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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소이 Dec 05. 2023

어느 겨울날의 산책, 함께 걷기에 대한 단상

- 사랑의 초상

어느 겨울날의 산책, 함께 걷기에 대한 단상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게 된 이후로 내가 틈틈이 눈에 담고 있는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음을 맞춰 걷는 나이 든 커플의 뒷모습이다.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나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내 느린 걸음에 맞춰서 손을 잡고 옆에서 걸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처럼 겨울 산책을 나섰는데, 내 앞에 노년의 커플이 각자 취향에 맞는 모자로 머리를 따뜻하게 덮고 장갑 낀 손을 꼭 잡으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앞을 보며 한발 두발 내딛는 그들의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 찬찬히 보았다. 언제나 봐도 내겐 늘 부럽고 귀여운 모습이다.


 그 커플의 앞에는 앞장서서 걷는 노년의 남자와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는 노년의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숨이 찬 것인지 걷다가 잠시 쉬고 다시 걷다가 쉬기를 반복하며 끈기 있게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는 앞서 걷다가 잠시 서서 뒤를 돌아보며 여자를 기다렸다가 다시 앞장서 걷기를 반복했다.


 그냥 옆에서 나란히 걸어주면 안 되는 건가. 그저 방관자인 내가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정도로 남자는 무심히 제 앞 길만 가는 것처럼 보였다. 마음이 불편해져서, 각기 따로 걷는(엄밀히 말하면 한 사람이 먼저 앞서 가버리는) 그 커플을 제치려고 속도를 내서 그들을 지나쳐갔을 때, 남자의 눈을 보았다. 그의 눈은 오로지 천천히 자신을 향해 걷고 있는 여자에게 붙박여 있었다. 내가 그를 보고 있는 것도, 비둘기가 낮게 날아 그의 옆을 스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그는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문득 그의 사정과 심정을 내가 속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거나 무뚝뚝해서 여자의 곁에 다가가기 힘든 것일지도, 주머니 안에 넣은 그의 손이 불편한 것일지도, 난 그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낮췄던 것이 아닐까.


 그에게 가까워질수록 방긋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이 이제야 내 눈에 들어왔다. 보이는 게 사랑의 전부가 아닌 거라고, 표현하지 못한 마음도 사랑이라는 생각이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나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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