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by 소인


무지 밭에 비석이 섰다.
이슬 마르기 전 무 뽑으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석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컵라면을 먹는다. 가만 보니 비석이 아니라 톤백(Ton bag)에 수북하게 담은 무였다. 한쪽엔 시래기만 따로 담은 톤백이 드문드문 섰다. 멀리서 보면 마치 비석 같다. 해풍이 부는 해안 마을 밭에 말복에 심은 다꽝무 수확이 한창이다. 무값이 떨어진 올해는 무 거두는 상인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값이 좋으면 갈라진 무까지 죄다 훑어가는데 올핸 건성드뭇하게 남은 무가 여기저기 말뚝처럼 박혔다. 수확꾼이 다녀가면 주민은 이삭을 줍는다. 무말랭이로 말려도 좋고 깍두기를 담아도 김장무만큼 들큼한 맛이다. 이삭은 나락 논만이 아니다. 운 좋으면 수확을 포기한 배추밭에서 김장을 거저 얻을 수도 있다. 밭주인은 죽을 맛이지만. 고랭지 배추나 김장철 무는 시세 변동이 이삭을 좌우한다. 고약하고 심술 난 주인이 손 못 대게 하는 김장밭은 배추 포기가 허옇게 눈을 덮어쓴 채 미라처럼 삼동을 나기도 한다.

가난하고 배곯던 시절 우거지나 시래기는 겨울 양식이었다. 김장 시장의 우거지를 주워 선짓국을 끓여 팔았고, 버린 무를 모아 김치를 담았다. 논 주인은 인심 사납게 논바닥을 깡그리 긁지 않고 더러 낱알이 붙은 북데기를 논에 남겨두기도 했다. 가난한 집 손길이 땅 기며 이삭 줍는 걸 묵인했던 거다. 겨울 참새떼가 이삭을 쪼며 허기를 채웠다. 한일병탄이 되고 척식 회사가 조선인 지주의 논을 불법과 농간으로 강탈한 뒤 소작인으로 전락한 농부의 탈곡을 감시했다. 수확의 반을 도지로 받으면서 빼돌리는 볏섬이 있나 없나 친일 마름을 동원해 집을 뒤지고 다녔다. 흉년으로 반 토막 난 수확은 지세, 물세 등으로 새 나가 쑥을 섞은 풀죽으로 보릿고개를 넘어갔다.

요즘은 나라가 결핍 가정을 보살핀다. 생활보호 대상자, 차상위 계층, 독거노인의 가구마다 김치를 배달하고 연탄을 넣어준다. 의지적으로 굶어 죽기를 각오하지 않는다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먹여주고 입혀준다. 수확철 이삭 줍기는 심심풀이로 변했고 그것도 농약을 쳐대는 통에 손이 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농사와 고기잡이는 외국인 노동자 차지가 되었다. 취업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농촌 마을마다 팀을 이루어 합숙을 한다. 고령화와 일손 부족으로 애타는 농민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읍내 마트에 가면 장 보러 나온 외국인 노동자를 자주 본다. 한여름 땡볕 아래 얼굴 가리고 땀 쏟으며 일하는 그들을 만나면 불과 얼마 전 중동으로 취업 나간 시절이 떠오른다. 멀리는 이십 세기 초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멕시코 애니깽 농장으로 팔려간 인민의 아픈 과거가 있다. 가시에 찔리고 풀잎에 베이며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며 고된 노동을 참던 농민의 고통은 현재 우리 땅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재현하고 있다.

이삭 줍기 얘기하다 장황하게 빠졌다. 평안도 출신의 포수 홍범도는 나이 사십에 독립군 대장이 되어 만주를 누볐다. 봉오동 전투로 일본군 사단을 전멸시키며 활약했던 그는 일제의 만주 침략이 확대되자 연해주로 쫓기다 스탈린의 한인 이주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되어 극장 경비원, 정미소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했다. 만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로 쫓겨다닌 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외국인 노동자들. 영토 안에서는 국가와 권력에 배제당하고 나라 밖에서는 국가도 그들을 외면했다. 그들의 평안과 휴식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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