 다시 산이 누워 이어진다. 정상의 전망대까지 2km라니! 이정표를 잘못 봤나. 산길로 두 시간이나 십 리를 걷는 건 무리다. 돌아 내려가기로 하고 땅 위에 가로로 튀어나온 소나무 밑동에 걸터앉았다. 백팩에서 초코파이와 커피를 꺼냈다. 사과 한 알과 함께 오늘 점심이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무색하게 겨울 숲은 햇볕에 눈부실 정도였다.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겨울 볕이 빼곡하게 들이찬다. 오솔길을 가로로 걸친 소나무 뿌리는 편한 벤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지팡이로 썼던 마른 나뭇가지를 소나무에 기대고 모자를 걸었다. 가파른 산길을 잠깐 올랐을 뿐인데 몸에서 열이 났다. 새소리와 짐승의 기척 없는 고요한 겨울 숲이다. 산 아래 고로쇠나무 주변에는 양치류가 짙푸른 녹색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올라오니 마른 낙엽 외에 죄다 무채색이다. 모과나무의 얼룩무늬가 무두질한 표범 가죽 같다. 사과를 껍질채 방정맞게 씹어먹고 뼈다귀를 숲에 던졌다. 햇살의 강도가 세서 나무 너머로 바다가 어슴프레 보인다. 중턱에선 언뜻 보이는 바다는 정상에 오르면 광대한 풍경이겠지만 오늘은 중도 포기다. 지팡이를 짚고 돌을 깐 가파른 오솔길을 조심조심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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