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32)
잠이 오지 않는다.
불 끄고 몇 번인가 뒤척이다 도로 불 켜고 책 보다 다시 불 껐다. 내려와서 처음 불면의 밤이다. 건너편 아파트 숲의 불빛은 두어 개뿐이다. 지금 깨어 있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섬의 겨울은 겨울 같지 않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곳에 무단 경작 금지 팻말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흙을 뒤집어 텃밭 농사를 짓는다. 뼘 뙈기밭마다 폐그물을 둘러치고 채소를 심었다. 한겨울에도 케일이 자라고 마늘 싹이 가느단 허리를 세운다. 멀리서 보면 조각보 같은 누더기 밭으로 해풍이 분다. 핏기 잃은 해송이 흔들대고 상록활엽수가 자란다. 가로수조차 푸른 잎을 달고 있으니 사진만 보면 계절을 구분하기 어렵다.
디지털 시대는 완벽과 동일함을 지향하는 느낌이 짙다. 아날로그는 감각적인 데 반해 디지털은 획일성을 강요한다. 감각은 자유로움과 부정성을 추구한다. 불확실한 무엇은 신비와 미지의 색채를 띠는 관계성이다. 그러기에 확장성을 생명으로 한다. 디지털엔 그런 게 없거나 부족하다. sns는 같음과 어울림을 동반하는 데 비해 공허하다. 삭제와 차단으로 간단하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래서 폭력적이다. 겉으론 단단해 보여도 사람의 심리는 나약한 기반을 지니고 있다. 나도 그러해서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다. 오늘처럼 불면으로 밤을 보내는 건 오랜만이다. 노동을 하지 않으니 늦잠을 깨울 이도 없다. 쓸쓸하다는 감정을 잊으려 했는데 자연스럽게 쓸쓸한 단어가 손끝에서 맴돈다. 이런 때 얘기 나눌 친구가 있었으면 했는데 간단히 끊어졌다. 여자 친구 얘길 하는 거다. 우정과 시시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각자 원하는 걸 하는 편한 관계의 친구라면 나의 지나친 바람일까. 같은 곳을 보지 않아도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무시로 연락해도 환대의 목소리를 터뜨리는 사람 말이다. 물론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내게 살아갈 의욕을 건네는 사람들이다. 물리적 거리는 멀어도 심리적 거리는 바로 옆인 소중한 사람들. 내 나이는 계절로 치면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겨울에 핀 꽃도 향기를 품는다. 언 대지에 퍼지는 은은한 향기는 생명과 죽음의 축복이다. 죽음은 삶의 맨 끄트머리에 있다.
영화 채널을 보다 피식 웃고 말았다.
아, 나도 연인을 둔 적이 있었구나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한때 열정의 기억이 있으니 반추하면 심심하진 않다. 혼자 생활하니 사람과의 대화법이 서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종일 방에 있다 오후에 산책 나가도 말을 나누는 상대가 없다. 관계의 공백을 견디는 중이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처방을 내리는 의사, 엊그제 찾아간 박물관 사람들, 수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는다. 요즘 쓰는 문장을 보면 생각의 맥락이 끊어지고 중구난방인 것 같다. 주제도 튀어나오는 대로 갈피를 못 잡고 들로 산으로 헤맨다. 인간의 상상은 끝간 데 없이 지루하고 길어서 스스로 지리멸렬을 좇는 것 같다. 흔해빠진 진부함이면 어떠랴. 사람은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정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무엇이든 정상과 비정상으로 판단하는 습속이 버릇이 되었다. 나조차 도서 검색에서 노년의 삶에 대해 워딩을 하면서 '노인 문제'라고 썼다. 과연 문제적 노년이 쏟아져 나왔다. 어째서 사회는 노인을 존재로 보지 않고 문제적 인간으로 보는 걸까. 남성과 여성, 노인과 청년, 부자와 빈자, 장애와 비장애, 결혼과 미혼 결혼에 관해서는 비혼 이혼 졸혼 동성혼 등의 단어가 마구 나돈다. 비혼과 이혼은 삶의 상황일 뿐인데 사회적 시선을 적용해 가족을 구성하지 않은, 또는 결혼에 실패한 비정상의 범주에 가둔다. 살면서 친구도, 배우자도, 직업도 여러 번 바꿀 수 있다.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개념도 많이 변화해야 한다. 난 얽매인 관계를 푼다는 '해혼(解婚)'이라는 말이 좋다. 서로 구속을 푼다는 자유로운, 삶의 프리랜서의 의미로 읽힌다.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이 삶인데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려는 사고의 경직은 식민지와 군사 독재,한국의 노년 세대는 고령화 추세에 맞추어 정치 세력이 되었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입김을 발휘한다. 식민지와 한국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베이비 부머는 저출산 시대에 막강한 인구 산맥을 형성한다. 노인을 소비의 주체로 치켜세우는 자본은 보험과 실버산업으로 특수를 노린다. 성공과 자식 농사에 자신의 몸과 정신을 쏟아부은 노인들은 길을 잃고 말았다. 비생산적, 비능률의 잣대는 노인을 돈을 벌지 못하고 복지비를 먹는 존재로 본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청년 실업과 노인 복지는 서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으르댄다. 노인이 뭘 잘못했나. 억울한 노인들은 깃발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거나 자신들의 기분을 맞추는 후보에게 열광한다. 정책, 정보, 공동체의 방향은 일단 뒷전이고 가짜 뉴스는 무조건 믿고 본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틀렸다는 우격다짐은 개발 영웅에서 뒷방으로 밀려난 노인들의 한이기도 하다. 노인은 가난하고 외로워서 분노하고 청년은 득도해서 결혼, 직업, 연애를 포기하는 사토리(悟り) 세대가 된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지식인이나 소위 좌파는 나이 들어도 노인으로 불리지 않고 자신을 노인으로 정체화하지도 않기 때문에, 노인 담론은 풍요롭지 못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노인은 흑인, 여성,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종(種)으로 간주된다'라고 말한다. 거리에서 악 쓰는 노인 중에 여자는 드물다. 남성은 권력과 자원이라는 사회적 성공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에 밀려난 남자 노인은 억울하다. 억울하기 때문에 나를 대신해줄 권위가 권력이 필요하다. 나쁜 놈이라도 좋다는 거다. 여성은 대체로 평화적이라고 생각한다. 지혜가 경험에서 나온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만, 노인은 욕구가 있는 존재이며 자신의 삶을 궁구하는 존재다. 산업 시대를 거치며 내화된 한국인의 중심 가치였다.
한국의 노년 세대는 고령화 추세에 맞추어 정치 세력이 되었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입김을 발휘한다. 식민지와 한국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베이비 부머는 저출산 시대에 막강한 인구 산맥을 형성한다. 노인을 소비의 주체로 치켜세우는 자본은 보험과 실버산업으로 특수를 노린다. 성공과 자식 농사에 자신의 몸과 정신을 쏟아부은 노인들은 길을 잃고 말았다. 비생산적, 비능률의 잣대는 노인을 돈을 벌지 못하고 복지비를 먹는 존재로 본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청년 실업과 노인 복지는 서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으르댄다. 노인이 뭘 잘못했나. 억울한 노인들은 깃발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거나 자신들의 기분을 맞추는 후보에게 열광한다. 정책, 정보, 공동체의 방향은 일단 뒷전이고 가짜 뉴스는 무조건 믿고 본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틀렸다는 우격다짐은 개발 영웅에서 뒷방으로 밀려난 노인들의 한이기도 하다. 노인은 가난하고 외로워서 분노하고 청년은 득도해서 결혼, 직업, 연애를 포기하는 사토리(悟り) 세대가 된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지식인이나 소위 좌파는 나이 들어도 노인으로 불리지 않고 자신을 노인으로 정체화하지도 않기 때문에, 노인 담론은 풍요롭지 못한 실정이다. 한마디로 노인은 흑인, 여성,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종(種)으로 간주된다'라고 말한다. 거리에서 악 쓰는 노인 중에 여자는 드물다. 남성은 권력과 자원이라는 사회적 성공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에 밀려난 남자 노인은 억울하다. 여성은 대체로 평화적이라고 생각한다. 지혜가 경험에서 나온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만, 노인은 욕구가 있는 존재이며 자신의 삶을 궁구하는 존재다.
오후에 커피를 담아 백팩 메고 산책하려다 의원에 들러 처방을 받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집으로 왔다.
의사는 운동을 강조하며 건강 관리에 힘쓰라고 강조한다. 구면이라 그도 나도 편하게 얘기한다. 텔레비전에서 다시 기온이 떨어졌다고 따듯하게 다니란다. 섬이 영상 6도이니 B군은 영하겠다. 곰돌이는 오늘 어디로 산책 다녀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