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꺼 일기

by 소인

一人暮らし(42)


기 북부에 사는 동무의 페이스북에 비가 철철 내린다.

구름이 남하 중인가. 창문으로 내다보니 수채화 wet on wet 기법으로 무채색이 번지듯 시커먼 매지구름이 오락가락한다. 하늘이 온통 흑백 화면이다. 마른빨래를 정리해 서랍에 넣고 집을 나섰다.


서관에서 책을 반납하고 새로 빌려 청마기념관으로 향했다. 청마의 출생지인 둔덕면은 본섬의 서쪽이다. 산방산 넘어가는 급경사에 이르자 비가 철철 쏟아붓는다. 겨우내 가뭄에 시달렸던 들판이 촉촉하게 젖기 시작한다. 남도의 마늘은 벌써 한 자 이상 줄기를 키웠다. 동해안 산불은 이번 비로 불씨조차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엄청난 면적을 태운 산불 속에서 죽은 야생 동물, 검은 재로 변한 수목의 피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우리라. 자연은 인간의 능력 밖이어서 비바람도 시의적절이란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연을 다스림과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오만한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자연의 위대함 중 하나는 복원력인데, 피해가 절멸의 수준을 반복하면 회복은 자연의 몫이 아니다.


마기념관은 마을 한가운데에 깔끔하게 단장한 현대식 건물로 비를 맞고 있었다.

름한 비닐봉지에 우산을 넣고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청마는 생명파 시인으로 알려진다.

'깃발'에서 꿈틀거리는 본연의 생명을 노래하고 '행복'은 일상의 안녕을 노래했다. 통영 우체국에서 부친 여성 시인과의 러브레터로도 유명한 그는 교통사고로 급작스레 사망했다. 김수영 시인도 잡지사에서 원고료를 받아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버스에 치여 죽었다. 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두 시인의 어이없는 죽음이 안타깝다. 김수영 시인은 48세로, 청마는 육십에 죽었다.


마는 식민지 시절 친일 작품으로 지금까지 시비에 오르는 인물이다. 만주 생활 중 쓴 시 '수(首)'의 내용에 장대에 머리를 달아 맨 비적이 다름 아닌 독립군이라는 것이다. 청마는 독립군을 일개 비적으로 매도했다는 것인데 반대쪽에서는 그저 당시에 들끓던 강도일뿐이라는 주장이다. 박태일 교수는 당시 사료를 찾아 비적 떼는 잦아든 시기이고 독립군의 투쟁이 활발했던 시기라고 논증한다. 친일인명사전에는 형 유치진이 올라있고 청마는 보류 중이다. 또한 그가 쓴 산문에는 학도병 출병을 격려하는 글이 있는 걸 보면 식민지 치하의 그의 친일성이 부각되기도 한다.


태일 교수는 논문에서 청마의 산문을 인용한다.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


'오늘 대동아 전(大東亞戰)의 의의와 제국(帝國)의 지위는 일즉 역사의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비류(比類) 없이 위대한 것일 겝니다.

이러한 의미로운 오늘 황국신민(皇國臣民)된 우리는 조고마한 개인적 생활의 불편가튼 것은 수(數)에 모들 수 업는 만큼 여간 커다란 보람이 안입니다. 시국(時局)에 편승하여서도 안 될 것이고 시대(時代)에 이탈하여서도 안 될 것이고 어데까지던지 진실한 인간생활의 탐구를 국가의 의지(意志)함에 부(副)하야 전개시켜 가지 안으면 안 될 것입니다.

나라가 잇서야 산하도 예술도 잇는 것을 매거(枚擧)할 수 업시 목격하고 잇지 안습니까.

오늘 혁혁(赫赫)한 일본의 지도적(指導的) 지반(地盤) 우에다 바비론 이상의 현란한 문화를 건설하여야 할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지어진 커다란 사명이 아닐 수 업습니다.


-만선일보(滿鮮日報), 1942.2.6. 유치환


사에는 기억하기 위한 역사도 있고, 숨기기 위한 역사도 있다. 오늘날 유치환에 대한 명성은 광복 뒤 지속적으로 숨기기 위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았던 결과다.

...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문학인을 기리고 떠받들겠다고 나서는 개인이나 조직의 이해관계나 해묵은 문학적 추억이야 다른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실체적 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터.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그러한 역사적 허위와 사회적 건망증에 갇혀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유치환과 이원수의 부왜문학(附倭文學)」박태일.


작가인 형 유치진이 만주에 마련한 땅의 농장 관리인으로, 정미소를 운영했던 청마의 만주 생활이 가난에 쫓기고 일군의 삼엄한 눈초리를 피해 독립 투쟁을 했던 당시 민중의 생활과는 많이 괴리된 것은 사실이다.

식인의 언설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다른 무게를 지닌다.

요에 의한 것이든 변절에 의한 것이든 그가 남긴 언설은 후대의 평가에 맡기겠지만 역사의 흐름에서 부정의한 것임에 틀림없다.

을 부인하는 쪽이나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지금도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과제로 분열된 의식의 단면을 우울하게 보여줄 뿐이다. 객관적 사실을 드러낼 때 올바른 평가가 뒤따른다. 산청이 출생지인 음악가 윤이상의 출생지를 통영으로, 청마의 출생지를 거제에서 통영으로 기록하는 지자체의 논리는 부박한 끌어대기 인식을 말한다. 하물며 지자체장 선거에서 위대한 음악가에게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 빨갱이 운운하는 게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에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설사 좌우익 사상의 편력이 있다 치더라도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섬의 독립운동가 윤일, 지한명, 신용기 등은 당시 식민지 해방과 민중의 자유를 위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아나키즘을 받아들여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남북 분단의 첨예한 대립으로 좌익인 그들을 외면해 오다 최근에야 다시 조명하기 시작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충원의 독립운동가 묘역을 두고 사상 논쟁을 벌이는 미숙한 지성이 오늘의 현실이다.


사상의 자유와 친일 행적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일제의 수탈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황무지 만주 땅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민중, 중국인의 멸시와 차별을 견디며 손이 갈퀴가 되도록 무논을 일군 사람들은 일경의 눈을 피해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대다 참수당하고 학살당한다. 경신 대참변에 수만의 조선 민중이 일제의 총칼에 팔다리가 잘리고 참수당해 학살되었다. 엘리트 계층은 말해 무엇하랴.

조선 시대 삼한갑족이었던 이석영 형제는 현재 가치로 육백억 이상의 전재산을 급히 처분해 만주로 떠나 신흥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다 끝내는 뿔뿔이 흩어져 굶어 죽거나 병사했고 이회영 선생은 노구를 이끌고 이동하던 중 일경에 붙잡혀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다. 안동 임청각의 주인이었던 석주 이상룡 선생, 김대락 선생 등은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타국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 투쟁에 몸을 던졌다. 타국의 산하에서 전투를 벌이다 죽어간 이름 없는 민중의 역사가 한반도의 혈맥에 면면히 스며 있는 처절한 상황을 두고 시대와 동떨어진 인식을 일삼는다면 누구를 위한 산하이고 누구를 위한 공동체인가. 청마의 친일 작품은 옥에 티일 것이다. 옥의 하자(瑕疵)를 인정하는 것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시관 일층에 들어서 둘러보는데 칠십 대의 신사가 말을 건다.

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나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다 사무실에 가서 차를 마시자고 권했다. 젊은 학예사는 기호를 묻더니 고맙게도 블랙커피를 내준다. 관장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의 섬 생활을 물었다. 그와 얘기 중 문화원이며 민속박물관이며 공통되는 주제가 튀어나온다. 마치 섬사람이 된 느낌이다. 섬에 내려와서 내가 알게 된 사람 얘기를 그가 말한다. 차를 마시고 이층 전시장을 둘러보고 내려왔다. 관장은 현관까지 나와 악수를 청하며 빗길 조심하란다. 관람객 뜸한 섬의 기념관을 지키는 그의 모습이 편안하게 보였다.


마기념관을 나와 산달도로 갔다.

국의 여느 섬은 뭍과 1,2km 거리면 다리로 연결했다. 본섬에서 가까운 가조도, 칠천도에 연육교가 있어 섬은 육지와 생활권이 대등하게 되었다. 몇 해 전 완도에서 정약전의 유배지였던 신지도조차 다리로 이어져 쉽게 건넜다. 수하식(垂下式) 굴 양식장의 말뚝이 수면 위로 솟은 모양이 무명용사의 비목 같다.

린 바다의 비 내리는 풍경은 쓸쓸함과 고적함을 겹쳐놓은 것 같다. 동백나무에서 떨어진 붉은 꽃송이가 길가에 소복하다. 젖은 아스팔트의 검은색과 대비된 붉은 꽃이 선명하게 보여 서늘한 기분이 든다. 붉은 피는 생명이자 죽음의 색을 동시에 지닌 경계의 색깔이다. 우리는 일상의 절정에서 죽음을 잊고 절망의 순간 죽음을 소환하는 버릇이 있다.


달도의 다리는 일 킬로미터였다.

거리 수영에 몰입하느라 길이에 대한 감각에 관심이 간다. 저 정도 거리면 헤엄쳐서 건너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다. 고흥 앞바다의 소록도 역시 다리로 연결되었는데 다리가 없을 땐 한센병 환자들이 헤엄쳐서 섬을 탈출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떠난 사람들은 더러는 건너갔고 더러는 익사했을 거다. 한센병 환자들이 일군 간척지에 갔을 때도 오늘처럼 처연한 빗줄기가 퍼부었다. 동그랗게 키운 홍가시나무 정수리가 빗물을 맞고 발갛게 물들었다.


끔 섬의 동서와 남쪽을 가다 보면 지났던 길이 나온다.

의 길에 익숙해졌다는 거다. 본섬의 동서가 20km, 남북이 50km이니 조금만 달리면 반대쪽의 바다에 닿는다. 들쭉날쭉한 리아스식 해안 지형에다 높다고 낮다고 할 수 없지만 산들이 솟아 있어 군데군데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구불하게 이어진다. 굽이를 돌면 바다가 나오고 내리막을 내려가면 굴 껍데기가 수북한 창고가 나타났다. 유럽 사람들이 거의 유일하게 생식하는 굴의 가치는 흔한 상식이 되었다. 석화(石花)란 굴의 한자어는 얼마나 멋진 말인가. 전라도에서는 굴을 '꿀'로 발음하고, 김은 해우로 부른다. 꿀맛 같은 굴의 미각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난 생굴도 좋지만 자연산 어리굴젓과 굴전을 최고로 친다.


부면에서 구조라 해수욕장으로 가는 산길을 넘는다. 휴일이라 궂은날에도 나들이 차량이 많다. 풍광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웃는 얼굴 위로 성긴 빗물이 떨어진다. 산길을 넘어가자 비도 기세를 늦춘다. 구조라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갓길에 멈추었다.


수욕장 맞은편에 무인도가 있다.

선거리로 사오백 미터쯤 된다. 바다수영 동호회에서 자주 찾는 곳이라고 했다. 그들은 3,4km 오픈 수영은 보통으로 하는 수영 고수들이다. 현재 내 실력으로는 앞에 보이는 무인도까지 오백 미터 정도가 적당하겠다. 동해에서 오랫동안 스노클링을 해서인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그러나 바다 수영은 높은 파도를 피하고 장비를 갖추고 둘 이상이 함께 하는 수영이라야 안전하다. 혼자 바다에 들어갈 때는 수중 칼을 발목에 찼다. 물 바닥에 로프, 폐그물, 끊어진 낚싯줄을 만나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발에 쥐가 나거나 힘이 달려 물에 뜨지 못할 때 구해줄 사람은 없다. 응급 상황이 닥치면 혼자 해결해야 한다. 힘이 부치면 선 헤엄을 치거나 물에 떠서 휴식을 취한 후 움직여야 한다. 어쨌든 심연을 아래에 두고 수면을 떠서 가는 건 스릴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의 연안에 상어가 흔하게 나타나진 않았지만 근래엔 상어의 출몰과 독성 해파리의 출현이 잦다. 예전엔 겁이 없었지만 요즘은 겁이 많아진다. 대책이 별 무면서 자꾸 덤비고 저항하고 싶은 성벽은 누구에게 물려받은 형질일까. 시몬느 드 보봐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라고 한 건 여성에 대한 남성적 가부장 사회의 차별을 질타한 말이다. 내가 세상과 불화하는 것은 환경과 경험이 만든 걸까. 팔 할은 맞다고 본다.


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꼬막을 샀다.

기를 속일 겸 꼬막을 데삶아 낮술을 마셨다. 내일부터 한 주가 바쁠 것 같다. 누가 보지 않는데 혼자 바쁜 것도 살아 즐기는 호사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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