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드러내야 하는 순간

- 우리의 여정

by 천소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야심 차게 준비한 건 도록이었다. 그동안 썼던 글에서 그의 그림과 어울리는 문장을 발췌하여 여러 구도로 배치하며, 글과 그림의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다. 단번에 끝날 줄 알았던 작업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며 늦어졌고, 원고를 넘겨야 하는 마감일 직전에야 완성할 수 있었다. 최최최종이었다. 드디어 책이 만들어진다는 설렘, 원고 수정을 끝냈다는 후련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리고 마음속 한켠에 조금의 아쉬움이 남았다. 재단의 컨설팅을 받고 그림을 중심으로 글은 보조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의 방향을 결정했다. 내가 중심이 되기에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욕심이 났던 걸까. 언젠가 나의 글로 프로젝트를 이끄는 날을 꿈꿨다. 그리고 일상의 회복력을 주제로 틈틈이 글을 쓰고 생각을 다듬으며, 난 또 하나의 에세이 단행본을 완성했다.

집필, 탈고, 표지 디자인, 인쇄 의뢰까지 전 과정을 직접 진행했다. 시간은 늘 충분한 줄 알았으나 모자랐다. 보면 볼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글을 놓칠 수 없어 부여잡고 있다가도, 다음 작업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곤 했다. 글이 잘 풀렸다가 막막해졌다가 다시 글을 쓰는 여러 날을 거쳐 모든 걸 해내고 나서야, 난 잊고 있었던 과거의 감정과 기억을 떠올렸다. 첫 책을 완성했던 순간, 내가 느꼈던 뿌듯함과 대견함, 밑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자신감. 자신의 개성이 담긴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는 건,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고 기억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제 내 앞에 놓인 난관은 ‘홍보’라는 벽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앞에 나서서 하는 일은 뭐든 부담스러웠다. 조용히 뒤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묵묵히 일하는 쪽이 훨씬 편했다. 내 생각을 목소리로 내는 것보다 글로 말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성과를 스스로 드러내는 게 부담스러워서 가만히 있으면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라곤 했다. 그러나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내 성향은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은 자기를 드러내고 알려야 하는 시대라며,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처음엔 내 방식대로 해도 세상이 알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책과 글이 흘러넘치고, 텍스트보다 더욱 방대한 영상 매체가 오감을 시시각각 자극하는 현실을 자각하면서, 나의 글이 드러날 기회는 너무도 희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변의 모래사장에 빠져버린 바늘처럼, 여기 내 글이 있다고 알리지 않으면 묻혀버린다는 사실을. 난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당당하고 말도 잘하고 홍보 방식은 세련되다. 내면에서 부딪히는 많은 갈등과 감정을 겪어내며, 난 홍보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기로 결심했다.


이번에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우리의 메시지가 담긴 책과 전시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 예전에 첫 책을 만들었을 때 입고 문의를 했던 경험을 살려, 평소 눈여겨보고 있던 지역 서점에 연락을 돌렸다. 서점의 소개 페이지를 확인하고 이메일 주소와 입고 안내 공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연락을 하려는 서점에는 인스타그램 주소만 공개되어 있고, 입고 문의 안내는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사용했던 인스타그램 앱을 열고, 메시지를 남겼다. 잠시 후, 한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이메일로 입고 신청서를 보내주면 확인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 결과였다. 이메일에 입고 양식을 첨부하고 전시 홍보까지 덧붙여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인연이 닿아서 책을 입고하고 홍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서점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서 만든 작품이 나만 보고 마는 존재가 된다. 세상에 보이고 싶다면, 나를 드러내야 한다. 뒤에서 조용히 숨고 싶은 기질을 잠시 덮어두고, 해야 한다고 여기는 중요한 일을 한다. 그래야 더 나아갈 수 있다. 다음 서점에 연락하기 위해 꺼져있던 화면에 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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