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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소이 Sep 17. 2023

기다리는 데 익숙해진다면

- 사랑의 초상

 사랑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 다음의 기다림, 내 앞에 수많은 기다림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다. 내가 기다리는 건 그와 함께하는 순간이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음성과 글로 안부를 묻고, 질문을 던지고 듣고 싶은 말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서로를 생각하며 공상의 세계에 머무는, 그 모든 순간을 기다린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닳아서 소멸될 때까지, 내 앞에 펼쳐진 기다림들을 씩씩하고 사뿐하게 건너가야 한다. 다음 기다림으로 건너가는 게 늘 쉬운 건 아니다. 기다림의 돌 위에서 머무는 동안 나를 스쳐가는 불안함과 걱정의 물결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두 발에 힘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기다림이 언제나 온몸에 힘을 주고 불안함의 고통 속에서 견뎌야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설렘에 취하고 들뜬 내가 서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전광판 화면에 깜빡이는 그가 탄 열차를 눈으로 좇으며 나를 향해 달려오는 그를 기다리고,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시간. 그와 함께 할 순간을 기다리며 신발의 앞코를 톡톡 맞부딪히고 위아래로 들썩거린다. 


  기다림이 주는 설렘으로 현재와 앞으로의 기다림을 건너갈 힘을 얻는다. 연속되는 기다림의 시간을 담담하고도 씩씩하게 삼키고 소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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