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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Aug 23. 2020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을

태국 빠이


기회가 될 때마다 태국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그 매력에 빠져 지내던 시절이었다. 빠이 Pai에서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Do nothing"이 하루 일과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묘하게 매력적이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도는 오만가지 잡념이 피곤하던 참이었고, 신중하게 고른 계획인 것처럼 다이어리에 "아무것도 하지 않기"라고 써 두고,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당당히, 멍하게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다 보니 빠이가 무조건 당장 가야만 하는 운명적 장소처럼 느껴졌다.


구글맵에서 여러 번 줌인 zoom-in을 하고 들여다보아야 겨우 정체를 드러내는 조그마한 마을의 메인 스트리트에는 밤마다 야시장이 열린다고 했다. 그마저 조금 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분을 느껴보겠다고, 중심가에서 조금 더 벗어난 숙소를 골랐다. 야시장까지는 시골길을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고, 주변은 온통 초록의 자연뿐인 리조트의 방 한 칸에 짐을 푼 첫날, 나는 나를 그곳으로 불러들인 "아무것도 하지 않기"라는 근사한 계획에 대해서는 이미 잊어버렸고, 그 작은 마을의 오묘한 기운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해질 무렵, 대나무 컵 레몬차를 홀짝이며 내 방 테라스에 앉아서 스프링롤을 먹고 있었다. 낮에서 밤으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마치 거대한 페인팅 붓으로 하늘에 그라데이션을 그어내는 것처럼 분 단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 입체적인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 무슨 신성한 의식처럼 여겨져서 천천히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말없이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테라스를 나누어 쓰는 옆집에 불이 밝혀지면서 인기척이 들렸다. 곧장 테라스로 나온 사람은, 한국인이었다. 그는 이미 내가, 아니 어떤 한국인이 오늘 체크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어왔다.


그는 몇 달째 빠이에서 지내는 중이라고 했고, 그곳에 오래 머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빠이 여행 선배로서의 참견을 하지 않았다. 어디 어디를 가봐야 하는지, 어디 어디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알아서 할 일이지, 누가 추천해주는 것도, 그걸 따르는 것도 성가신 일이라는 무언의 합의는 내 여행은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인정처럼 느껴져서 편했다. 


산골 마을에 밤이 찾아오면, 까마득한 밤하늘에 점점이 솟아오르는 별과 달 이외에 달리 구경할 것도 없기에, 그의 "맥주 한 잔씩만 같이 할까요"라는 제안은 자연스러웠고, 그와 나는 테라스의 무뚝뚝한 나무 의자를 깜깜한 밤을 향해 돌려 앉았다. 그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했다.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는 사람을 그전에 만나본 적이 있었던가, 나의 첫 반응은 감탄이었다. "우와. 멋지네요." 부러움 섞인 동경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작가"라는 신비로움에 압도되어 나는 구체적인 것들은 물어보지 못했다. 어떤 글을 쓰는 작가인지, 본인 이름이 찍힌 책을 가지는 기분은 어떤지,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마구 떠오르는 궁금함을 애써 억누르며 내가 겨우 내뱉은 말은, "저도 어렸을 때 꿈이 작가였는데..."하고 말끝을 흐리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 번도 나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나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시를 쓰고 독후감을 써서 상을 받기도 했지만, 당차게 국어국문이나 문예창작, 혹은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겠다고 선언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럽고 웃긴 일이지만,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갈 때, 문과로 진학하기에는 수학 성적이 아깝다는 주변의 권유로 나는 "이과형 인간"이 되기로 결정했다. 그 선택이 아쉽기는 하지만 후회할 수는 없다. 그 이후의 삶을 통해 나는 다른 의미에서의 값진 배움을 얻었으니까. 그렇지만 가끔씩 이렇게, 소녀 시절의 내가 꿈꾸던 직업을 자신의 타이틀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꿈틀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는 내가 부러워하는 것을 어색해했다. 작가라고 하면 밥은 먹고 사느냐 걱정만 들어오다가 부럽다! 는 말을 들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나는 여행 중에는 늘 무언가를 끄적끄적 쓰는 것이 중요한 일과처럼 여겨진다고,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늘 궁금하다고, 때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마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 회의가 들 때마다, 작가가 되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때, 그가 말했다.


"동생, 그럼 지금 하는 일 때려치우고 나와서, 글 써."


그리고 정적.


"무얼 하든, 돌아갈 곳이 없어야 해. 돌아갈 곳이 있으면, 대충 도전해보다가 좀 아니다 싶으면 금방 포기하게 돼."


다시 정적.

 

그때 처음으로 나는,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비밀처럼 간직하며 산다고 해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계속해서 핑계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다는 근사한 변명,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어설픈 혼란.  


사람들이 "그건 그래, 하지만...", "Yes, but..." 하고 늘어놓는 변명이 구차하다고 생각했으면서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에도 그의 "정말 하고 싶으면 지금 하는 일 때려치우고 나와서 글 써봐"라는 말을 조언을 가장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였고, 맞아요, 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극단적이어야 하나요, 싶었다. 


일상생활이 시들해져서 변화를 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 때마다,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곤 했다.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일을 하면서도 실현 가능할 것만 같은 계획들. 짬짬이 영어 공부를 하겠다거나, 여행지에서는 수필을 쓰겠다거나, 철학서와 고전 문학을 정기적으로 읽고 북클럽에 참석하겠다거나, 내 전공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에세이로 풀어내어 보겠다거나.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어 여가를 즐기듯 책도 읽고 글도 쓰다 보면 그것이 차곡차곡 모여서 책 한 권쯤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그리고  계획들을 기억해내는 것은 일상에 지쳐서 뭔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욕구가 다시 생겨날 때였다. 그러니까, 계획표에 써두기만 하면 계획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처럼, 실천 단계가 없었던 것이다. 여가와 취미는 일과 사회생활에 우선순위를 내어주어도 어쩔  없는 거라고 합리화하면서, 다음 기회로 미루기만 . 그러면서 "어릴 때부터의 "이라는 로맨틱한 이름으로 '여행 작가가 되어 온종일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 막연히 부러워하기만 .






코로나 셧다운으로 집안에 갇혀 지내게 되고서야, 오랜 세월 동안 계획표에 적혀 있기만 했던 글쓰기를 시도해보게 되었다. 브런치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그마저도 금세 시들해져서 우선순위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브런치를 시작하자마자 어느 공모전 마감이 일주일 앞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 번쯤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기에 좋은 기회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닷새 동안 그 짧은 에세이를 쓰는 일에 매달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때려치운 건 아니지만, 꼭 참석해야 하는 미팅을 제외하고는 글을 쓰는 데에 온 시간과 마음을 들였다.


그렇게, 작가인 척, 다른 일들을 모두 접어둔 채 글을 써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실제로 풀어놓은 이야기 속에 녹아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내가 계획했던 기승전결이 실제 글에서는 밋밋하게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것, 탱글탱글하게 찰진 문장 대신 구구절절 늘어진 지루한 문장들이 분량만 늘이고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 그제야 선명하게 보였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원래 하던 일을 접고 작가로서 살 수도 있다고 믿었던 꿈이, 그제야 허무맹랑한 착각임을 깨달았다.






이제야 그때 옆방 작가의 말이, 조언을 가장한 공격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충고였음을 받아들인다. 그때 나는, "지금 하는 일 때려치우고" 부분만 확대해서 지나치게 극단적이라고 반박하기에 바빴을 뿐, "글 써" 부분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간다고 하면, "출장" 부분은 건너뛰고, "파리"에만 집중해서 한껏 부러워하는 것처럼, 선택적으로 현실을 각색하는 일이었다. 일을 때려치우건 아니건, 돌아갈 곳이 있건 없건, 실제로 글을 쓰면서 꿈을 꾸어야 했다.


이제는, "대충 도전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금세 포기해 버리는" 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매일 브런치의 다른 작가님들 글을 읽어보고, 나의 서랍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끄적이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 더 이상 "언제든 여행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말은 함부로 꺼내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작가"부분을 간과하고 "여행"에만 초점을 두고 꿈을 키웠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때의 옆방 작가가 결국 어떤 글을 썼는지, 지금도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는지, 작가가 되고 싶어 한 옆방 여자를 기억이나 할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날의 테라스에서 본인이 뭉툭하게 던진 말을 내가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떠올리며 스스로를 반성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알면, 그는 어떤 기분이 들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던,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좋았던, 그런 마을 빠이에서 머무르는 동안 단 한 글자의 일기도 쓰지 않았다는 것은 그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야 깨달았더랬다. 노트의 텅 빈 페이지를 펼쳐볼 때마다, 그 작가의 나지막하고 느릿한 말이 떠오른다. 다시 돌아갈 곳, 비빌 언덕이 없어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게 되더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마을에서 얻어온 교훈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아이러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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