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다시 식당과 술집이 포장 배달로만 영업을 할 수 있는 셧다운이 시작되고, 오늘은 그의 생일이다. 며칠 전 주지사의 자택 대기명령 선포 방송을 보다가 그에게 슬쩍 물어봤더랬다.
화요일이 당신 생일인 거 알지? 그 날, 뭐 먹고 싶어? 당분간 외식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일 것 같은데...
하고 말끝을 흐리면서 내심, "그래, 동네 식당에 나가서 생맥주에 피자 먹고 오자"라는 대답을 기다렸다. 지난 내 생일에 그는, 치즈 사이로 육즙 주르륵 흐르는 버거를 요청한 나를 위해 엄청나게 큰 쥬시 루시 Juicy Lucy 버거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익명 셰프 chef incognito라고 부르는 그와는 다른 그저 평범한 사람인지라, 생일날 뭐 먹고 싶어? 내가 만들어 줄게! 하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걸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냥, 당신이 만들어 주는 거, 뭐든 맛있게 먹을게.
순간 움찔, 계획이 빗나갔다! 싶어 당황한 나에게 그가 덧붙였다.
이번 기회에, 한국 음식 말고 새로운 거 한 번 도전해보는 거 어때? surprise me!
음. 글쎄. 영 자신 없는데.
이런 대화를 나눈 그 날은 하필이면 그가 벼르고 벼르던 멕시칸 몰레 Mole 소스를 만드는 날이었다. 서른 개가 넘는 재료를 식탁 위에 모두 늘어놓고, 멕시코 시골 할머니의 몰레 만들기 영상을 복습해 가면서 오후 내내 주방에서 시간을 보낸 그의 완성작 몰레는 정말이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기한 맛이었다. 초콜릿 퐁듀처럼 걸쭉한 소스를 닭고기와 흰쌀밥에 얹어 먹는데, 한 숟가락에 달고 짜고 맵고 시고 온갖 맛이 뒤엉켜 아주 아주 깊은 풍미가 느껴졌다. "이게 무슨 맛이지?"로 시작해서 "더 먹고 싶다"로 이어지고, 다음 날이 되면 더 생각나는 그런 맛.
그날 밤 나는, 주방에서 하루 온종일을 보내고도 피곤한 기색도 없이 저녁 상에 푸짐하게 몰레 한 접시를 차려내고 행복해 보였던 그의 미소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후 내내 무쇠솥의 곁을 지키던 그의 정성에 비하면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내가 차린 점심 상은 씨푸드 트럭에서 사다 놓았던 냉동 게살 수프를 데우고 크루통 몇 조각을 만들어 올린 것이 전부였다는 것이 새삼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 나도 그를 위한 요리를 해 보자.
메뉴는 생각보다 쉽게 정해졌다. 새로운 도전, 이라는 말이 최근에 다시 봤던 영화 <줄리 앤 줄리아>를 떠올리게 했고, 곧바로 비프 부르기뇽! 이거다 싶었다. 프렌치 비프 부르기뇽을 찾아보면 유튜브도 구글도 네이버도 수많은 레시피를 알려주지만, 나는 70년대의 줄리아 차일드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내 방에서 몰래 줄리아의 옛날 옛적 티비 방송과 레시피를 찾아가며 공부했다. 누군가 줄리아가 요리하는 티비 화면을 카메라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린 것이 있었다. 차마 들여다보기 힘든 화질이었지만 그래도 꼼꼼히 요리 순서를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리고 그의 생일인 오늘 오후, 주방에 들어가 베이컨을 삶는 것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긴장되지 않았다. 도마 옆에 놓아둔 요리 순서와 재료가 적힌 이면지 한 장이 든든했다.
와인을 부어 살짝 끓어 오른 무쇠솥을 오븐에 넣기까지 한 시간, 오븐에 넣고 세 시간 (그 사이에 양파와 버섯을 따로따로 볶아내고, 곁들일 매쉬 포테이토를 준비했다) 오븐에서 꺼낸 뒤 삼십 분. 그렇게 약 다섯 시간 만에 그의 생일 저녁 상이 차려졌다. 그 다섯 시간 동안 주방의 모든 일은 나의 책임과 지휘 아래에 있었다.
궁금함과 기대로 한껏 들뜬 표정의 그가 식탁에 앉았다. 부드러운 감자 위에 소고기 한 점을 얹고 소스를 듬뿍 올려 한 입을 맛 본 그는 그대로 눈을 감고 으음~~~ 이라고 5초간 음미했다. 세상 행복한 표정. 빈 말은 영락없이 티가 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어라. 저 표정은 진짜인데? 생각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은 뒤 그가 말했다, "이거, 내 평생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어."
몇 시간을 주방에서 부스럭대며 오리지널 레시피를 구현해 보겠다고 애썼던 내 모습이 그의 마음에 감동으로 전해졌던 걸까. 그 순간 느껴졌다. 누군가를 위해서 요리를 하는 것이 주는 기쁨이란 게 이런 기분이구나. 생각지 못했던 그의 칭찬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나는, 뒷정리까지 내가 다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9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때로는 한 사람이, 때로는 함께, 매일의 끼니를 챙기며 무기력과 우울함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속상하거나 지치거나 답답하거나 한국이 그리울 때 눈물 나게 매운 떡볶이 같은 것을 만들며 자체 힐링 세션을 가졌을 뿐, 속상하거나 지치거나 답답한 그의 마음을 풀어 줄 요리를 해주지는 않았다. 그가 나보다 요리를 더 좋아하고 즐기고 잘한다는 것을 핑계 삼아서. 그리고 그렇게 그가 만들어주는 음식 뒤에 얼마만큼의 노동과 정성이 뒷따르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그와 나는 크리스마스나 생일, 기념일에 선물과 카드를 꼭 챙긴다. 우리끼리의 규칙은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해서 미리 힌트나 선택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받은 선물이 훨씬 감동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딱 어울릴 필요한 선물을 생각해내느라 매번 열심히 고민을 하는데, 정작 그는 선물보다 내가 직접 쓴 카드를 품에 끌어안고 더 고마워하곤 했었다. (나는 카드도 좋지만 선물보다 더 좋다는 말은 못 하겠다.)
그런 그 사람에게 정성 들여 차린 밥상이 얼마나 감동스러운 생일 선물이 될 수 있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최고의 생일 선물이야. 라는 말이 내 마음에도 오래오래 따뜻하게 기억될 것 같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하루 종일 집에서 보내는 날들이지만, 반쯤 빈 말이라도, 오늘이 최고의 생일날! Best Birthday Ever!이라고 외치는 그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니 주방에서 보낸 다섯 시간의 노력이 새삼 뿌듯해진다. 그의 생일에 나 역시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 가끔은 나도, 그를 위한 요리를 해야겠다, 다짐한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그가 태어난 연도에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을 보기로 했다. 내 생일날 저녁에 내가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영화를 봤던 것처럼. 또 다른 선물이었던 폭신하고 따뜻한 하우스 양말을 신고서 하루 종일 행복해하는 그와 나란히 앉아서.
+ 그리고 나의 요리 결심을 부추겼던, 극단적인 비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