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감시원 8

by 소인


하루가 다르게 땅이 덮이고 있다.
마른풀과 갈색 낙엽이 깔린 숲과 밭터서리 주변이 죄다 죽은 색깔이었는데 날 더위 지면서 초록 풀로 덮이는 중이다. 꽃은 이미 피고 지기를 반복하더니 가지마다 거위 혓바닥 만한 이파리 내밀었다. 대추나무는 여적지 꿈쩍도 안 하지만 늦게 싹을 틔운다고 해서 이름이 느티나무인 느티나무조차 하루가 다르게 동시다발로 잎을 키우더니 며칠 사이에 무성한 그늘 이루었다. 길가는 온통 민들레, 제비꽃, 큰 개불알꽃, 꽃다지, 냉이꽃, 꽃마리로 그득하다. 그중에서 애기똥풀의 약진이 도드라진다. 그것들은 쑥밭 점령하고 이미 봄 들판의 점령자가 되었다. 산길 따라 양쪽 길에 도열하듯 꽃을 피운 애기똥풀은 봄의 상징이 된 듯하다.

감질나게 뿌리던 비로 실개울은 졸졸 물길 만들었는데 작은 보가 있는 웅덩이에는 버들치와 다슬기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오리와 원앙이 부지런히 오리발 놀리며 물 바닥 뒤진다. 묵은 갈대 뿌리는 먹을 게 더 이상 남아나지 않았다. 새로 난 갈대 줄기가 마른 갈대를 누르듯 덮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읍사무소 옥상에서 모였는데 실은 읍사무소 옥상이 아니라 읍사무소 이층 뒷문과 연결된 예비군 사무실의 옥상이다. 가끔 배가 십 리 밖이나 튀어나온 산업팀 계장이 담배 물고 나타나는 공간이다. 얼마 전부터 산업계를 산업팀으로 바꾸었는데 난 이런 짬뽕 같은 외국어 의존 심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 툭하면 산소 시티, 파인시티 하며 영어를 붙이는 버릇은 미국에 기대는 게 격조와 교양 품위, 한마디로 좀 있어 보인다는 사고는 천박한 사대주의에 다름 아니다. 암튼 옥상에서 내려다본 길가의 벚나무엔 며칠 새 꽃이 사라졌다. 붕붕 대며 꽃 주의에 어른대던 벌도 사라졌다. 죽은 벌 한 마리가 옥상 바닥에 있었다.

읍사무소 건물과 청소년수련관 사이로 소나무 세 그루가 껑충한 키를 하고 서 있었는데 작년 연말에 누군가가 말끔하게 전지 해놓았다. 한눈에 봐도 솜씨 좋은 조경사의 작품이다. 겨울눈이 자라 기름한 새순을 내미는 중인데 아랫부분에 송화가 맺혔다. 한 나무만 그런 게 아니고 세 나무 다 똑같다. 소나무는 암수딴그루인데 어쩌다 한 나무에 양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놈들은 모두 양성애다. 학자도 아직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는데 인간의 경우와 비슷하다.

남녀의 생물학적 성을 가르는 섹스와 사회 문화적 개념인 젠더, 그리고 성애인 섹슈얼리티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본성을 지녔다. 하지만 상식과 관습에서는 이성애를 정상적인 것으로, 동성애는 비정상으로 간주한다. 돌연변이나 소수는 다수에서 배제, 소외된다는 논리다. 성의 개념으로부터 비롯된 인류학의 헤게모니는 정작 인간의 삶을 억압하고 착취했다. 그렇다면 모든 종의 섹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무성애자는 어떻게 설명할까. 그들도 사회와 공동체의 구성원이고 하물며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도 아닌데 말이다.

산불도 올핸 조기 종영이다. 예산 부족이라니 할 말이 없다. 휴무일 일하고 주말에 전라도 땅 남원에 갈 생각이다. 작년에 아들 둘을 잃은 아주머니와 아내와 다녀오기로 했다. 봉화에 살다 내려간 남원 아주머니도 모두 아는 사이다. 스무 살 어름 밥 빌다시피 하며 여행할 때 남원을 스쳐간 적이 있으니 사십 년만이다.

대학 때 전주 판본으로 춘향전의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신분상승의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생존에 대한 기본 조건을 욕구라고 하면 사회적 인정 욕구는 욕망에 다름 아니다. 물욕 너머의 과도한 인정 욕망은 인간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이 도령이 과거에 급제하지 않았다면 춘향은 옥사했을 거고 춘향전은 안타까운 이야기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팔청춘 남녀의 사랑은 공부에 한눈팔던 이 도령의 일탈에도 불구하고 그의 총명함은 과거를 통과하고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거머쥐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 열녀에 대한 유교적 여성관은 점점 바뀌기 시작한다. 인간 평등과 신분 해방을 주장하는 실학이나 천주교, 동학 등 새로운 사상들이 퍼지면서, 유교 사상에 의해 사회와 격리되었던 여성들이 자신들도 남성과 동등한 독립된 인격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탐관오리를 징계하려는 당시 사회상으로 볼 때 민중의 의도는 다른 각도였겠지만 양념으로 들어가는 남녀의 사랑 얘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뛴다.

도시락 먹고 쉰다.
삶아놓은 논에서 후투티가 기다란 주둥이로 흙을 헤집는다. 뱃쫑뱃쫑! 종다리가 주위를 방정맞게 날아다닌다. 산불 후 삶을 생각한다. 물오른 외국어 공부는 죽기까지 놓지 않기로 한다. 자전거 여행과 맥락의 독서. 근데 뭘 먹고사나. 세상에 판판이 노는 놈이라고 죽으란 법은 없다. 날 점점 더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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