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여정
난 언제쯤 글을 쉽게 쓸 수 있을까. 어쩌면 평생 글을 써도 매번 망설이고 버벅댈 것 같다. 글감이 문득 떠오르면 몇 시간이나 자판을 두드려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문장이 쏟아지는 날이 있는 반면에, 노트북 앞에 앉아 비장한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고 자세를 고쳐 앉아도 한 단어를 쓰지 못하는 날이 수두룩하다. 시간을 정해서 매일 정한 분량을 의무적으로 써야 작가로서 롱런을 할 수 있다는 유명한 소설가의 말을 가볍게 넘겼는데, 그는 대단한 성실함으로 매일 수련을 했던 것이다.
글을 쓰는 게 어려운 날엔, 주변에 쌓여있는 책을 손에 집히는 대로 펼친다. 읽는 시간은 쓰는 시간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나를 자유롭게 몇 시간 내버려 두고 읽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면 쓸 수 있게 될 거라는 마음으로, 책 속의 세상에서 놀다 나오면, 어느새 주변이 캄캄해지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된다. 먹어야 기운이 난다고 밥을 먹고, 충분히 소화를 시켜야 집중이 된다고 휴대전화 잠금 화면을 열어 알고리듬에 걸려 나오는 영상을 서너 개 보고 나면 잘 시간이다. 결국, 글은 내일 써야겠다고 잠자리로 쏙 들어가는 하루가 쌓이면, 게으른 과거의 나를 원망하는 현재의 나를 마주한다.
어떻게든 써보기로 한다. 느리지만 조금씩 틀을 잡고 문장들을 만들면서 나아가다 보면 한 덩어리의 단락이 되고, 단락들을 뭉쳐서 다듬으며 한 편의 글을 완성해나간다. 단어를 흩뿌린 채로 두었을 땐 막막하게 느껴졌던 흰 여백의 화면을 어느새 검은색 활자로 채우면서, 내면에 품고 있었던 감정과 기억을 끄집어 드러낸다. 처음에 쓴 글인 초안은 문법과 문맥을 깊게 고려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기에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있다. 초안을 마치면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사서 소소한 파티를 하고 앞으로 다가올 탈고의 늪에 빠지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그리고 이제 탈고의 늪에 빠진다.
탈고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좋다고 썼던 문장들이 허접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문장은 어디서 나온 건지, 내 마음을 진실하게 표현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글의 절반을 덜어낸다.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내가 썼다고 하기 부끄러운 문장들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내 그 문장들은 백스페이스키에 눌려 세상에 있었는지도 모르게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탈고의 횟수는 정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는 걸 반복한다. 글은 조금 묵혔다가 다시 봐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읽고, 며칠 후 다시 보면 탈고를 했던 글이 또다시 탈고된다. 탈고의 위에 탈고가 얹혀서 대여섯 번이 넘어가면 진부한 표현이 생기고, 그 부분까지 지우고 나면, 생각한다. 지워진 문장까지 합치면 책을 여러 권 썼겠다고.
다른 이들은 자신의 글이나 그림을 보고 단번에 만족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난 늘 뭔가 부끄럽고 부족하게 느껴져서 계속 고치고 반복해서 읽는다. 결론이 나지 않는 부분은 안타깝지만 세상에 존재했던 흔적을 지우고, 그나마 내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어떻게든 살린다. 탈고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괴로운 시간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한 탈고의 세계에 빠져서 이제 이 정도면 됐어라는 마음이 들 때 열 수 있는 희망의 문을 바라보며, 언제 나올 수 있을지 모르는 작업을 이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괴로움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쓰면 쓸수록 나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장을 한번 볼 때와 여러 번 볼 때, 한번 고칠 때와 두 번 고칠 때 미묘하게 달라지는 뉘앙스를 읽어내고 좀 더 어울리는 표현을 찾고 내 마음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단어를 배치한다.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탈고의 고통을 이긴다. 이건 늘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래서 탈고를 멈출 수 없다. 탈고의 시간을 마치고 문을 열고 나오면, 내 앞에 펼쳐질 완성된 문장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에, 고통스러워도 더 나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