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하던 비가 소란해진다. 희붐할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상공에 머문 비구름은 중국과 한반도, 일본을 돌아다니며 물폭탄을 쏟아낸다. 보름 이상 퍼붓고 멈추기를 되풀이한다. 날씨 검색도 심드렁해졌다. 물 먹은 걸레를 쥐어짜 듯 구멍 뚫린 하늘에선 세염 없이 비를 내린다. 습기 없는 일상이 언제였던가 가뭇하다. 코로나 여파로 해외여행이 막히자 사람들은 국내의 산과 바다로 휴가를 떠났는데 줄창 내리는 비로 그마저도 난감한 처지다. 초복과 중복이 어영부영 지났다. 예년 같으면 열대야와 불볕더위로 달군 철판 같았을 날씨는 축축한 물기에 젖어버렸다.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줄기차다. 빗속을 뚫고 제비가 날아오른다. 새끼 먹일 무렵 어미 새의 밥벌인 얼마나 고단할까. 바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의 삶도 죽을 맛이긴 마찬가지다.
인생은 노동, 화폐, 가족의 삼 원칙만 무탈하게 지키면 된다는 게 이십 세기 삶의 태도였고 세계관이었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란 존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따위의 생각은 삼 원칙에 있어 하등이 도움이 되지 않을 뿐이다. 사유의 확장은 성가시다. 아니 복잡한 인식의 시스템은 소거되었다. 그런 것 알지 못해도 사는 데 지장 없다는 냉소적 허무는 교과서와 다름없다. 아이들 잘 키워 남들 시샘하는 대학 보내고 좋은 자리 취직하면 그만이었다. 소읍에서 공무원, 교사는 가문의 훈장 같은 빛을 발했다. 하물며 대처의 명문대나 판검사 같은 나으리는 감히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도록 하늘 높이 펄럭이는 현수막에서부터 남달랐다. 이분법의 사고는 선과 악,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등과 근친애적 이기주의와 맞물려 훌륭한 처세술이었다. 직업 사회는 보신과 복지부동이 철칙이고 사고를 수반한 창의적 행위는 부러 일 만드는 쓸데없는 짓이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전쟁이 난다 해도 철밥통의 윌급은 들어온다. 지적질만 당하지 않는다면 정년과 연금이 보장된 꿈의 직장이다. 직종을 가리지 않고 기회만 되면 시험과 줄을 타고 매달렸다. 소유와 축적, 증산은 만고 불변의 진리다. 미래학자들이 외치는 '소유의 종말'이나 자비와 공감은 다른 세계의 얘기일 뿐이다. 서럽고 지겨운 가난을 탈출한 오늘의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휴무 날 아침 비가 머춤한 틈을 타 천변으로 나갔다. 황톳물이 기세 좋게 보를 타고 흐른다. 허리까지 자란 천변의 풀은 길게 누웠다. 가장자리에 중 백로와 물오리가 자리 잡고 개천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를 노린다. 읍을 관통하는 개천을 건너는 사람들은 잠수교를 피해 빙 돌아간다. 너른 개울 폭이 붉덩물에 잠겨 아래로 힘찬 흐름을 유지한다. 상류의 쓰레기란 쓰레기는 이미 하류로 떠내려간 터였다. 물풀을 물고 버티는 고기 떼는 유속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린다. 코로나 여파로 축제는 취소되었고 온라인 축제가 대세다. 변형된 일상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비대면 거리두기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 되었다. 입국자 확진자가 늘어가는 사이 캠핑 동호회의 확진이 늘자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한다. 하필 이 시기에 단체 캠핑이라니. 일본에서는 평화헌법을 뜯어고치려는 호전적인 총리가 재 확산된 사태에 한 달째 묵묵부답이다. 아기 손바닥만 한 마스크를 쓰고 거만 떨더니 제대로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말 많던 그의 마스크는 배포가 중단되었다. 위기가 닥치면 그 사람의 능력이 드러난다. 각국의 지도자는 코로나 앞에서 적나라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다.
촌놈은 공간적 존재로서 시골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대인식에 뒤떨어진 사람, 인간과 생태에 대한 공감 능력과 함께 상황을 사색하는 자세가 닫히거나 구태를 고집하는 사람을 말한다. 요컨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학습된 습속을 맹신하는 자를 뜻함이다. 그들은 단순 명료를 좋아하고 복잡한 과제를 두려워한다. 모험보다는 현재의 안주에 몰입하며 공동체보다 근친애적 공생관계에 애착을 가진다. 남 앞에 나서 창피를 무릅쓰기보다 뒤에 숨어 비굴한 게 낫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개인의 명예나 영달을 더럽게 밝히는 축이다. 이런 인간형은 자신이 속한 지역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끼리끼리 모여 촌놈들만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의 충격을 최소화하며 이방인의 틈입을 차단하는 속악한 인간의 전형이다. 촌놈은 도시나 농촌이나 있다. 지방색, 파벌주의, 구태의연한 세계관은 나이와 계층을 따지지 않는다.
「牧民心書」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이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이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할 바는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하민(下民)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병까지 들어 진구렁 속에 줄을 이어 그득한데도, 그들을 다스리는 자는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슬프지 아니한가!”라고 개탄하였다. 대민 봉사의 자세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업무를 남에게 떠넘기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보신과 복지부동, 시스템의 불합리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행위는 '영혼 없는' 공복의 전형이다. 앎에 대해 궁구하는 자세는 없고 위험을 피해 가는 요령에만 골몰하는 처세는 기둥을 좀먹는 흰개미와 같다. 다수의 공복(公僕)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 다른 다수의 쥐새끼들이 곡간의 벽을 뚫어 양식을 훔친다. 도적질 한 양식으로 자식을 가르치고 신에게 성공을 기원하고 모두의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