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43)

늘어지는 휴일이다.
책은 펼쳐둔 채로 고정되었고 생각은 하릴없이 아무 데나 서성댄다. 숙취 탓이다. 일찍 깨는 버릇은 여전해서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잿빛 하늘에선 금세라도 비를 뿌릴 것 같다. 무겁게 짓누르는 구름층이 심술 난 시누이처럼 구석구석 습기를 먹인다. 한 달 내내 빗물 잔뜩 먹은 잔디는 핼쑥한 초록빛으로 비영비영한 낯이다. 바지랑대 발목에서부터 까만 물곰팡이가 피어오른다. 지붕을 점령한 호박 덩굴은 수꽃만 무성하게 매달뿐, 좀처럼 호박을 맺지 못하는 중이다. 빗물에 젖으면서도 분꽃과 나팔꽃은 밤낮으로 꽃을 열었다. 천연덕스럽기까지 보이는 무한 개화의 본능은 자연의 이치다. 무엇을 향한 목적 없이 피고 지는 거다. 끊임없이 공든 탑을 쌓고 허문 것이 인간의 역사라면 생태로서의 지구와, 그것을 벗어난 대기권 밖의 우주를 생각하면 목적의식은 점점 지향을 잃고 만다.

이틀 동안 공업사에 맡겨둔 차를 어제 오후에 찾았다. 부드러운 핸들링에 놀라면서 조심스레 차를 모셔다 주차장에 세웠다. 아침 졸음을 참아가며 일터까지 태워준 아내는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다는 내 말에 짜증을 터뜨렸다. 두 번째로 다녀가면서 한심한 늙은이 쳐다보듯 경멸의 눈초리를 던졌는데 나도 그만 밥벌이를 던져버릴까 하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기어올랐다. 차는 고장 나고 폰은 두고 다니고... 죽기까지 핸들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밥을 벌기 위해서라도 차와 폰은 필수다. 언제쯤 차와 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한다. 일 나오라는 기별과 일면식 없는 타인과의 공생애적 연대인 sns의 '좋아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무한경쟁의 사냥터에서 고립된 개인은 하늘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메시아의 음성을 듣지 않고는 하루를 버티기 어렵게 되었다. 슬퍼요, 화나요의 공감과 좋아요의 동일한 연대는 소외된 개인을 sns 공동체로 연결하는 구원의 손길이다. 그럼에도 뒷맛은 허망하다. 실체 없는 연대감에 휩싸여 아슬아슬한 일상의 희부연 장막을 헤쳐 나간다.

차를 몰고 천변으로 나갔다. 수면에서 피어 오른 물안개가 개울 양 쪽에 자욱하다. 부지런한 사람이 안갯속을 걷는다. 허리쯤 물에 잠긴 버드나무가 물안개에 갇혀 수묵화를 연출한다. 기세가 죽지 않은 물소리가 들렸다. 오수처리장 앞의 보와 어도(魚道)는 여전히 물살이 차고 넘친다. 천변에 쓸려온 나무 쓰레기 더미에서 백로들이 서성인다. 무명 저고리를 걸친 조선의 백성 같다. 물오리 세 마리가 빠른 물살을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간다. 물 위에 뜬 오리의 모습은 평온한 듯 보이지만 물속의 갈퀴는 쉴 새 없이 젖는 중이다. 몸으로 물을 저항하며 발을 휘저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인간도 그렇다. 평온한 일상인 듯 보여도 내면은 소란하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오감의 판단을 물갈퀴처럼 저어야 일상을 유지한다. 어제의 가치가 오늘은 달라질 수 있다. 밥벌이의 고단함 외에도 사람과의 관계는 장마 통의 거센 물살처럼 몸을 감고 부딪친다. 물오리처럼 저항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건 자의식에서 비롯된 자신의 세계관이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늘 허약하다. 선대의 가르침을 현실에 대입하기엔 사회는 거침없고 사납다. 걸러야 하는 정보와 지식은 차고 넘쳐서 잠들 무렵엔 파김치가 되고 만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sns를 뒤지며 공감과 위로를 구한다.

하늘이 벗겨지면서 햇살이 퍼진다.
구름층 위에서 언제나 머무른 태양의 열기가 이처럼 그리울 줄이야. 장독의 뚜껑을 열고 빨래를 넌다. 후텁한 기온에도 꾸덕꾸덕한 기운은 빠르게 말라간다. 자연은 생태라는 말로도 쓰지만 장자의 무위(無爲)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인위적이란 말은 인간의 사고와 조작이 간섭한다는 말이다. 과학 문명을 맹신하는 인간은 인공강우를 실험하며 비구름을 만드는 지경까지 왔다고 큰소리친다. 그러나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이산화탄소가 대기층에 두텁게 깔려 온실화 되는 기후온난화 현상은 점점 재앙이 된다. 발전을 지향하는 나라들은 개발과 생태 파괴를 멈출 생각이 없다. 장마와 한발, 혹한과 혹서가 무시로 나타난다. 스웨덴의 청소년 생태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세계 지도자들이 온실 가스 감축 등 각종 환경 공약을 내세우면서도 실질적 행동은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생태계가 무너지고 대멸종 위기 앞에 있는데도, 당신들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며 지구적 재앙을 경고한다. 소녀의 외침을 각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간단히 외면한다.

한낮의 태양은 눅눅한 습기를 빠르게 먹어치운다. 분꽃은 이파리를 말리며 밤의 개화를 준비하고 꽃을 찾아 날아온 벌들은 붕붕 대며 꿀샘을 더듬는다. 우울했던 새들의 목청도 환한 햇살과 함께 밝게 트였다. 연신 재잘거리며 전깃줄 사이를 날아다닌다. 집 나갔던 고양이가 마른 털을 곤두세우며 밥그릇 주위로 다가온다. 새끼를 두 번이나 옮긴 어미 고양이는 육아에 지쳤는지 그늘 아래 엎드려 존다. 들에는 농약 줄을 몸에 감은 농부가 농약을 친다. 마스크 위로 굵은 땀이 줄줄 흐른다. 지천의 물은 탁도를 줄이며 투명해진다. 본류의 수위도 한결 낮아졌다. 가장 길었던 장마 탓에 물러 터진 채소밭에 농부의 한숨이 널렸다. 다가오는 추석 물가를 염려하는 뉴스가 연일 방송을 탄다. 제방의 붕괴로 침수 피해를 당한 주민들은 수자원공사의 몰상식한 수문 관리를 규탄한다. 의암댐에서의 실종 사고를 두고 공무원은 출동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우긴다. 살아남은 목격자는 철수 명령 이전에 배가 전복되었다고 증언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진실 공방이 오간다. 책임회피는 도덕과 양심을 뛰어넘는다. 학살자들이 그랬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생명 존중에 대한 보편적 이념이란 시대를 초월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적극적 친일 행위마저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봉건 군주제나 반상의 신분차별과 국가주의마저도 독립운동에 걸림돌이었다. 당시의 돌파구 중 하나였던 사회주의나 아나키즘이 대세였던 시대적 상황을 부인할 순 없다.

세탁기를 두 번 돌리고 마른 순으로 빨래를 걷고 너는 동안 등줄기에 땀이 솟는다. 핼쑥했던 잔디가 초록빛을 뿜으며 생기를 되찾는다. 아이스크림 닮은 구름이 덩어리 지어 떠 있다. 생성과 사멸을 반복하는 자연처럼 인간 사회도 공동체의 삶을 반복한다. 생태를 인간과 등가로 보지 않고 서열을 매기는 한 파괴와 재앙은 반드시 찾아온다. 가뭄과 홍수, 산불과 범람은 상시로 맞는 재난이 되었다. 코로나와 장마를 겪으면서도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없다면 대체 인간은 무엇을 생각하고 꿈을 키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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