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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Jun 24. 2022

잡문

杂文(314)


수영장에 갔다.

강습 끝나기 오 분 전이라 풀에 들어가지 않고 몸을 풀었다. 강습이 끝난 회원들이 남아 물속에서 두런대고 있다. 섬의 수영장과 내륙의 분위기는 달랐다. 섬에는 보통 수력 십 년 이상의 고수들이 쉴 새 없이 물을 헤치고 레인을 오가는 편인데 여기는 두어 번 왕복하고 쉰다. 발차기를 마치고 레인을 왕복했다. 핀 수영이지만 호흡과 동작을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 십 분, 이십 분 레인을 탈 때마다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간다. 혼자 레인을 타게 되니 앞을 보지 않고 죽죽 나간다. 어제오늘 반년만에 B군 수영장에 오면서 작년 두어 달 다닐 때 얼굴이 익은 사람들을 보았다. 얘기할 기횐 없었지만 여전히 수영하는 걸 보니 반갑다. 그들은 섬의 수모(水帽)를 쓰고 물을 헤치는 날 알아볼까. 일취월장한 실력을 뽐내기엔 이르다. 섬에서는 연수반 물개들의 대열 끝에서 따라갔지만 여기선 나 혼자 역영 중이다. 섬의 고수들이 벌써 그립다. 그들의 원 포인트 레슨은 좋은 약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파브리아노 스케치북을 주문했다. 방 정리를 대충하고 이젤을 구석에 세웠다. 책을 죄다 버리니 책장이 훌륭한 그림 도구장이 됐다. 침대 머리맡에 섬에서 그린 그림을 걸었다.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와 바다 물색이 눈에 선하다. 겨우내 능포 주변의 바닷길을 걸으며 상념에 빠진 독거의 생활은 다시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엊그제 섬을 떠났는데 화실의 동료들이 보고 싶다. 정 많고 사랑 많은 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그림을 사랑하며 삶을 즐다. 그들에게 전염된 온기가 내 몸으로 스민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너무 많은걸 받아왔다.


계획대로 창고를 정리하고 버릴 건 버렸다. 캠핑 장비와 독거 살림 정리는 아직 멀었다. 좁은 마당이 깔끔해진다.


사족 하나.

맨날 철 되면 양말 없다고 양말을 사곤 했는데, 어디서 저 많은 양말이 나왔을까. 신을만해도 자리를 차지해 버린 것만 오십 켤레다. 구멍 난 양말을 기우며 살다 물건 아낄 줄 모르고 사는 세상이니 누굴 주기도 어렵다. 죽기까지 신을 만큼만 남기고 망설임 없이 버렸다.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비우고 비우고 비우면 미움과 쌀쌀함은 사라지고 온기와 사랑이 들어찰 테지.


수영장에 다녀와서 마당 청소를 했다. 설거지 한 그릇을 정리하고 쌀 씻어 밥솥에 안쳤다. 다시 일을 하기까지 자잘한 집안일은 내 몫이다. 하숙생이 눈칫밥 배불리 먹는 비결이다. 더워지면 동해로 나가 수영하고 조개를 잡아야겠다. 다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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