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어느 멋진 날

- 우리의 여정

by 천소이

햇볕이 따뜻하고 바람도 적당히 선선한 날씨가 되면, 모니터에 두어야 할 시선이 자꾸 바깥으로 향한다. 글을 쓰다가 창밖에 반짝이는 햇살을 보고, 다시 글을 쓰려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초고를 마무리하고 탈고를 해야 하는 걸 알고 있지만, 손이 자꾸 멈추고 글을 쓰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그가 전해준 그림을 보면서 어울리는 글을 찾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에 점점이 떠오르는 단어가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고 애매하게 어긋나며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고질적인 불안이 내면의 깊은 곳에서 서서히 떠올랐다.


문득 지금 그는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처럼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고 있을까, 기분 좋아지는 날씨에 탄력을 받아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각자의 생활과 작업에 몰두하느라 연락을 자주 하진 못했지만 우린 간간이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작업은 요즘 어떻게 되어가는지, 사소하고 심심한 인사를 건네고 묵묵히 잘 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락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메신저 알림음이 울렸다. 그와 함께 있는 대화방 옆에 또렷하게 새겨진 숫자를 손가락 끝으로 지그시 눌러 없앴다. 그가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해하며 대화창을 열었을 때, 내가 마주한 건 형형색색의 꽃들이 화면을 빽빽하게 채우고 빛을 머금고 있는 듯한 그림이었다. 그가 일전에 보여준 그림에서 느꼈던 신비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데, 다른 세상으로 연결된 문을 열고 건너간 기분이 들었다.


아직 작업 중이지만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물리적으로 멀리 있어도 심적으로 가깝다고 느낄 때가 있다면, 서로의 마음을 보여줄 때이다. 그의 마음을 한껏 담고 피어난 그림 속 꽃들과 눈을 맞추니, 우리의 감정이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모호했던 머릿속이 맑아지며, 작업 중이던 원고에서 그림에 어울리는 글을 찾아 그에게 곧바로 답장했다. 나의 마음도 전하고 싶었다.


우린 따로 떨어져 있던 그림과 글을 합쳐서, 한 자리에 배치했다. 따로 봤을 때보다 훨씬 큰 감정이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것을 느끼며, 융복합의 힘을 실감했다. 글에서 떠오르는 심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림에서 못다 한 말은 글로 읽히며, 우리가 느낀 감정과 생각이 연결되고, 비어있던 마음속 한구석이 가득 메워졌다.


이 순간을 잊지 않고 글과 그림에 녹여내서 우리가 느낀 감정을 오롯이 전하고 싶었다. 우리의 글과 그림이 작게나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스스로 선택한 길을 빈번하게 불안해하는 마음을 손바닥으로 눌러버리고 내가 글을 쓰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동안 융합된 글과 그림을 바라봤다. 많은 그림과 글을 배치해보자고, 앞으로도 서로의 작업을 틈틈이 공유하자고 신이 나서 말했다. 그와 함께 하는 도전이 무력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5월의 어느 날, 난 씩씩해지고, 내가 알고 있던 세계는 이전보다 좀 더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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