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31)


속박물관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민속박물관으로 갔다. 네비가 잠이 덜 깼는지 초행길인 내가 서툴었는지 가는 데 애먹었다. 돌고 돌아 연초 댐을 지나 명동 마을로 가는 길에 길가에 심은 홍가시나무, 감태나무 사진을 찍었다. 슬슬 남부 식생 알아가는 재미가 붙는다. 산불감시원에게 물으니 조금 전에 지나친 곳이 민속박물관이란다. 차를 돌려 오던 길로 갔다. 폐교를 박물관으로 꾸민 곳이었다.


차장에 차 몇 대가 있다. 관람객의 차이거니 했다. 정문 좌우에는 사열하듯 종려나무와 향나무가 서 있다. 방금 차에서 앞서가던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인사한다. 엉겁결에 나도 목례로 받아주었다. '인사성 좋은 아이로군' 정문 오른쪽에 매표소와 카페가 있다. 너른 운동장엔 담요 같은 잔디가 오전 햇살에 눈부셨다. 교사 앞에는 어디나 똑같은 세종대왕 상이 있었다. 거처인 듯한 한옥 지붕이 두 개 보였다. 앞서간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인사하며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다. 박물관 구경하러 왔는데요. 일요일은 휴관이며 요즘은 코로나로 임시 휴관 중이란다. 이런, 날을 잘못 잡았군. 어디서 오셨는데요. 경북 봉화에서 왔다고 했다. 민속박물관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부친이 설립했으며 자신은 학예사로 일한다고 한다. 어머니가 목사라고 했다. 여자는 건너편을 가리키며 예배소에서 한 시간 함께 예배를 보시면 박물관 안내와 점심, 커피까지 풀코스로 모시겠단다. 풀세트 제의다. 잠깐 생각할 겨를 없이 받아들였다. 교회 다니시나요. 아뇨. 불교 믿으시나요. 아뇨. 무종교시군요. 내가 웃었다. 그럼 제가 오늘 한 사람 전도한 거네요. 여자가 웃으며 앞장섰다.


배소에 들어가니 열 평 정도의 방에 앉은뱅이 의자에 열 명 정도의 사람이 앉아 있다. 여자는 가운데 자리를 가리켰다. 성경책과 노래책을 내 앞으로 민다. 목사는 설교를 시작했는데 내용은 구약 시대의 여호수아와 갈렙이 사십오 년 걸려 가나안 땅을 수복하는 내용이었다. 신에 대한 믿음의 확신과 실행이 주제였다. 정말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사람들 사이를 다니며 뭐라고 말을 붙인다. 저렇게 작고 귀여운 아이를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시간이 흐르니 다리가 저렸다. 오른쪽 다리에 통증이 느껴져 발을 뻗어 주물렀다. 설교단 양 옆에는 벤자민 화분과 빨간 꽃을 매단 식물이 놓였다. 왼쪽 벽에는 경남 교육청 위원이 기증한 디지털시계가 걸렸고, 옆에는 작은 게시판에 예배 순서가 쓰여 있다. 예전의 두 개짜리 방을 터서 예배소로 만든 듯했다. 천정의 소나무 서까래가 오래된 흔적이었고 흙이 떨어지지 않게 판자를 대고 흰 페인트 칠을 했다. 바닥은 따듯했다. 박물관 설립자인 여자의 부친은 보이지 않았다. 목사의 설교는 부드러웠고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담았다. 처음 본 얼굴이 들어왔는데 목사는 내게 눈길을 한 번도 주지 않는다. 배려인 듯하다. 내겐 지루한 시간이 끝나고 여자는 식사 전에 박물관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시원했다.


심원으로 만든 철사 걸쇠를 풀고 들어가 안쪽 문의 자물쇠를 열었다. 기다란 복도와 교실마다 민속품을 배치했는데 공간이 비좁아 쌓아놓은 듯 빽빽했다. 시에서의 지원이 부족해 (쥐꼬리 예산을 자꾸 삭감한다) 전시물을 보존하기 위한 냉난방 시설이 없어 많이 망가진다고 했다. 나무로 만든 생활 도구 중 일부는 좀이 먹어 구멍이 송송 뚫렸다. 입구 좌측으로 문방 도자기 실과 주방용품 계량기 관혼상제 용품이 전시되었고, 오른편에는 생활용구와 농기구가 전시되었다. 고서와 그림, 안중근 의사의 영인본 글씨 액자, 됫박과 저울, 탈곡기, 담뱃대, 죽부인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의 민속품이 다 모였다. 부친은 교직 생활을 하며 모은 자신의 동시 작품과 저서 등도 구분해서 배치했는데, 얼마 후면 시에서 따로 새로운 박물관을 지을 계획이란다. 사범학교를 나와 동시를 쓰며, 민속품을 모으고 많은 저서를 남긴 선생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달에 가본 박물관도 개인이 운영한단다. 떠나온 B군과 가까운 Y시에도 박물관이 없다. Y시에서는 박물관을 짓기 위해 재작년 대대적으로 주민 가구를 조사하여 기증품을 모았다. 학예사는 자치체의 장이나 시민들의 박물관에 대한 열린 의식이 아쉽다고 했다. 섬은 반농반어에서 반어반관광으로 바뀌고 있다. 박물관은 말 그대로 주민의 삶의 역사이고 문화다. 어쩌면 미래의 모습에는 재생에너지로 충전한 탈곡기를 쓰고 믹서를 돌릴지 모를 일이다. 역사에 속한 민속 문화는 무덤에 묻힌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재생할 가치가 고스란히 스몄다. 전국에는 문학관, 생태관, 역사관 등 수많은 종류의 박물관이 있다. 최소한 지역의 특색 있는 삶의 양식을 톺아볼만한 공간이 생겨 알뜰히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속과 함께 자연사 박물관은 생태와 삶을 아우르는 공간이다. 점심시간을 가늠하며 방마다 전시된 민속품을 빠르게 훑어보며 지났다. 섬의 어업 문화와 관련된 전시물이 없어 아쉬웠다. 개인이 모으고 소장한 것의 한계라 느껴진다. j항에는 해양박물관이 있는데 가보진 않았다. G박물관 삼 층엔 작은 목선이 있었고 몇 가지 어구로 구색을 갖춘 편이었으나 역시 모자란 느낌이다. 그림이 몇 점 걸렸는데 국화를 그린 서툰 수채화를 보자 학예사는 J시 여중 때 담임이 그린 거란다. 나오는데 입구의 낡은 다이어리에 방명록을 쓰란다. '祝你们幸福和健康。 소인'이라고 썼다. 건강은 알겠는데 행복은 뭔지 모르겠다. 다음부턴 건강만 빌어야겠다.


페로 갔다.

께 예배를 본 사람들이 타원형의 접시에 밥과 반찬을 덜어 먹고 있다. 뷔페식이었다. 학예사가 된장을 푼 시락국을 떠 왔다. 밥과 샐러드, 계란말이로 간단히 먹으려는데 김치와 무생채를 얹어준다. 이모 형부 하는 것 보니 모두 가족이다. 목사 할머니는 손주들과 얘기하며 밥을 먹는다. 낯선 남자에게 자리를 권하고 불편한 시선을 주지 않는 스스럼없는 모습이 부럽다. 난 그저 박물관 구경을 왔을 뿐인데 뜻밖의 환대에 가슴에 훈훈한 온기가 퍼졌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카페 옆에 판자로 도시락처럼 막은 텃밭에서 남자가 묵은 넝쿨을 걷고 있다. 봄 농사 준비 중이란다. 아내인 여자가 명랑하게 웃으며 커피와 직접 구운 빵을 건넨다. 서툰 농부라며 이것저것 하다 보니 제대로 농사를 못 짓고 겨우 먹을 것만 건진단다. 검색해서 천연 살충제를 만들어 뿌리고 완벽한 건 없다고 말했다. 내가 조경을 했다고 하니 남자가 눈을 크게 뜨며 웃는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 목사 할머니와 학예사에게 인사했더니 다음에 또 오란다. 우연한 만남에 잔잔한 감동을 품고 민속박물관을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 능포 해변에 들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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