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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by 소인

1.
식전 나라와 문화원 뒷길을 산책했다. 산비알의 백목련 자목련이 바람에 떨고 있다. 꽃잎은 늘어지고 떨어졌다. 흙냄새 나는 곳엔 죄다 푸른 기운이 뻗쳐 쉬지 않고 푸른 것들 올린다. 초록의 점령군이다. 가느단 두릅 작대기에서 물오른 촉이 나온다. 듬성듬성 담장 따라 누군가 살뜰하게 일궈놓은 터앝에서 텁석나룻 같은 부추 근력 좋게 퍼진다. 파릇한 처녀 허리처럼 속살 부끄러운 줄 모르는 파는 봉오릴 달고 씨방을 준비 중이다. 봄은 문턱 넘어 마당을 지나 골목을 기웃거린다. 긴 여행에도 나라는 주인 가는 데라면 지옥이라도 따라갈 기세다. 킁킁대며 흙냄새 바람 냄새 그러모아 코로 마신다. 가끔 멈춰 서서 낯선 풍경을 눈에 담기도 한다. 그럴 때는 생각 깊은 사람 같다.

오늘 아침에 전제두 선생의 '꽃은 피고 물 흐르고'를 읽었다. 지난번 술자리서 건네받은 책인데 술 깬 다음날 마당에 나가니 수돗가에 놓여 있었다. 술 김에 따라온 동무 같다.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집에 돌아온 후 작파하고 책을 열었다. 알음으로 전해 들은 바로는 전제두 선생은 천도교인이라고 들었다. 긴 수염에 늘 소년 같은 미소를 달고 다니는 그이는 말과 행동이 언제나 잔잔하다. 십여 년 전 내가 안동댐에서 잡은 붕어 잉어를 바구니째 주었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다. 이삼 년에 한 번꼴로 보고 지냈다.

인내천 사상의 근간인 천도교 사상을 수운 선생과 해월 선생 그리고 손병희 선생을 연원적으로 담고 자신의 체험과 연계해서 알기 쉽도록 쓴 책이다. 우주 만물의 섭리를 명상과 수행으로 깨우친다는 것이 내겐 관념적이고 물상의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단 생각이 들었지만 외려 나 같은 속인에겐 일상의 경계로 삼을 만한 글이 많았다. 일 년에 한 번씩 아내를 따라(전략적 측면이 강하다) 교회당에 앉지만 그때마다 교인들의 관념적인 내세에 대한 확신에 놀라면서도 마음 적이 불편했다. 하지만 말라비틀어진 똥 친 막대기 같은 세상에 정화수 같은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있으니 추깃물로 썩어 문드러지진 않겠단 생각도 드는 거였다. 꽃은 피고 물 흐르지만 누군가에겐 피는 꽃도 흐르는 물도 매양 같게 보이진 않을 거다. 자잘한 깨달음 하자마자 반성이란 그림자 덮어씌워 오는 날만한 놈에겐 갈 길이 멀다.

군민회관 뒤편엔 제설차량이 일렬횡대로 늘어서 넘어오는 아침 햇볕을 받는다. 낮은 담장 너머로 꽃가지 늘어뜨린 나무들이 집을 뛰쳐나올 기세다. 삼십 분의 짧은 산책길 돌아 가래골로 들어선다. 멀리 골짜기 안에 보양사의 파일 등(八日燈)이 울긋불긋 꽃대궐이다. 초파일에 가면 보양탕 한 그릇씩 돌리나 빈속에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앞집 오갈피나무 새순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2.
오늘은 문화원 뒷길 지나 맞은바라기 산 중턱에 보이는 충혼탑까지 산책하기로 했다. 문화원 길은 인적이 드물어서 좋다. 집 앞 골목 돌아 오르는 길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폐가가 있고, 에움길엔 청송 심 씨의 묘가 산으로 몰려오는 주택들 피해 반쯤 몸을 비튼 망두석과 함께 누워 있다. 식전의 새뜻한 공기가 막 몸 씻고 나온 여자의 맨살 같다. 한 노인이 문화원 주차장 한편에서 운동기구를 탄다. 양손을 손잡이에 얹고 두발을 판에 올리고 하체를 좌우로 흔드는 동작인데, 짧은 다리의 힘찬 움직임이 우스꽝스럽다. 물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그것처럼 생동적이었는데 젊은 시절 저이도 세상 거칠 것 없이 다닐 때나 여인과 이층 만들 때도 저랬을까. 속내 궁금하면서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우리가 가까워지자 기구에서 내려온 노인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롤러코스터 마냥 길이 난 충혼탑 가는 길엔 조팝나무가 눈부신 꽃을 마구 밀어냈다. 담장 허문 어느 집 뒤란엔 깔끔한 장독대가 있었다 오르막길 올려다보니 백 년은 넘음직한 느티나무 두어 그루 남해 점점이 떠 있는 섬들 내려다보는 위엄으로 서 있다. 이순신은 늦깬 장수였다 서울 건천동 시절 어릴 적 동네 형이었던 유성룡의 천거가 없었더라면 조일전쟁 당시 일개 하급 무관으로 변방에서 적을 상대했을지 모른다. 그의 사람됨을 일찍이 알아챈 서애의 혜안 또한 범상치 않았으니......

시멘트 구조물에 회칠 한 하얀 첨탑이 쌍둥이로 섰는 충혼탑에서 나라의 줄을 놓아주었다. 녀석은 느슨해진 줄을 눈치채자 개나리 울타리며 자줏빛 젖판처럼 봉오리 진 철쭉 무더기 사이를 킁킁대며 돌아다닌다. 느티나무 우듬지에서 여린 이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늦게 싹이 나와 느티나무라 했던가. 밤 자고 난 잔디는 젖은 담요처럼 푹신했다. 충혼탑 아래 귀부 형상의 비석이 계단 양 켠에 놓였다. 멀리 소읍의 풍광이 한눈에 담겼다. 소읍에 다닐 땐 몰랐는데 큰 다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나라를 지킨다는 대의를 위해 수많은 전장에서 사라진 영혼을 기리는 충혼탑을 보니 몇 가지 생각이 스친다. 어느 시대나 국가제도가 형성된 이래 지배계급은 그들만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백성과 민중을 지배했다. 권력의 틀 안에서 보호를 원하는 심리와 그것은 맞아떨어지고 다시 수많은 이데올로그를 양산한다. 그리고 국가주의와 한 짝이 된 애국심은 명분이 있든 없든 다수의 민중을 전쟁에 동원했다. 거기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논하고 자실 것도 없다. 당장 내 가족과 이웃과 내가 속한 공동체와 더 나아가 국가를 지킨다는 대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너무 나약했고 안이했다. 또한 지극히 탐욕적이었고 유순했으며 미욱했다. 대국 앞에 지조를 너무 쉽게 버렸다. 중세의 전란은 왕조시대의 군주나 관료에 의한 무능으로 빚어진 것이었다고 치더라도 구한말에 이르러서 지나간 역사에서 한 치도 배우지 못하고 열강의 틈에 끼이고 말았다.

그저 망연한 자세로 제국들의 식탐에 내둘렸다. 수많은 지사와 민중이 압제의 희생물이 되었다. 국가의 명운에 먹구름만 요란하자 민족주의는 길을 바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앞세워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이념을 갈아타고 중국 군대에 들어가 일군과 싸웠으며 급기야 민족사학자 단재 선생은 아나키즘을 좇기도 했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그것이 제국주의의 폭압에 저항하고 민중을 구해내는 사상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외세에 의한 해방 후, 그리고 자유당 516 군사쿠데타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친일 세력에게 반공이라는 무시무시한 칼을 내주고 말았다. 제국주의 미국의 허울에 휘둘려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냈는가.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우리가 남의 민족 해방전쟁에 들러리로 나서 총칼을 휘둘렀으니 그 참담함은 실로 통탄할 일이다.

나라는 새로 이사 온 동네의 냄새를 저장하느라 코를 벌름거리며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발에 이슬이 흠뻑 젖었다. 잠깐 생각에 잠긴 동안 아침 해가 문화원 건물의 뒤통수를 비추고 있다. 나라를 불렀다. 돌아보고 달려온다. 가자, 나라야 충혼탑이여 부디 헛된 죽음은 되풀이 말기를!


3.
콧구멍만 한 창으로 부연 동살 들어온다. 얼굴 씻고 집 나섰다 공일 아침 골목은 고요하고 주차된 차들은 휴일 늦잠 중이다. 뭔가 실은 노인이 지팡이 짚고 한 손으로 유모차 당기며 간다 늙어도 끌고 갈 짐이 있는 게 인생이다. 죽음은 짐을 놓는 단계다. 노인이 사라진 길가 텃밭에 새로 모종한 상추가 입학한 초등생처럼 나란히 줄 맞춘다. 오늘은 방향 바꿔 소읍으로 향했다. 읍내 가로질러 나라에게 내성천변을 보여줄 생각이다. 청소년회관 건너편에서 등산복 서넛이 시계 들여다보며 떠든다. 갈앉은 아침 공기 서늘하다. 푸른 마트는 잠겨 있고 버스정류장 옆 스티로폼 화분에서 실하게 자란 파가 처음 본다는 듯 빼곡히 푸른 시선으로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듬성하게 끝물 꽃 단 벚나무는 잎 키울 채비로 가지를 턴다. 저만치 고수부지 잔디밭이 보이고 졸졸 물소리가 들렸다.

내성천은 은모래의 개울이다 소백산 남쪽 문수산에서 발원하여 영주 가운데를 질러 남으로 남으로 은빛 모래 자아내며 용궁면 합수머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곱게 다듬이질한 모시 적삼 같은 개울이다. 어느 본데없는 탐욕스러운 놈이 물길을 막더니 급기야 상류에 댐 만들어 차차로 은빛 여울도 오가던 모래무지 참마자도 강기슭을 날개 쉼터로 알 품는 보금자리로 삼던 새들마저 사라진다. 국가가 폭력으로 저지른 자연에 대한 능욕이다. 언젠가 보 허물고 강은 강대로 흘러야 한다. 불과 백 년 남짓한 세월에서 우리는 숱한 좌절과 절망을 겪었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고 현재의 안온함을 좇아 망각한다면 절망과 좌절은 보기 싫은 동무처럼 다시 찾아온다.

명나라 사상가 이탁오는 오십이 되어서야 삶의 허위를 벗겨냈다고 고백한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공자의 죽은 생각을 질타한 그는 이단으로 내몰려 옥에 갇히자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 항거했다. 허균 또한 호방하고 자유로운 혁명가였다. 그가 주장한 계급질서 타파•호민론 등의 이념은 당시 지배체제로선 죽여 없애야 할 불온한 싹이었다. 러시아 혁명가 크로포트킨은 진화론적 생존경쟁의 역사를 약소국을 침탈하는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수단으로 간파하고 상호부조의 위대함을 주장했다. 어느 시대나 진보적인 사상가는 존재했다. 그들은 시대의 불의에 저항하고 열린 의식으로의 성찰을 지향했다. 불변의 진리는 죽은 진리라고 했다 늘 움직이며 유동하는, 그래서 사유와 실천의 줄기를 키워나가는 생각이 살아 있는 진리라고 말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다. 양명학이 주장하는 진리, 지행합일에서의 지知는 누구나 타고나는 도덕적 자각 능력인 양지良知를 말한다 하늘의 인연이라는 부모 자식 간에 있어서도 책에서 가르친 대로 효도하기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탐욕을 위해 자식을 버리는 부모나 부모를 죽이는 자식도 있잖은가. 생각 없는 개처럼 남을 따라 짖는 누구의 주의나 사상도 아닌 나로부터의 의식과 소통이 절실한 때다. 타인과 연대하는 소통.

한 달 전에 밭에서 냉이 찾느라 저어새처럼 땅을 휘젓고 다닌 것 같은데 어느새 냉이꽃이 수북하게 올라왔다. 물가 버드나무는 물감 풀어 논 듯 연한 초록빛으로 늘어졌다. 발목쯤이나 잠길 물에는 오리들이 연신 자맥질로 물 바닥 뒤진다. 생각보다 운동하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다. 간밤 꽃놀이로 단잠 중인가. 잔디 사이로 꽃다지 초록 치마가 봄나들이 한창이다. 개울 건너편으로 마스크 한 여자가 씩씩하게 걷고 있다 주차된 트럭 옆을 스치는 순간 펑! 하고 트럭이 기침을 한다 깜짝 놀란 여자 움찔거리는 사이 트럭은 연기 뱉으며 내뺀다. 적요한 아침 시간의 아무도 모르는 소동이다. 나라는 줄 끌고 저만치로 달아난다. 땅바닥에 코를 킁킁거리기도 흙 헤집고 뭔가 파내기도 한다. 하늘이 높다. 봄날 속으로 떠난 아이들 하늘 보고 있을까. 오늘도 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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