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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Nov 14. 2020

안녕하세요! 와 Hi! 의 사이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러 나간 일요일 오후의 데이트에서 돌아와 그와 나는 언성을 높여 싸웠다. 그리고 쾅. 문을 닫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나흘 동안 그와 말을 하지 않았다. "당신은 내가 낯선 한국 사람들에게 말 거는 거 싫어하잖아!"라고 역정을 내던 그의 표정과 목소리가 나흘 내내 마음속에서 요동치며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다녔다.


세상 어느 곳을 가든, 한국인을 마주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유명한 관광지가 많은 대도시나 대학가가 아닌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한국사람과 한국말을 마주하게 되면 자동반사적으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매일 영어만 듣고 말하다가, 공원의 산책로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한국인 가족의 한국말은 기가 막히게 내 귀에 날아와 착 감긴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아아.. 한국말이다.." 중얼거릴 만큼, 그냥 반갑다.


그런 반가움만으로 그네들을 붙들고 반가워요, 어디 사세요, 등등 한국말로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대 쪽은 한국 사람을 마주치는 일에 그다지 신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소심한 나는 반가운 마음만 담아서 미소를 건네거나, 목례를 하고 지나친다.


그는 다르다.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넨다. 상황에 따라 그 이상의 대화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그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말이자, 완벽한 네이티브 발음인 "안녕하세요"를 건넴으로써, 그는 "한국 사람을 만나서 반가워요. 저도 한국에서 살아봐서 한국말로 인사할 줄 알아요"하는 마음을 전했다고 믿는다. 그도 나만큼이나 한국과 한국인을 그리워하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자연스럽게 미쿡 스타일로 낯선 사람들에게도 미소와 인사를 건네는 것 같지만, 한국인들에게 인사를 할 때마다 사실은 그도 많이 긴장한다(는 것을 나도 최근에야 알았다). 그가 굳이 "안녕하세요"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것은 그것이 한국 사람과 언어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분석에 따르면, 그가 "안녕하세요" 할 때마다 상대편은 그냥 미소만 짓거나, "Hi~"라고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던 중에 마주친 한국인 아저씨도 그랬다, hello~.


한인 마트나 한국 식당에서 계산을 마치고 그가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상대방은 "Thank you!"라고 답하고, 그가 "안녕히 계세요"라고 하면, 상대방은 "Bye~"라고 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그저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존중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한국 사람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한국 사람들은 그에게 영어로 인사를 건네는 거라고.


그러나 한국 사람에게 한국말을 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상대편이 대답한 Hi~ 에 대하여 시무룩해짐과 동시에 "나의 한국말 발음이 틀렸나? 그래서 한국말로 대답하기 싫으신 건가?" 혹은 "내가 한국말로 인사하는 것이 기분 나쁜가?" 혹은 "여기는 미국이니까 한국인인 걸 알아도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이 존중하는 건가?" 하고 온갖 의문문이 난무한다. 발음 연습도 다시 한다. 어쩌다 가게 직원분이 "네~ 안녕히 가세요~"라고 대답해주면 가게 문을 나서면서 "휴우~"하고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한국말이 통했다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곤 한다.


그가 분석한 또 다른 관점은, 그가 혼자 있을 때 한국인을 마주치는 것과 우리가 함께 있을 때 한국인을 마주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그와 내가 함께 있을 때는, 영어로든 한국말로든 상대편 사람들은 말을 아낀다.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영어가 유창한 분들도, 그의 옆에 내가 있는 것을 보면 영어로도 한국말로도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는 상대편의 그런 모습들만 보아왔기에, 한국사람들은 대체로 우리가 말을 거는 것을 불편해한다고 생각했다. 나만 반가워하는 것 같아서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낯선 한국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말을 붙이려고 할 때마다 나는 점점 눈치를 보게 되었다.


지난 일요일도 그랬다. 동네 브루어리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오후 햇살을 즐기던 중, 이곳에 이사를 온 이래 처음으로 한국 사람들을 발견했다. 너무 신기했고 반가웠지만, 어쩐지 상대편의 표정은 무관심해 보여서 나는 또 소심해졌다. 그래서 그가 "저기.. 한국사람들이야? 인사하고 싶어"라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하지 말라고 말렸던 것이다.


내가 짐작한 대로, 그가 건넨 "안녕하세요" 상대편은 ", 하이.." 하고 어색한 표정을 남기고 가던 길을 갔고, 그는 머쓱해졌다. 그는 내가 인사를 하지 못하게 말리는 것이 서운했고, 우리 마음만큼 반가워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이 서운했고,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수다   없는 것에 서운해했다. 그리고는,   내가 다른 이유로 그에게 삐졌을 , 그는 자신의 서운함을 괜히  탓으로 가져다 붙였다. " 여자, 자기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내가 한국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서 화났구먼" 하고.




나흘 만에 마주 앉아, 내가 그에게 삐졌던 진짜 이유를 설명했고, 그는 자신의 오해를 미안해했다. 그리고 그가 외쳤던 "당신 you, 한국 사람들 마주치는 거 싫어하잖아!"에 대하여 그것이 사실은 나 한 사람을 향한 일침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그런 성향에 대한 서운함이 "너네 한국인들"로 뱉어진 말임을 인정했다.


굳이 말을 걸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더라도, 미국의 시골 생활 중에 종종 한국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면 나는 여전히 반가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리고 옆에서 그는 참지 못하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넬 것이다. 부디, 그것은 한국이 그리운 어느 미국인의 순수한 반가움일 뿐, 여행지에서 볼 수 있는 길거리 장사치들이 "니하오~ 곤니치와~ 안녕하세요~" 하고 막 던지는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낯선 사람들에게도 미소와 인사를 곧잘 건네는 것이 미국 문화라는데, 미국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끼리도 편하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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