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30)


굴 미역국을 끓였다.


파제에서 홍합을 따거나 미역을 건지는 사람을 봤다. 가슴장화나 장대 없인 불감당인 일이다.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잡초 뽑개를 들고 갔다. 동해에서 바위에 붙은 섭을 따기엔 맞춤한 도구다. 가까운 갯바위엔 사람들이 딴 빈 굴 껍데기가 다닥다닥 붙었다. 그중엔 살아남은 굴도 보였다. 옥포 쪽의 모롱이에서 갯바위에 올라 낚시하는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갔다. 낚싯꾼은 언제 나가도 갯바위나 방파제를 지키는 정물처럼 있었다. 미끼를 달아 던지고 이어 밑밥을 던지고 무한정 기다린다. 망상어나 성대, 새끼 전갱이를 잡은 건 봤어도 감성돔서껀 대물을 잡는 것 보지 못했다. 큰 고기는 배를 타고 나가야 잡을 거다. 바다와 닿은 산자락엔 해송 돈나무가 무성한 푸름을 뿜어낸다. 봄이 오려는지 나날이 포근한 날씨다. 바람결에 훈기가 섞였다.


족한 바위너설을 밟고 위태하게 내려갔다. 갈수록 몸의 균형을 잡는 자세가 힘들다. 나이 탓인 모양이다. 갈고리로 굴의 주둥이를 두어 번 탁탁 쪼아 벌어진 틈에 날을 끼운다. 살짝 힘을 주니 딱지가 떨어지고 먹음직한 굴이 나온다. 입에 넣고 짠물을 훑어내니 짭조름한 게 맛있다. 바위틈에는 작은 거북손이 열 지어 자란다. 이놈들도 예전의 조상은 잡혀가고 살아남은 후손들이다. 텔레비전에서 보고 처음 본다. 물속엔 고동이 산다. 굴에 집중하기로 하고 굴만 캤다. 작은 플라스틱 통에 삼분의 일쯤 찼을까. 이 정도면 굴 미역국을 끓이겠다 싶어 고동을 줍기로 했다. 점퍼 입은 손을 담그니 소매가 젖어 점퍼와 백팩을 바위에 벗어 놓았다. 한 손에 양파 주머니를 들고 바닥에 있는 고동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말똥성게 한 마리도 잡았다. 기름한 욕조 같이 생긴 바위 웅덩이 깊은 곳에 고동이 많았다. 팔을 걷고 잡기로 했다.


은 곳으로 경사진 바위를 밟고 움직이는데 미끄덩하더니 물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누운 자세로 허리까지 물에 잠겼다. 찬 물이 빠르게 몸으로 스며들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젖은 운동화 바닥이 문제였다. 바위에 가려 낚싯꾼은 눈치 채지 못했다. 물소리도 파도 소리에 섞여 듣지 못했을 거다. 중절모를 쓴 사내가 좀스럽게 바위에 붙은 굴 따러 다닌다고 힐끗 보고 말았는데 물에 빠지다니 우습고 낭패스러운 풍경이다. 사람은 길 가다 넘어져도 아픈 건 둘째치고 남이 보았을까 두리번댄다. 창피를 들키지 않으려는 심리다. 역으로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어릴 적부터 내화된다. 부모의 칭찬은 아이를 좋게도 나쁘게도 한다. 요즘에는 인정 욕망이 넘어서 우월 욕망이 대세다. 인정을 넘어선 탐욕의 수준이 아닐까. 우월은 남과 비교해서 낫다는 의미인데 우월주의는 타인을 배제하는 생각이다. 인정만으로 생존의 가치는 불안하기 때문인지 월등히 나은 수준에 도달하려고 한다. 단순한 나음이 아니라 학벌 지연으로 발전하면 차별 의식으로 발전한다. 차별은 당연히 불평등을 낳는다. 어쨌든 나는 바다와 반쯤 평등하게 되었다. 이왕 빠진 몸 무릎까지 빠진 채 고동을 더 줍고 물에서 나왔다.


무릎이 아프다. 상처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외출 바지는 빨려고 놔둔 겨울 청바지와 이것뿐인데 곤란한 일이다. 당분간 수영장에 못 가니 내게 외출은 마트나 다이소 가는 정도다. 짠물이 뚝뚝 떨어지는 바지를 벗고 신발을 물에 헹궜다. 중국어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란 말을 국에 빠진 닭(落汤鸡)이라고 한다. 바다에 빠진 사내쯤 되겠다. 강원도에 살 때 동해에서 스노클링을 했다. 작살로 생선을 쏘고 재수 좋은 날은 문어를 잡았다. 삼 미터 이상 물 바닥까지 내려가 모래를 파고 조개를 잡았다. 홍합 미역 다시마는 덤으로 잡아 남의 입을 즐겁게 했다. 맹골수로에서 아이들의 꿈이 바다에 잠기고부터 물질을 하지 않았다. 자맥질로 갯것을 잡는다는 행위가 나쁜 게 아니라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을 씻고 채반에 받쳤다.

말똥성게는 반으로 갈라 알을 꺼내 먹었다. 작은놈인데 알이 실하다. 성게가 품은 소금물이 달달한 맛이다. 고동은 삶아 이쑤시개로 꺼내려는데 딱지가 너무 깊이 들어가 버려 살을 빼내기가 힘들어 몇 번 시도하다 포기하고 버렸다. 남해 고동이 이런 줄 알았으면 잡지 않는 건데 애먼 고동만 죽였다. 동해 고동은 삶아도 살이 깊이 들어가지 않아 꺼내기 좋았다. 앞으로 고동은 잡지 않기로 한다. 조용히 방에서 책을 볼 걸 그랬다 싶지만 섬에 내려와서 굴도 따 봤으니 해볼 건 해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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