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삼월로 넘어서자 지루하다는 듯 겨드랑이에서 일제히 꽃을 내밀었다. 빨간 튀밥 같은 꽃송이에 꿀 담은 수술이 새를 유혹했다. 걸신들린 사람처럼 셔터를 누르며 나무 사이를 쏘다녔다. 파란 하늘을 도화지 삼아 붉은 꽃잎은 피를 토했는데 산책하는 사람들은 역사와는 무관한 얼굴을 하고 지나갔다. 더러 잠자코 멈춰 서서 꽃을 바라보았는데 그건 꽃에 대한 관심보다 엄혹한 현실에서 비롯된 자신의 상념을 추스르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여기선 꽃이 아니라 사람이 유령이었다. 인간은 더 이상 역사적이지 않은 관계로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절멸된 영혼. 꽃은 새를 부르고 붕붕 날개를 털며 햇살 속을 비행하는 벌에게 순순히 몸을 내주고 있었다. 이 무렵 봄바다에선 학꽁치보다 바람을 낚는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