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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소이 Sep 03. 2023

외면하는 마음에 대하여

- 고요하면서도 착실히 반짝이는 생활일기

 햇빛이 유난히 강렬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공원의 보도블록에 햇빛이 반사되어 평소에 보던 분홍색을 잃고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답답하고 뜨거운 공기를 제쳐 가며 공원을 가로질러 가다가, 그 하얀 바닥의 먼발치에 박혀 있는 검은 점 2개가 눈에 띄었다. 미간을 살짝 모아 집중해서 보니 그 검은 점들은 비둘기들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까워지고 나서야 죽은 비둘기와 그 옆에 서 있는 살아있는 비둘기라는 것을 알았다.


 죽은 비둘기는 목과 다리가 반쯤 꺾여 누워있었다. 공원을 지나가는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에 치인 것 같았다. 죽은 비둘기 옆에 오뚝하게 서 있는 비둘기는 죽은 비둘기 주변을 낮게 날거나 걸으면서 맴돌고 있었다. 마치 죽은 비둘기의 몸이 또다시 짓밟히지 않도록 지키려는 것처럼.  


 나는 그들의 옆을 지나가야 했다. 차마 직접 볼 수가 없었고 무서웠다. 시선을 반대로 돌린 채 달음박질로 재빠르게 그들의 옆을 지나치고 나자, 난 그 비둘기들을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목이 꺾인 비둘기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과 마주했을 때 잠시 몸이 얼어붙었던 것 같다. 깊고 깊은 까만 눈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며 도망쳤고, 그 고통에 잠깐이라도 호기심을 느꼈던 나를 고요하게 질책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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