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너 아니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다. 인간은 자연과 같이 스스로의 존재다.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 아버지의 존재는 그 자체로 견고할 것 같지만 삶의 본질은 변화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도 변화하면서 성장한다. 민족주의, 애국심도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독립운동가들은 복벽주의를 극복하고 공화주의와 사회주의의 통일전선에서 활로를 찾았다. 분열로 인해 통합의 시점이 늦은 것이 실수였지만. 인식은 주관화의 오류에서 벗어날 때라야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다.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야말로 개별적 삶에 한발 다가서는 모습이다.
가족이 혈연으로 비롯한 관계라는 고정관념도 변화한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아기 때를 제외하고는 인간은 개별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공감이란 제대로 된 관계와 소통의 다른 이름이다. 공감이란 한 존재의 개별성에 깊이 눈을 포개는 일, 상대방의 마음, 느낌의 차원까지 들어가 그를 만나고 내 마음을 포개는 일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내 마음, 내 느낌을 꺼내서 그와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일이다. 그렇게 서로 개별성까지 닿지 않으면서 함께 사는 부부는 서로의 역할에 충실한 기능적 관계이기 쉽다'라고 했다.
혈연이라는,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관계인 연인이기 때문에 기대와 욕망은 증폭한다. 갈등이 틈입하는 관계다. 그래서 실망과 미움이 생긴다. 타인에겐 기대와 욕구가 없기 때문에 스스럼없는 관계다. 상냥하고 친절할 수 있다. 가족 간의 기대와 욕구가 갈등을 부르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언사를 예사로 한다. 가족을 통해 무언가 이루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건 순전히 개인의 영역이다. 희생을 요구하고 희생을 자처하는 관계에서 희생하는 사람의 삶은 사라진다. 예부터 희생을 사랑과 등가로 여겼다. 가족 관계의 유지를 위해 여성의 삶이 부재했던 과거의 역사가 그러하다. 주관화의 오류가, 개인의 삶을 역할의 틀에 끼워 맞추는 바람에 한 개인의 존재는 상실되었다. '명예 살인'은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악행이다.
자식을, 부모를 남처럼 대하라. 친한 친구처럼 잘 아는 어른처럼 대하면 기대와 욕심은 사라지고 친절하고 배려하는 관계가 될 거다. 가족보다 이웃이 좋은 관계의 삶이 되는 이유다. 나의 기대와 이상을 자식에게 부모에게 전가하지 마라. 그러면 자식의, 부모의 개인적 삶을 인정하게 된다. 가족의 개념과 실체가 변화하는 사회다. 인간의 조건과 상황을 객관화하는 인식을 가져야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도덕적 관계보다 인본적 관계가 답일 수도 있다.
아들과의 관계는 아픈 관계였다.
아버지의 잘못으로 아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들은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잡은 뒤로 부모와 멀어졌다. 처음엔 여느 가족처럼 힘들었다. 부모와 자식, 혈연과 가족 관계를 고민한 끝에 얻은 결론은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기로 했다. 기대가 갈등을 부른 거였다. 지금은 멀리 사는 잘 아는 청년으로 생각한다. 아들의 삶이 변화하고 성장하며 자신의 인생이 성찰과 즐김으로 충일하길 바란다.
'세계는 자기의 반영'이란 말이 있다. 언뜻 생각하면 옳은 말일 수 있지만 무책임한 말이다. 당연히 인간은 자신의 인식과 시선으로 세계를 본다. 가치관에 따라 이상을 설계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태어나 주변의 세계에 학습되지 않는 인식이란 부재한다. 늑대 소년이 아닌 담에야 인간은 사회 속에서 영향받으며 세계를 읽는 눈을 만들어간다. 자신이 보고 인식하는 세계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의미다. 세계는 스스로 흐르는 것 같지만 수많은 각성과 성찰의 대상이기도 하다. 단순히 세계가 자신을 반영한다고 하면 사회는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대로 흘러갈 거다. 보수는 변화를 두려워한다. 현재의 안위와 유지가 최선이다. 그러나 건강한 보수는 진보보다는 더디나 과거의 가치를 존중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혁명과 개혁은 자칫 과거의 가치를 몰각할 수도 있다. 조화의 지혜가 필요하다.
시모주 아키코는 「가족이라는 병」에서
'가족 얘기를 늘어놓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 가족 외에는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다. 자기 가족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가족 이기주의다.
이런 사람들은 사건이 생기면 가장 먼저, 자신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진다. 어떤 사고가 생겨도 자기 가족에게 그 여파가 밀려오지 않으면 안심한다. 나머지는 남의 일이다'
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어야 상대 가족을 존중하는 마음도 우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가족만 좋으면 타인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근친애적 가족 이기주의, 자신이 사는 지역만 무사하면 괜찮다는 지역 이기주의, 자기 나라만 탈 없으면 무방하다는 국가 이기주의, 이런 것들이 모두 다툼과 싸움과 전쟁의 근원이 된다'라고 말한다.
가족 내에서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이기주의와 함께 가족의 관계를 불변하는 가치로 인식하는 정체성은 자유로운 상상과 인식의 탈영토를 방해한다. 전통적 가족의 가치나 탈가족과 새로운 형태의 가족 또한 소중하다. 일인 가족의 고독사가 불행할 거라는 짐작은 전통적 가족 개념의 인식이다.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국가의 출산장려는 개별적 존재의 행복한 삶과는 동떨어진 국가주의의 소산이다. 시대적 상황과 조건 하에 태어난 존재인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 그것이 고통 속에 핀 꽃이라도 '살아 있는 현재의 순간'을 즐길 권리는 자신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