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34)
'저눔이 공격적이진 않겠지...'
흰 바탕에 젖소 같은 검은 무늬가 찍힌 고양이가 힐끗 보고 지나간다.
플라스틱 통에 담아 온 토마토를 반쯤 먹었을 때였다. 예구항 주차장이다. 날이 흐리다. 봄이 오긴 일러서 흐린 날은 음침하다. 코가 쨍한 바람은 아니라 춥다고 하기엔 그렇고 손을 내놓으면 시린 정도인데 그렇다고 장갑을 끼기에는 성가신 날씨다. 장갑과 넥워머를 백팩에 넣고 걸었다. 스틱을 잡지 않은 손은 점퍼 주머니에 찔렀다. 무엇 하나 딱 집어 방향을 정하기 어려울 땐 잠시 멈춰 생각하는 게 낫다. 젊을 땐 이러지 않았다. 집에서 십 키로 떨어진 공곶이에 왔다. 예구항에서 바다 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걸어가면 공곶이가 나온다. 엉덩이 형상으로 불거진 곶(岬)이라고 해서 공곶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노인 내외가 평생을 호미로 일군 수선화 밭으로 유명세를 탄 장소다. 그들은 천주교 신자로 1969년부터 이곳에 들어와 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공곶이는 1868년 병인박해를 피해 내려온 윤 씨 형제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독서왕 정조가 죽자마자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고 삼정 문란으로 전국에서 농민 봉기와 민란이 들끓던 무렵이다. 나는 막 산책로를 돌아 내려온 참이다.
공곶이 수선화 밭을 보지 못하고 내려왔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니 후박나무를 울타리처럼 심어놓은 오솔길 중간에 오른쪽 아래 공곶이 가는 길이 났고, 곧장 가면 사십 분 거리에 돌고래 전망대가 있다. 등짝에 땀이 나기 전이었는데, 양쪽 다 급히 처박히는 길이 뱀처럼 굽었다. 내려가면 올라와야 하는 게 길의 운명이다. 아픈 다리가 생각났다. 해송과 후박나무 사이로 잿빛 바다가 보였고 바다 건너 내도가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선착장 주변에 오종종하게 집들이 모였는데 담장과 지붕이 죄다 레몬 옐로의 진노랑색이다. 지중해의 울트라 마린과 하얀색의 마을이 겹쳐졌다. 원색에 가까운 노란색은 바다와 솔숲의 샙 그린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주문진 건어물 거리에 여름이면 나타나는 옷장수의 원색 여름옷 닮았다. 아줌마들이 입는 홈드레스와 몸빼 바지를 목이 없는 마네킹에 울긋불긋 걸어놓고 팔았다. 멀리서 아는 여자가 찾아와 급하게 바다에 가면서 물옷 대용으로 싸구려 티셔츠를 산 적이 있다. 화학섬유라 해지지 않아 아직도 입는다.
콘크리트를 깐 경사로는 가팔랐다.
섬의 어디에나 있는 펜션 카페를 벗어나자 산길이었다. 상수리나무 해송 후박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은 무채색의 겨울을 나는 중이다. 고개를 들어야 이십오 미터 높이의 가지가 보일 정도로 해송의 몸통은 굵고 길었다. 군데군데 후박나무가 초록색으로 섞였는데 낙엽 위로 싹이 튼 어린 후박나무가 자랐다. 더 오르니 돌을 쌓아 닦아놓은 계단밭이 나타났다. 밭 주변에는 둥근 모양으로 가지치기 한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산책로 입구는 대숲이 해풍을 막아주고 주택 뒤로 동백나무가 담장을 친 것처럼 병풍 모양으로 자란다. 여기 동백나무는 아직 꽃을 열기 전이다. 동백꽃의 만개를 보려고 나갈 때마다 살피는 게 버릇이 되었는데, 무척 더딘 느낌이 들었다. 꽃에 대한 조바심일까. 피고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모가지째 낙화하는 꽃은 화려함 뒤에 숨은 인간의 비애와도 같다. 바다로부터 간간이 바람이 불었는데 그건 파도를 일으킬 만큼 사나운 기세는 아니었다. 산책객의 도란대는 말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에움길에서 모습을 보이자마자 어느샌가 나를 지나쳐 앞서간다. 그만큼 걸음을 느리게 걸으며 나무를 살피고 주변을 둘러봤다. 채소밭이 끝나는 빈터에 아왜나무 굴거리나무를 심었다. 나무의 잎과 수피를 눈으로 익히며 천천히 걸었다. 이제까지 익힌 섬의 나무는 열 종류로 늘었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보지 못할 나무다.
차를 세워 둔 예구항에 돌아오니 그새 차들이 많이 들어왔다.
주말이라 산책 나온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이쁜 모자를 쓰거나 지팡이를 들고 둘씩 짝 지어 걷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바다 쪽에는 남자가 그물을 손질하고 여자는 지켜본다. 차를 방파제에 대고 낚시를 던지던 사람이 의자에 웅크리고 전화를 한다. 까마귀를 닮은 갈매기 소리가 고적한 풍경에 섞인다. 정면으로 보이는 식당에는 사람 그림자가 없다. 계절 특미 봄 도다리 쑥국, 갯바위 낚시 출조, 지역 특산품 글씨가 유리창에 붙어 있다. 차에서 내리고 타는 사람들의 말씨가 죄다 경상도 일색이다. 경북 내륙보다 억양이 부드럽다. 니껴, 하시더의 말투는 없지만 경상도 억양은 생각 없이 들으면 중국 말처럼 들린다. 4성을 쓰는 게 경상도 억양과 닮은 건데 나라마다 언어의 발성이란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베트남어는 6 성조를 쓰니 배우긴 더 어려울 거다. 그러고 보니 표준말이라는 서울 경기도 말씨는 밋밋하고 무뚝뚝한 맛이 있다. 오래전 동지나해로 고기잡이 나가다가 파랑주의보로 선장의 고향인 화태도란 섬에 정박했다. 내가 가게를 물으니 못 알아듣겠다는 듯 섬 소녀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제주도에 있을 때도 두 달이 지나서야 일상의 제주 말씨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기다란 한반도의 끝에서 끝의 말은 통역이 필요할지 모른다. 중국은 북경어를 표준어로 했지만 땅이 넓어 텔레비전 화면 아래에 자막이 늘 지나간다. 일본도 그렇다. 홋카이도와 오키나와, 본섬의 말이 다르다. 이젠 많이 섞여 표준화되었는지 대신 일본 자막엔 각 지역의 지진 상황이 24시간 흐른다.
예구항은 해안도로에서 좀 들어간 리아스식 해안 지형이라 그런지 어촌 분위기가 났다. 도로에서 가까운 해변은 펜션 횟집이 차지했다. 공곶이는 그래도 매체를 통해 알려진 탓인지 점심때가 되자 차들이 꾸역꾸역 내려왔다. 포구에 매인 배가 잔잔한 물결에 떠 있다. 옆구리에 '환희'라고 쓰였다. 환희에 찬 삶이라면 좋은 걸까. 희망 사항일 거다. 맨날 기쁜 날이면 인생은 고문과 같을 거다. 의미 부여가 있거나 없거나 인생은 울고 웃는 게 낫다. 어차피 한바탕 독한 꿈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