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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Nov 06. 2022

한국 사람 이세요?

대서양의 한가운데

코로나가 한국에서 막 퍼지기 시작했을 때 미국에서는 아직 단 한 건의 감염 사례도 없었다. 그저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 이야기라서 바이러스가 미국까지 건너 오지는 않을 거라는 일종의 낙관 같은 것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인들이 "한국의 가족들은 괜찮으시니?"하고 마음을 써주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그 이면에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남의 일"을 말하는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나 역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할지언정 미국에 살고 있는 나는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한 달쯤 지난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와이로 향하려던 그랜드 프린세스 크루즈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확인되고, 그래서 하와이로 떠나지도, 항구에 정박하지도 못한 채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며 자체 격리를 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찔하게도, 우리가 그 뉴스를 접한 것은 열흘 동안 캐리비안 동남부 섬들을 돌아본 뒤 플로리다로 돌아오던 크루즈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크루즈 배 위에서도 WiFi를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사진 전송이나 비디오를 볼 수는 없을 아주 느리고 기본적인 연결 상태였기에 자연스레 휴가 내내 인터넷을 멀리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눈부신 남국의 태양과 투명한 캐리비안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고 즐겼던 열흘 사이에, 미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휴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자 뉴스에서는 온통 서해안 프린세스 크루즈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고, 곧 주지사는 자택 대기명령을 내렸다. 우리가 하선하던 날 플로리다로 돌아온 크루즈는 그대로 영업을 중지해야 했기에, 하루 전 날 항구에 도착해 다음 여정 탑승을 기다리던 수많은 여행객들은 크루즈에 발을 들여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코로나로 모든 것이 중지되기 직전의 마지막 크루즈 여행을 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하루만 늦었더라도 어쩌면 우리도 플로리다 앞바다를 유령처럼 떠도는 크루즈에 갇히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나는 유일한 한국인 승객으로 한국 뉴스에 나오는 걸까, 전 국민으로부터 이 시국에 무슨 정신으로 크루즈 여행을 간 거냐고 비난을 받게 되는 걸까, 온갖 아찔한 생각이 한데 모여서 복잡한 심정을 가까스로 달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온 기분이라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이 백신 개발 성공이라는 유일한 희망에 매달려 일 년이 넘도록 셧다운과 거리두기 연장으로 이어지면서, 모두가 크루즈 산업은 이제 끝난 거라고 예언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크루즈 회사들이 줄줄이 파산 선고를 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크루즈를 바이러스의 온상이라고 믿었고,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배 위에서 생활하며 어떻게든 하선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던 크루들의 가슴 아픈 소식들을 뉴스로 접하면서, 어쩌면 팬데믹이 완전히 끝나더라도 영영 크루즈 산업은 재개에 성공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게도 백신이 개발되어 나오고 내 차례가 되어 두 번의 접종을 받고 나니,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다시 궤도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크루즈 선사들의 파격적인 할인 광고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팬데믹이 시작되던 날에 하선하던 아찔함을 망각한 채, 다시 캐리비안으로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미국 질병 관리 본부가 까다롭게 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크루즈를 타도 괜찮으려나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걱정을 충분히 인지했을 크루즈 사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꼼꼼하고 철저하게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것 같았다. 엄격하고 확실하고 세심하면서도 능숙하게 모든 프로토콜을 관리하는 느낌에 일단 안심이 되었고, 무엇보다 숨김없이 투명하게 소통하는 캡틴의 안내방송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던 것 같다. 그리고, 바깥세상에서는 백신 옹호자와 음모론자 사이의 팽팽한 대립이 피곤하게 지속되고 있었지만, 백신 접종 완료가 탑승 조건이었던 덕분에 일단 승선을 하고 나면 주변 사람들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좋았다. 더구나, 3천 명이 넘는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크루즈선에 고작 7백 명이 탑승한 덕에 굳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신경 쓰지 않더라도 모두가 모두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중에는 사람들을 마주치고 싶어서 찾아다니기도 했을 만큼 한적했고, 그래서 종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팬데믹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캐리비안이라 불리는 바다에는 7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고 섬마다 색다른 매력이 있기에 취향에 맞는 한 곳을 골라 긴 휴가를 보낼 수도 있지만, 크루즈를 타고 여러 섬들을 둘러보는 방식 또한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체크인 후 선실에 짐을 풀고 열흘 동안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꽤 큰 장점인데, 매일 아침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도, 숙소를 옮기지 않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한 숙소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익숙해지는 동네 가게들과 점원들, 주민들과 골목길들 같은 일상적인 풍경들에 애정이 생겨나게 되는 것처럼, 크루즈 배 위에서도 커피숍과 식당들의 직원들과 매일 인사를 나누고, 자주 마주치는 다른 승객들과 담소를 나누게 된다.


딱 적절한 만큼의 친절과 친근함으로 여행객들을 대하는 크루들 덕분에 여행과 휴식이 한층 더 즐겁고 편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재미있는 것은 커피숍에서, 레스토랑에서, 바에서, 선덱에서, 혹은 카지노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크루들의 이름표에는 그들의 출신 국가명이 함께 표시되어 있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한 나라의 이름들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케냐 커피를 좋아하기에 케냐 사람을 만났을 때는 무작정 반가워서 인사를 나누었고, 풀바 pool bar에서 자메이칸 바텐더에게 자메이칸 사투리 인사법을 배우며 같이 레게 음악을 따라 불렀고, 태국 싱하 맥주를 주문했는데 태국인 직원이 가져다줘서 깜짝 놀라 서로 컵쿤카~ 인사도 했다.


팬데믹이 지속되는 동안 크루즈 직원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언제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 불안을 감내해야 했다. 마침내 백신 접종을 완료한 고객을 대상으로 다시 크루즈 여행이 가능해졌기에 일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직원들은 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숨김없이, 다시 일터로 돌아와서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했고, 이게 다 크루즈를 다시 찾아 준 손님들 덕분이라고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음료를 서빙하는 걸음걸이에서 스웩이 느껴졌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걷기도 했고, 요청한 것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my pleasure! 하고 얼굴 가득한 미소를 보고 있으니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눈부신 캐리비안의 햇살이 그들의 행복한 미소와 에너지 넘치는 몸짓을 더욱 환하게 빛내주고 있었다.






염려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크루즈에서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다고 느껴질 만큼 여행은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흘렀다. 한가로운 선덱의 수영장과 자쿠지를 전세 낸 듯 즐기던 어느 오후에 수영장 건너편 조용한 구역에 은은한 향기와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스파를 찾아갔다. 이전 크루즈에서 필리핀 마사지사가 여러 종류의 대나무 스틱을 이용해 부위에 맞게 뭉친 근육을 너무나도 시원하게 풀어주었던 것이 생각나서 예약 가능한 시간을 알아보려던 생각이었다.


스파 안내 데스크에 다가가자 흰색 가운을 입은 동양인 남자분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서양인들 사이에 요즘 인기가 많다는 수지침을 시술해주시는 분인가 보다, 생각하며 마사지 시간을 알아보러 왔다고 말했다. 마사지 안내 종이를 찾으시는 사이 무심코 그의 이름표를 보았는데, South Korea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이었다, 한국인 크루를 만난 것은.


하지만, 부끄럽게도, 곧바로 아는 척을 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외국에 살면서, 또 외국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말을 거는 것을 대놓고 불편해하는 한국인들을 숱하게 많이 봐왔기에, 혹시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먼저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대서양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크루즈 배 위에서 처음으로 한국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워서, 망설임 끝에 인사를 건네기로 했다. 국적은 한국이라고 할지라도 외국에서 쭉 살아오신 분일지도 모르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름표를 슬쩍 가리키며, "Do you speak Korean?" 하고 물었다.


그 순간, 놀람과 반가움이 한데 엉킨 그의 두 눈동자가 커졌고 점점 얼굴이 환해지며 미소가 떠올랐다. "한...한국분이세요?" 하고, 그분은 액면 그대로 반가움을 드러냈다. 옆에 있던 스파 동료들에게 정말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났다고 자랑하며 인사도 시켜주시고, 다음 날 오전의 할인 시간대에 마사지 예약도 진행해주셨다. 한국말로 반갑게 대화하는 그 분과 나의 모습을 다른 직원분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무리 친구들이 있고 가족들이 있어도, 외국에서 살면서 영어로만 소통을 하다 보면 한국말로 아무 말이나 막 떠들고 싶은 그럴 때가 있다. 아니, 그런 기분을 스스로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대체로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괜히 전화를 걸고 싶어 지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깨닫게 된다. 아, 내가 한국말로 찰지게 수다 떠는 게 그리웠구나, 하고.


그래서 크루즈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직원분께서 "한국말로 말하니까 너무 좋네요!"라고 하셨을 때, 그게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알아서, "한가한 시간에 같이 수다 좀 떨어요."라는 제안에 "그래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낯가림이 심하고 말주변이 없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래요!"하고 동의한 스스로가 놀라워서 스파를 나오는 길,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이후 며칠 동안 캐리비안 남부의 작은 섬들을 차례로 들러 스노클링과 해변 수영을 즐겼는데, 문득문득 그 약속이 떠올랐다. 그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만나서 수다를 떤다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한국사람이기에 소통할 수 있는 그것이 그리운 이들에게는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한 번 계약을 하고 직원으로 크루즈에 승선하게 되면 반년, 일 년, 혹은 그 이상씩 인터넷이 없는 바다 위에서의 삶을 살아가기에, 다른 한국인 직원이 없다면 온갖 국적의 동료들과 오로지 영어로만 대화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꼭,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하루 종일 음식이 준비되어 있어서 어느 때고 식사와 간식을 챙겨 먹을 수 있는 뷔페식당의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온갖 종류의 음식이 구역별로 다양했지만, 아마도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명료함 같은 것이 그분의 접시에 깃들어 있었다.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았던 나는 맥주 한 병과 간단한 안주 거리를 앞에 놓고서, 어색할 것 같았던 이 만남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서 우습다고 말했다. 크루즈 여행을 이야기하고, 크루즈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백사장이 크고 아름다웠던 아루바의 해변을 이야기하고, 팬데믹 기간 동안의 크루즈 산업 침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다른 크루즈 회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서로의 직업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외국에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살아가기에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느라 한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어색하고 어설프게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계속 연락하고 지내요,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쪽에서도 내 쪽에서도. "가끔 이렇게 한국말로 수다 떠는 게 필요해요, 그쵸? 정말 반가웠고 고마워요." 하고 그 분과 나는 서로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것으로 그 만남을 매듭지었다. 서로의 삶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응원의 말과, 언제 어디선가 또 다른 크루즈에서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하자는 말을 남기고 각자의 세계로 돌아갔다.






사실상 팬데믹은 끝났다며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지도 일 년이 되어 간다. 더 이상 바이러스의 치명적인 영향이 없다고 하더라도, 팬데믹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기에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달라져버렸다. 팬데믹이 끝났어도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계속하려 하고, 레스토랑과 같은 서비스 직종은 여전히 일손이 딸린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그간 밀린 여행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인지 미국 내에서도 여행 수요가 계속 높아지고 있고, 이는 항공과 호텔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그때 우리는 할인에 할인을 받고도 선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크레딧까지 두둑이 챙겨서 탑승했는데도 승객은 정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모든 시설 사용이 여유로웠고, 직원들로부터 특별한 전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탑승 정원 제한도 없어져서 코로나 이전처럼 선베드가 부족할 만큼 북적이겠지만 어쩐지 여행 상품 가격은 더욱 비싸졌다. 지나고 보니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의 크루즈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왔던 거구나 싶었던 것처럼, 지나고 보니 우리는 또 한 번, 팬데믹이 끝나고 여행 상품 가격 거품이 생겨나기 직전의 크루즈 여행을 하고 왔던 것이다.


요즘도 가끔씩 캐리비안으로 가는 크루즈 상품을 살펴본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세인트 루시아 섬을 포함한 일정을 고르고, 선실을 고르고, 날짜를 골라 가격을 확인하고 실망한다. 아직은 조금 더 기다려야 거품이 내려갈까, 블랙 프라이데이에 깜짝 선물처럼 할인 상품이 나오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본다.


그리고, 백신을 맞고서 일터로 돌아온 것이 덩실덩실 춤을 출 정도로 기쁘다고 했던 크루들을 떠올린다. 이젠 정원을 꽉 채운 배 위에서 너무 바쁘고 지쳐버리진 않았을까, 그래도 여전히 스웩 넘치는 몸짓으로 칵테일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보면 쉼 없이 수다를 떨었던 그 한국 분도 떠오른다.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그 환한 미소는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나는,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만난 한국 사람.


지나고 보니, 그 반가운 만남 덕분에 나는 "한국분이세요?"하고 먼저 말을 거는 것에 조금쯤, 망설임이 사라졌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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