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는 묘한 도시다. 높은 건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자동차나 스마트폰, 도시의 인프라 시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딘가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준다. 문명이 갓 들어서기 시작한 개화기의 자그마한 동네 느낌. 시간이 흐르지 않을 것 같은, 영원히 꿈 속일 것 같은 몽롱한 느낌도 준다.
타이페이만의 묘한 느낌을 찾아 들어가면 그곳에 골목이 있다. 대로변 사이로 몇 걸음 들어가면 새로운 모습이 펼쳐진다. 자그마한 매대와 식당들, 조금은 낡은 건물들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있는 야자수, 붉은 조명들과 번체자 간판,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소리. 그리고 그들의 불빛. 이 모든 것이 골목에 있다. 서로의 표정 같은 것은 알 길이 없는 자동차들과는 다르게 오토바이와 자전거 위의 사람들은 행인들과 눈이 마주쳤다가 떨어지며 교감하곤 한다.
영원은 언제나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구속되지 않는다. 타이페이의 골목은 영원의 느낌을 준다. 시간과는 무관하게 그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다. 낮에는 싱그러운 모습으로 밤에는 몽롱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만 같다.
오늘도 골목 구석구석을 탐방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가게를 발견했다. 그런 공간들이 있다. 몇 시에 방문하 건, 어른이 되어 방문하건, 누구와 방문하건 똑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들. 어떤 가게는 석양이 지는 하늘의 느낌을, 어떤 가게는 자그마한 방의 느낌을, 어떤 가게는 크리스마스의 느낌을 준다. 오늘 만난 가게가 그랬다. 30도를 웃도는 타이페이의 여름에도 크리스마스를 만나게 해주는 가게.
시간이 빗겨나간, 영원할 것 같은, 영원의 느낌을 주는, 영원한 타이페이의 이런 골목이 좋다. 이런 골목과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가게들이 좋다.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어가는 변수의 세상 속, 나조차도 상수가 아닌 세상 속에서 타이페이의 자그마한 골목들은 어딘가 안도감을 준다. 변하지 않는 친구들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