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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소이 Sep 05. 2023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

- 사랑의 초상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말 끝에 물음표가 많아진다. 사랑하는 그에 대해서든 나에 대해서든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든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서든. 머릿속은 온갖 물음표로 가득 차고 눈은 말갛게 닦여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에 웃기도 울기도 한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바로 하는 게 나은지, 머리는 아침과 저녁 중 언제 감는 게 좋은지 묻는 사소한 생활 습관에서, 쉴 때 어떤 음악을 듣는지, 요즘 어떤 작가에 푹 빠져있는지, 끌리는 음식은 무엇인지 취향에 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와 생각을 나누고 싶은 질문과 대답이 겹겹이 쌓여간다.


 내가 긍정하는 것을 그도 긍정하면 마음이 통했다며 배시시 웃고, 내가 부정하는 것을 그가 긍정하거나 무관심해하면 묘하게 슬프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촘촘한 질문을 건네면,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내가 원했던 답을 말한다. 난 그의 대답을 '배려'라는 말로 예쁘게 포장한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우리 사랑의 지속성에 대한 것이다. 질문과 대답을 정교히 맞춰가며 서로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한다. 


 가끔 그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면서도 혼자 있는 기분이 들 때, "나 사랑해?" 뜬금없고 상투적인 질문을 던지고 "당연하지."라는 단조롭고 상투적인 대답을 받아서 그의 사랑을 확인했다고 스스로를 속인다.


 그렇게 스스로를 반복적으로 속이면서 서서히 깨닫는다. 내가 이 사람과의 사랑을 재차 묻고 답하면서 확인하는 건 그와의 사랑이 아니라 이별의 시점이라는 걸. 그에게 사랑을 확인하는 질문의 빈도수가 높아질수록 그의 대답은 점점 간결하고 삭막해진다는 걸.


 그리고 나 자신에게 되묻는다. 난 그를 사랑하는가. 대답을 망설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그에 대한 사랑은 빛이 바래고 질문은 거기서 멈춘다. 그렇게 사랑했던 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마음을 단련해서 새로운 사랑을 맞이한다. 


 거의 남지 않았던 물음표들이 불어나서 머릿속을 또다시 가득 채운다. 이번에는 그의 생각이 나와 다르더라도 서운해하지 말아야지, 물음표를 꼬리에 붙인 문장들을 그에게 흘려보내고 그의 대답을 기다린다. 내 눈을 바라보던 그가 이미 정해진 답을 잘 골라서 나에게 돌려준다. 난 활짝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전히 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그가 해주기를 내심 기대한다. 사랑은 나를 어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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