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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소이 Jul 20. 2023

서울, 어느 에스프레소바의 창문

- Through someone's window

2023.07 


에스프레소의 맛

 최근 집 근처에 에스프레소바가 새로 열었다는 얘기를 듣자 애정하는 카페가 하나 더 늘면 좋지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바깥에 놓여 있는 테이블이 소박하고 조용했지만 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시원한 실내로 들어갔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서 자리를 겨우 찾았다. 

 소란스러우면서도 정겹고 활기 넘치는 에너지가 카페 안을 가득 메웠다. 창문이 마주 보이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창밖 풍경을 보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과 마주쳤다. 예전의 내가 머뭇거리며 지나쳤던 유럽의 그곳들이 생각났다.


 유럽으로 처음 여행을 갔을 땐 지금처럼 뜨거운 여름이었다. 유럽은 건조해서 한국만큼 덥게 느껴지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햇볕은 유난히 더 뜨거운 기분이었다. 첫 유럽 여행의 설렘으로 지칠 줄 모르고 이곳저곳 내딛던 다리가 저리면서 발이 아파왔지만 쉬는 시간이 아까웠다.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으니까.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면 조금 늦은 식사를 하면서 에너지를 다시 축적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는 대신 유럽에서 먹는 커피, 와인, 미슐랭 요리를 그땐 맛보지 못했다. 그때 난 어렸고 돈이 부족했고 시간은 많은 학생이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다시 유럽으로 여행을 갔다. 첫 여행보다는 여유롭게 시간을 활용하고 이동하는 장소를 줄이고 두 다리를 쉬게 할 시간의 간격을 넓혔다. 그리고 처음으로 유럽의 카페에 갔다. 유럽에는 아메리카노가 없다는 말을 이미 들었고 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잘 마시기에 한여름의 뜨거운 커피가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때에도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않았다. 두 모금이면 모두 마셔버릴 것 같은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다시 일어나야 할 것 같아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에스프레소바가 여기저기 생기더니 에스프레소를 여러 잔 마시고 탑처럼 쌓아서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좁고 긴 바에 기대어 서서 마시거나 야트막한 의자에 앉아서 잠깐 마시고 가는 게 오히려 힙해 보인다는 분위기도 생겼던 것 같다. 

 전보다 마음이 여유로워져서인지 에스프레소바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처음 맛본 에스프레소는 강렬했다. 두 모금보다 조금 더 나눠서 마셨던 첫 에스프레소. 만약 첫 유럽 여행 때 에스프레소를 마셨다면 지금쯤 이 정도의 자극에 익숙해서 두 모금 안에 마실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유럽 여행, 두 번째 유럽 여행, 지금의 난 여전히 에스프레소를 잘 마시지 못한다. 돈이 부족했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거나 경험이 부족했거나. 더 많은 이유를 붙이면서 계속 마시지 않거나 이걸로 충분하다며 에스프레소 경험담을 마무리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난 호기심을 자극하고 설레는 이 미지의 영역을 조금 더 알고 싶었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일을 품고 있다면 결국 언젠가 밖으로 드러나길 마련이듯, 서툴더라도 계속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그 배움으로 다시 시도한다. 점점 더 단단해져가는 마음으로, 진한 여운을 오래토록 느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경쾌하게 들어 올린다. 


 그래서 느리지만 꾸준히 에스프레소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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