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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대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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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의 숲 Sep 25. 2017

<9> 대만 타이페이 용산사

- 신을 믿는 마음

​용산사(龍山寺)

한국에서 보기 힘든 화려한 양식의 사찰이 도심 한 복판에, 꽤나 작지 않은 규모로 존재한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해 신에게 기도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21세기의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분향하고, 사찰의 "사무실"에 과서 점괘를 보고, 일을 처리하고.

여전히 신성한 마음만은 그대로, 방식만이 21세기가 되어버린듯한 매력적인 공간이 용산사다.



사실 용산사보다 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은 그 앞의 공터이다. 용산사를 가기 위해 용산사 MRT역에 내리면, 마치 한국의 종로3가역, 탑골공원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타이페이 노인 만남의 광장이랄까.


용산사 앞에 노인이 모여있는 것은 마음 어딘가를 건드린다. 삶은 우리에게 무한한 자유와 의지를 준 것 같지만 실은 "어쩔 수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 탄생 자체가 선택이 아니었기에 삶 전체가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 뭐든 첫 단추가 중요한 법이니까.


"늙음"은 그 중에서도 우리 모두에게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반드시 늙는다. 우리의 의지나 선택과 관계없이.


언젠가 홍대에서 한 노인의 뒷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의 걸음에서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어쩌면 노인 특유의 것일 수도 있는 그런 의지. 그는 걸음의 무게 따위는 개의치 않고 빠르게 흘러가버리는 젊은이들 사이로 한 발짝씩 걷고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늙음에 눈앞이 아득했다. 그게 벌써 내 앞에도 성큼 다가와 있는 것 같았다. 그 때 처음으로, 어쩔 수 없이 나 역시 늙을 것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늙음은 가장 쉽고 가장 보편적인 일이다. 더 무거운, 각자의 사연이 되고마는 일들도 있다. 추하다, 나의 선택에 관계없이 나는 아름답지 못하다.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눈이 먼다, 이유도 모른 채.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선택한 것이 아닌,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는 어쩔 수 없던 일, 어쩔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신만이 어찌할 수 있는 그런 일들.


그런 일이 발생할 때 우리는 신을 찾는다.
삶이 우리의 능력 밖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 나의 삶이라는 건 어쩌면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신을 찾는다.


어쩌면 삶의 많은 우연들은 신이 자신을 찾도록 하기위해 고안한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반대로 삶을 위해 인간이 고안해낸 장치가 신일 수도 있겠고.

용산사 앞의 노인들과 용산사 안에서 기도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신을 믿는 마음, 정확히 말하자면 신을 믿을 수 밖에 없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신과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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