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谷城)③
내가 일에서 잠시 떠나 있을 때 제일 먼저 한 건 우리나라 역사를 더듬는 거였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이래 역사의 중심에서 시대의식을 가지고 불합리한 구조에 저항해서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난 인물에 대한 관심이었다. 형벌제도의 하나인 유배는 기득권 세력에겐 특효의 처방이었다. 중앙에서 머나먼 삼수갑산이나 절해고도에 정적(政敵)을 가두는 건 고사하고 종내는 사약을 내려 목숨을 끊어놓기도 했다. 삼족(三族)을 제거했다. 모든 관계의 멸절이었다.
과거의 역사를 톺아보는 건 현재의 상황을 진단하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살피는 일이다. 시대의 이단아지만 봉건 군주제 아래 혁명적 의식으로 기득권에 대항한 사람에게 방점을 둔다. 치열한 시대의식으로 무장한 그들이 없이 사회는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없다. 그들의 꿈과 절망, 그리고 발설하지 못한 그들의 사상을 천착하는 게 오늘의 일그러진 우리들의 현실을 바로 펴는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선조가 구한말의 혼란기로부터 한일병탄을 지나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역사의 질곡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시간은 없다. 그리고 가계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가진 어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을 떠난다. 나의 역사 돌아보기는 진부한 뿌리 찾기가 아니다. 나를 닮은 사람들이 시대의 소용돌이에서 얼마 큼의 뜨거운 한숨과 눈물로 살다 갔는가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가족사 중에 누구나 평탄한 삶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건 나고 감이 고해(苦海)의 연속이란 불가의 가르침 아니라도 인류의 삶은 역사 이래 불편함과의 싸움이었다. 누군가의 행복한 삶은 또 다른 누군가의 결핍을 뜻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기대한 기업가의 양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기대를 산산이 부수었다. 멀리 갈 것 없이 백 년의 시간만 거슬러 보더라도 그때의 시대상황과 오늘의 상황은 별반 차이가 없다. 시대정신은 그 시대가 안고 있는 과제를 해결하는 토대다. 어느 시대에도 깨어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다수의 민중은 시대의 불합리와 폭압적 체제에 순응하거나 저항하며 이어져 왔다. 더러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꿈꾸며 만주로 연해주로 하와이로 멕시코로 떠났다. 만주로 떠난 일부는 일제 만주국의 폭압을 피해 연해주로 갔으나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시베리아에서 다시 중앙아시아로 쫓겨가며 피눈물의 목숨 이어가다 들판의 뭇별로 사라지기도 했다.
나의 처삼촌은 러시아 사람이다. 물론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본 적도 없지만 말이다. 돌아가신 장인의 아버지는 장인이 다섯 살 무렵 사할린으로 징용을 갔다. 그곳에서 살림을 차린 할아버진 끝내 그리던 고향으로 오지 못하고 본적지로 쓸쓸한 사망통지서를 보냈다. 체제와 역사 앞에 힘없는 민중은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다. 목숨의 보전을 위해 어디든 떠돌아야 하는 존재였다. 물론 어디서도 꿈과 사랑이 피어났고 이별과 절망이 뒤따랐다. 민중은 도도한 물결 앞의 나뭇잎배 같은 존재였다.
졸 시 '처삼촌'이다
처삼촌
장인 다섯 살 때 사할린으로 징용 살러간 아내의 할아버지 해방된 눈물의 꼬르사코브 항구 나스타샤의 푸른 눈 외면하지 못해 눌러앉아 반 세기 일가 이루었는데 옷고름 적시던 아내 재가하고 꿈에 그리던 엄니도 떠나고 머리 큰 아들 타관객지 떠돌며 손재주 타고난 건 아비의 내리물림이었다는데 가난 물려받은 고단한 나라 올림픽 열리던 날 러시아 땅에서 본적지로 날아든 사망 통보서 한 장으로 한 많은 일생 접었는데 지금도 남의 일 낮잠 자는 사할린동포법 나라도 외면하는 개인사 내 처삼촌은 러시아 사람 시빠쓰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